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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20 가장 안전한 곳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23)

가장 안전한 곳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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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전한 곳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개울의 배수구를 은신처로 살아가던

대모네 식구가 새로운 영역으로 이사를 갔다.

옛날에 가만이네 카오스가 살던 폐차장으로.

다시 말해 무럭이네 삼남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영역에서 지척인 곳으로

영역을 옮겼다.

 

"여기가 새로 이사한 곳이에요. 잘 부탁해요, 아저씨!"

 

가장 안전한 곳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녀석들은 왜 하필이면 이렇게 위험한 곳으로 영역을 옮겼을까?

사실 장마를 앞두고

가장 먼저 새끼를 밴 것으로 추정되는 대모가 개울을 떠났다.

하지만 녀석의 행방은 지금도 묘연하다.

마을 근처를 아무리 훑어보아도 대모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다.

 

"여기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쉼터도 있고, 망가진 차들도 많고..."

 

대모가 개울을 떠나고 얼마 뒤

대모네 아이들인 재미와 소미, 그리고 손자 꼬미가 영역을 옮겼다.

세 마리가 함께 옛날 카오스가 살던 폐차장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아마도 대모는 중고양이가 다 된

자식들과 손자를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폐차장으로 독립시킨 게 분명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개울도 아니고, 폐차장도 아닌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어쩌면 출산과 육묘를 위해 안전한 은신처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폐차장 폐차 밑에 앉아 있는 소미(위)와 망가진 승용차에서 밖을 내다보는 재미(아래).

 

과거에도 대모는 한달 넘게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대모는 개울을 떠나서 한달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재미와 소미, 꼬미 녀석은

대모가 떠난 뒤에도 몇 며칠 개울에 머물렀지만,

예고도 없이 갑자기 배수구를 버렸다.

이유는 어느 날부터인가 배수구에 물이 흘러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린 것도 아닌데, 무논에서 물을 흘려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차 안에 있던 꼬미(위)와 재미(아래)가 사료배달이 오자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다.

 

벼농사라는 게 그렇다.

모내기할 때는 물이 모자라서 개울물에 양수기를 대고 퍼나르다가도

벼가 어느 정도 자라기 시작하면

묵은 물을 빼내고 새로운 물을 논에 댄다.

장마철까지는 물대기와 물빼기가 계속 진행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대모네 식구들이 은신처로 삼던 배수구에 늘 물이 흘러넘치게 된 것이다.

물이 흐르는 배수구는 더 이상 고양이의 은신처가 될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꼬미와 재미, 소미도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폐타이어 더미 위에 앉아 있는 꼬미.

 

그렇게 꼬미와 재미, 소미는 어쩔 수 없이 안전한 개울을 떠나

위험한 폐차장으로 오게 되었다.

이 폐차장을로 말할 것같으면 본래 노을이와 무럭이네 영역으로

과거 가만이와 카오스가 영역을 옮겨 노을이의 텃세를 견디며 살았던 곳이다.

그리고 옛날에 여울이와 세 마리의 새끼들을 고양이별로 떠나게 한

쥐약사건의 장소인 텃밭이 지척에 있는 곳이다.

 

폐차장을 나와 옛날 무럭이네 영역 쪽을 기웃거리는 소미.

 

어느 날 폐차장으로 영역을 옮긴 꼬미 일행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필이면 그 많은 곳을 두고 녀석들이 이곳을 택한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녀석들의 세계에 개입해

영역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다시 나는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녀석들의 안전과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재미는 툭하면 쥐약 사고가 났던 텃밭 쪽으로 걸어가곤 한다.

 

지금으로써 내가 녀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풍부하게 먹이를 공급해

텃밭에 놓인 이상한 밥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게 만드는 것뿐이다.

여름의 시작과 함께 폐차장으로 와서 나를 또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녀석들.

아랑곳없이 녀석들은 폐차장의 망가진 차를 놀이터 삼아

숨바꼭질을 하고, 캣타워처럼 오르내렸다.

꼬미 녀석은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폐타이어 더미 꼭대기까지 올라가

힘차게 울었다.

 

"캣맘님들! 날도 더운데 사료배달 힘드시죠? 힘내세요.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이 당신들을 응원합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녀석들은 벌써 20일 넘게 폐차장에서

유유자적 여유만만이다.

심지어 녀석들은 가끔씩 이곳을 찾는 순둥이와도 어느 새 친해져서

함께 4륜구동 지프 아래서 근심없이 낮잠도 잔다.

내일은 개울 너머 남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온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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