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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8 티베트 독립시위 불길 지핀 조캉사원 어떤 곳인가 (10)

티베트 독립시위 불길 지핀 조캉사원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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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독립시위 불길 지핀 조캉사원 어떤 곳인가

 


조캉사원 바코르에서 조워 석가모니불을 향해 오체투지하는 순례자들.

 

이번 티베트 독립 투쟁의 첫 시위가 일어난 곳은 바로 티베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조캉사원이었다. 조캉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자 최고의 성지로 티베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워 불상(석가모니)을 모신 곳이다. 조캉이란 이름도 ‘조워를 모신 라캉’이란 뜻에서 비롯되었다. 조캉사원 앞에는 꽤나 넓은 바코르 광장이 있고, 여전히 티베트의 중심이자 라싸의 티베트전통구역 한가운데 자리한 곳이 조캉사원이다. 그러므로 티베트 불교와 정신의 구심점인 조캉사원에서 독립 투쟁이 시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캉사원의 황금지붕.

 

아이러니하게도 조캉사원은 중국과도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본래 조캉은 7세기 640여 년쯤 당시 토번 왕국의 송첸 감포 왕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당시 토번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당나라와 네팔에서 각각 공주를 왕비로 바칠 정도였다. 이 때 당나라 현종의 딸인 문성공주가 티베트로 가지고 온 불상이 바로 석가모니 불상이었다. 이 불상은 처음에 라모체 사원에 모셨으나, 송첸 감포 왕이 죽은 뒤 불상의 보호를 위해 조캉으로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조캉사원의 바코르 광장을 걸어나오는 순례자들. 여기가 바로 이번 티베트 독립시위가 처음 일어난 곳이다.

 

* 중국은 문화혁명기간에 조캉사원을 돼지우리로 만들었다


과거 ‘양의 거주지’란 뜻을 지니고 있던 라싸가 ‘신의 거주지’란 뜻을 지니게 된 것도 문성공주 시절 조캉의 건립과 무관하지 않다. 티베트에서 불교가 국교로 자리잡고 수많은 사원이 건설된 것이 바로 그 시절이다.

 


조캉사원의 한 승려가 대법당 앞의 야크 촛불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문화혁명 기간(1966~1976년 6259개의 티베트 사원 중 몇 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원이 파괴되었으며, 수십만 명의 승려가 강제로 환속당했다)을 거치면서 조캉은 한때 폐허(중국은 티베트의 심장인 조캉을 한때 돼지우리로 사용하게 했다)가 되다시피했다. 이 때 포탈라궁과 노블링카궁은 물론이고, 간덴사원과 라모체 사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라싸 인근 사원도 파괴되었다. 조캉사원은 1980년 이후에야 조금씩 재건돼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캉사원에서 만난 한 순례자와 불경을 외는 승려.

 

조캉사원은 늘 이른 아침부터 붐비는 곳이다. 포탈라궁이 주로 외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라면 순전히 이 곳은 티베트 각지에서 온 경건한 순례자들로 붐빈다. 순례자들은 코라(마니차를 들고 시계 방향으로 사원을 한 바퀴 도는 의식)를 돌거나 조캉의 문앞에서 염려스러울 정도로 심한 오체투지를 한다. 이들의 오체투지는 거의 필사적이다. 필사적으로 붓다에게 마음을 바친다.

 


조캉사원 바코르 광장에 있는 거대한 룽다.

 

보통 조캉의 순례자들은 문이 열리는 아침 8시 이전부터 정문 앞에 줄을 서는데, 문이 열리면 마치 100m 달리기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대법당을 향해 뛰어들어간다. 남보다 먼저 조워 석가모니불을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외국의 여행자가 조캉에 들어가려면 무려 70위안이나 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지만, 70위안을 내고도 아깝지 않은 곳이 조캉사원이다. 그만큼 티베트의 진면목을 조캉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캉사원 대법당으로 들어가는 순례자들.

 

* 티베트 전통구역의 중심, 조캉사원 바코르


조캉에 들어가면 우선 내부 광장을 지나 대법당을 만나게 된다. 1층 대법당은 조워 석가모니를 모신 조캉의 핵심인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미륵불(Jampa), 왼쪽에 구루 링포체(Guru Rinpoche, 8세기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인도 현자, 제2의 부처로 여김)를 모시고 있다. 또한 이들 불상을 모신 1층 대법당을 중심으로 모두 18개의 크고 작은 법당들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하는 순례자들.

