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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4 폭설 내린 정선 오지마을서 보낸 하루 (10)

폭설 내린 정선 오지마을서 보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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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내린 정선 오지마을 안도전에서 보낸 하루


얼어붙은 안도전 개울에 구멍을 내고, 빨래를 하고 있다. 얼마나 손이 시릴까.

 

산굽이 옹숭깊은 마을에 밥 짓는 연기 피어오른다.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내 눈이 금세 매워진다. 밥 짓는 연기, 혹은 어려웠던 시절의 행복한 기억! 세월은 종종 과거를 미화시킨다. 좋을 것도 없으면서 많은 이들이 그 때가 좋았지, 라고 털어놓는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시계를 갖게 되었지만, 어릴 때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 때는 어딘가를 꼭 가야할 필요도 없었고, 누군가를 꼭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안도전 마을 이종철 노인이 설피를 신은 채 군불용 땔감을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어도 지금처럼 힘들고 외롭지는 않았다. 한발씩 안도전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공연히 지난 시절의 아련한 풍경과 기억이 눈가에 맺힌다. 해발 1200미터가 모두 넘는 수병산, 고적대, 중봉산을 병풍처럼 아우른 채 둥지를 틀고 있는 마을, 안도전. 안도전으로 가는 길은 옛 추억을 만나고, 옛 기억을 더듬는 길이다. 길은 구불구불 산중으로 이어진다. 특이할 것도 없지만, 이 마을의 집들은 전부 양철 지붕을 하고 있다.

 


수북히 쌓였던 눈을 치워놓은 안도전 들어가는 길.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과거 이 곳의 집들은 삼대로 지붕을 인 겨릅집이 대부분이었는데, 새마을 운동 시절에 싸그리 양철 지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집의 벽체는 흙벽이 대부분이고, 돌담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집이 대부분이다. 또한 마을의 집들은 드문드문 떨어져 독가촌과 비슷한 산촌(散村)을 이루고 있다. ‘산촌’이라 함은 산마을이란 뜻이 아니라 집이 뚝뚝 흩어져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안도전 탁왈수 씨네 집에 동네 사람이 거의 다 모였다. 마당에는 화로도 내놓고 고구마며 절편도 구워먹는다.

 

정선의 다른 두메마을과 마찬가지로 안도전에서도 모든 집들이 나무를 때고 산다. 때가 때인지라 눈은 무릎만큼 쌓였는데, 웬 노인이 나뭇짐을 지고 눈밭을 걸어온다. 가만 보니, 양쪽 발에는 설피를 신었다. 설피는 과거 눈이 많이 쌓인 곳을 이동할 때 눈밭에 빠지지 않도록 만든 일종의 눈밭 덧신이다. 이 설피는 신발을 신은 채 신발 밑에 삼끈으로 묶어 착용하며, 보통 신발의 서너 배나 크고 타원형으로 만들어져 눈밭을 거닐어도 잘 빠지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긴 하두 눈이 마이 와노니 겨울게는 이 설피 없으면 못 다니요.” 이종철 노인(74)의 말이다.

 


최금자 씨가 방금 디딜방아로 찧어낸 옥수수를 키질하고 있다.

 

안도전에서는 아직도 디딜방아가 남아 있는 집도 두 집이나 되어서 명절이 가까워오면 거짓말처럼 떡방아 찧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특히 안도전의 중간쯤에 자리한 탁왈수 씨(70)네 집은 따로 디딜방앗간을 두고 있는데, 이 디딜방아로 이웃 사람들까지 와서 메주도 찧고, 고추도 빻고, 서숙과 강냉이도 찧어간다고 한다. 탁씨의 부인인 최금자 씨에 따르면, 디딜방아로 쌀을 찧어서 떡을 하면, 방앗간 기계로 빼는 떡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쫄깃하고 맛있단다. 

 


안도전 최금자 씨네 디딜방아. 두 사람이 방아를 디뎌 옥수수를 찧고 있다.

 

안교원 씨(69)네 집에도 디딜방아가 남아 있다. 안씨는 4대째 이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토박이다. “여기 60년대만 해도 마을에 100호가 넘게 살았소. 저 위 골착으로 다 사람들이 살았으니까. 그러다 68년돈가 울진삼척사건 나고는 마이 나갔죠 뭐. 산 속의 집을 막 태우고 그랬으니까. 아이고, 공비 왔을 때 일루 오고 말구요. 그 전에는 여가 삼척 땅이요. 그 때만 해도 이 동네 집들이 다 겨릅집이었어요. 삼대 있죠, 삼대로 지붕을 한 집. 지끔은 뭐 삼 심기도 워낙에 가닭시러워서, 삼을 신고하고 심잖어요. 지금 겨릅이 어딨어요. 그러니 맨 양철집이지.”

 


아침 나절 안도전 마을의 외딴 집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상상을 해 보라. 100여 집이 넘는 겨릅집마다 모락모락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겨릅집이 양철지붕이 되긴 했어도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안도전의 풍경은 여전히 옛 고향의 정취가 충분히 느껴진다. 흔히 강원도 두메마을의 집들은 외양간을 부엌에 둔 겹집 형태를 띠고 있다. 두메의 집들이 소를 밖에 두지 않고 부엌 한 켠에 두는 까닭은 그만큼 소라는 가축을 가족처럼 여기는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산속에서는 산짐승의 습격이 잦았으므로 소를 집안에 두어 보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저녁 무렵의 안도전 풍경.

 

연기가 나는 집을 보고 무작정 부엌으로 들어가보니, 때마침 안교원 씨는 쇠죽을 쑤고 있었다. 그가 마른 솔가지를 꺾어 아궁이에 집어넣을 때마다 뒤란의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사실 안도전 마을은 요즘 보기 드문 토종마을이다. 전형적인 산촌을 이루고 있는데다, 대부분의 집이 아직도 나무를 때고 살며, 디딜방아로 곡식도 찧고, 떡가루도 찧어낸다.



임계에서 만난, 정선 아리랑을 부르며 물박(항아리에 바가지를 띄워놓고) 장단을 치는 풍경.

 

집집마다 설피를 두고 있으며, 설매를 두고 있는 집도 여러 집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안도전을 찾는 사람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산속 깊이 박혀 있는 마을이지만, 계곡물이 맑고 주변 경치 또한 빼어나기 때문인데, 그런 까닭으로 중간중간 마을길은 말끔하게 포장이 되었다. 하긴 찾는 사람들이야 두메마을이 좋다지만, 사는 사람들이야 두메마을로 남고 싶지는 않을 터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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