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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4 이 고양이 남매가 사는 법 (19)

이 고양이 남매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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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남매가 사는 법

 

 

고양이로 산다는 것.

그것도 길에서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온갖 위협과 수모와 비방을 견디는 것일지 모른다.

여기에 이 모든 수난의 삶은 겪고도

당당하게 묵묵하게 묘생을 건너가는 고양이 남매가 있다.

 

 

당돌이와 순둥이.

이 녀석들만 보면 늘 마음 한켠에 묵직한 고양이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만 같다.

녀석들만큼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고양이도 드물다.

시골의 한 폐가 지붕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다

엄동설한에 철거묘가 되어 거리를 떠돌던 고양이.

그렇게 추운 겨울 거리를 떠돌다 두 마리의 형제를 잃었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 마을의 골목에 겨우 터를 잡은 고양이.

 

 

그러나 이곳의 영역을 물려주고 떠난 줄로만 알았던 어미는

개울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녀석들은 한동안 사람만 보면 오들오들 떨면서 경계심을 보이곤 했다.

승냥이의 잦은 영역 침입에도 끝까지 어미가 물려준 영역을 지켜온 고양이.

그리하여 순둥이는 이 복된 영역에서 새끼를 낳았고,

지난 여름에는 순둥이가 이 새끼를 데리고 나와 내게 인사까지 시켰더랬다.

 

 

 

하지만 순둥이가 새끼를 낳아 육묘를 하는 동안,

당돌이는 정들었던 영역을 떠나 또다시 방랑고양이 생활을 해야만 했다.

순둥이와 아기고양이에게 그동안 어미를 대신해 지켜온 영역을 물려주고,

자신은 정작 스스로 떠돌이 고양이가 된 것이다.

그 보람도 없이 순둥이가 낳았던,

그리고 내 앞에서 여러 번 발라당까지 선보였던 아기고양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인다.

 

 

 

여울이와 세 마리의 아기고양이가 쥐약으로 비명횡사했다는 소식을 접했던 그 무렵,

순둥이네 아기고양이도 종적을 감추고 만 것이다.

보지 못했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여울이와 아기고양이 세 마리가 건너간 길을 녀석도 따라간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설상가상 순둥이에게 먹이를 주던 급식소는

갑작스런 건물 수리와 정비로 오랜 동안 폐쇄되고 말았다.

그동안 블로그에 순둥이와 당돌이 소식을 올리지 못한 까닭도 그 때문이다.

늘 만나서 먹이를 주던 곳이 갑자기 폐쇄된 것이다.

이후 순둥이와 당돌이는 무럭이네 급식소에서 급식을 해결했지만,

녀석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순둥이에게 영역을 양보하고 떠난 당돌이 녀석은

하나뿐인 동생이 아기와 함께 행복하기를 바랐을 것이나,

결과는 그렇지 못해 안타까웠을 것이다.

당돌이는 떠돌이 묘생을 살면서 이따금씩 무럭이네 급식소를 찾아와 배고픔을 달랬다.

한번은 오래전 봉달이가 점프를 하곤 했던 개울가와 논자락을 방황하는

당돌이를 만난 적이 있다.

 

 

 

녀석은 나를 발견하고는 그 차가운 눈밭에서 뒹굴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래도 이따금 당돌이가 무럭이네 급식소를 찾아오면

무럭이 남매는 삼촌의 방문에 들뜨곤 했다.

특히 무럭이는 당돌이와 숨바꼭질도 하면서 친구처럼 잘 지냈다.

한동안 무럭이 남매가 당돌이 삼촌과 순둥이 이모를 경계한 적도 있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그땐 무럭이 남매가 너무 어렸다.

 

 

 

과거 당돌이 녀석이 여울이 누님을 냉대한 것에 비하면

여울이네 아이들은 그리 심한 편도 아니었다.

이래저래 이 겨울이 다 지나서야 순둥이네 급식소 인근은 공사와 정비가 끝이 났다.

그러나 정작 주변을 정돈해 놓고 나니

급식소로 사용할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무럭이네 급식소에서 더 신세를 져야 할 듯싶다.

 

 

 

며칠 전 나는 순둥이의 영역인 골목에서

오랜만에 남매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뭔가 낌새가 남달랐다.

당돌이 녀석, 동생인 순둥이에게 구애를 하고 있었던 거다.

대체로 길고양이는 유전자가 완전히 다른 상대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고 하는데,

그것이 모든 고양이에게 통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내가 보는 앞에서 두 녀석은 잠깐 사랑을 나누더니

쑥스러운듯 건물 뒤편으로 사라졌다.

뭐지, 이 안쓰럽고도 씁쓸한 기분은.

어느덧 봄은 고양이 발자국처럼 살금살금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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