 

2층에도 법당이 여러 개 있으며, 2층을 거쳐 3층으로 올라가면, 조캉사원의 화려한 황금지붕탑을 만나게 된다. 또한 이 곳은 사원의 옥상 전망대 노릇을 하고 있어 조캉사원 앞 바코르(조캉사원의 순례길, 코라와 같은 의미)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정문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의 모습도 위에서 곧바로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멀리 포탈라궁은 물론 사방으로 펼쳐진 라싸 시내의 풍경까지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조캉사원의 주황색 건물과 노란 벽.

 

조캉사원의 바코르(순례길)는 라싸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조캉사원 바코르는 라싸 구시가에서도 티베트 전통구역의 노른자위에 해당한다. 바코르에서 수많은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퍼져나가고, 이렇게 퍼져나간 골목은 또다른 거리와 골목을 만나 얽히고 설킨 전통구역을 이룬다. 오래된 시장도 대부분 바코르 골목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아침 문이 열리자마자 조워 석가모니불을 먼저 만나기 위해 대법당으로 뛰어들어가는 순례자들.

 

바코르 골목에서는 전통 탕카를 그리는 ‘탕카 화가’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탕카(Thangka)란 사원에 거는 탱화(불화)를 가리키는데, 티베트 불교의 신비한 종교성과 예술성이 고루 깃들어 있는 불교미술이라 할 수 있다. 티베트 탕카는 무엇보다 화려한 채색이 특징이며, 그림 전체에 금니(金泥)를 사용한 선과 면이 두드러진다.

 

조캉사원의 야크 촛불 연기에 그을린 벽화(위)와 바코르 골목에서 탕카를 그리고 있는 소년(아래).

 

탱화에는 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여래, 관음보살과 문수보살, 역대 달라이 라마가 등장하며,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나타내는 ‘만다라’를 표현해 놓은 것도 있다. 불화(佛畵) 전문가들은 티베트의 탕카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고 있지만,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오래된 탕카들은 이미 문화혁명기간에 대부분 중국으로 유출돼 밀거래되고 말았다.

 


조캉사원의 가릉빈가(가루다, 얼굴은 사람이고 몸통은 새인 반인반조상)와 코끼리 장식에 걸린 풍경.

 

* 티베트에서는 외국인도 달라이 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면 추방당한다


티베트에서도 라싸 시내는 이제껏 중국의 공안과 무장경찰에 의해 치안이 유지돼 왔다. 그들은 혹시라도 제2, 제3의 라싸 봉기, 독립투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24시간 티베트를 감시해 왔다. 심지어 중국의 공안들은 외국인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금지해 왔다. 혹시라도 외국인들이 그들에게 달라이 라마의 근황을 알려주거나 티베트의 독립을 주장하며 티베트인들을 부추기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당연히 티베트에서는 외국인일지라도 달라이 라마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사진을 지니고 다니다 공안에게 걸리면, 추방을 당하기 십상이다.

 

조캉사원 바로크 순례길은 언제나 순례자로 넘쳐난다(위). 조캉사원에서 바라본 바코르 광장과 멀리 보이는 포탈라궁(아래). 이번 티베트 독립시위는 바로 조캉사원 바코르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의 지나친 치안과 감시는 위장된 평화에 불과했다. 언제나 티베트인과 사원의 승려들에게는 중국의 공안과 이주한 한족의 세력이 언제나 불안이었고 불만이었다. 1980년대부터 중국은 표면적으로 티베트에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지만,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나 그의 추종세력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고 탄압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다. 티베트의 지도층 승려들과 달라이 라마에 대한 이간정책도 티베트 승려와 신도들을 자극해 온 요소였다.

 


조캉사원 바코르에서 만난 승려와 외국인 관광객과 뒤로 보이는 중국의 공안.

 

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교육기관에서 중국은 일제와도 같은 중국식 교육을 강요해 왔다. 티베트 학교에서 티베트어를 가르치는 것을 빼면, 모든 것이 중국식 교육이다. 가령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에서도 그들은 과거 포탈라궁을 지을 때 청나라 황제가 허락을 해서 지었다는 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일제가 창경궁에 동물원을 두어 창경원이라 했던 것처럼 중국도 라싸의 노블링카궁 안에 동물원을 두어 구경거리로 삼고 있다. 바로 그런 쌓이고 쌓인 불만들이 이번에 한꺼번에 곪아터져 봉기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티베트의 심장 조캉사원에서 시작돼 세라사원과 드레풍사원 인근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 스크랩은 여기서:: http://blog.daum.net/bink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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