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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에 나온 거문도 등대와 등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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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에 나온 거문도 등대등대길



거문도는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약 115킬로미터, 뱃길로 1시간 50분이 걸리는 먼 섬이다.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쯤에 자리한 섬. 흔히 거문도는 백도와 더불어 이 땅의 마지막 비경이라 불린다. 이 비경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거문도에 도착해 어선을 빌려타고 거문도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안노루섬과 오리섬, 거문도 등대와 관백정, 보로봉, 신선암, 기와집 몰랑, 둥글섬을 돌아오는 이 해안 코스는 말이 필요 없는 기막힌 비경길이다. 섬에 오르면 엊그제 <1박2일>에서 출연자와 스텝들이 고생고생하며 짐을 옮긴 ‘거문도 등대길’을 놓칠 수 없다. 거문도에서 ‘동백터널’ 혹은 ‘동백길’로 불리는 이 길은 동백이라도 만개하면 꽃과 바다와 비경이 한데 어우러진 최고의 산책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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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생겨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거문도 등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 중 하나로 손꼽히며 가장 큰 프리즘 렌즈를 자랑한다.

이 아름다운 길이 끝나는 곳에 거문도 등대가 있다. 거문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거문도 등대. 거문도에 와서 거문도 등대를 만나지 못했다면 거문도에 온 의미가 없다. 동양 최대의 등대로 알려진 거문도 등대는 일제 때인 1906년 생겨났으며, 가장 큰 프리즘 렌즈를 자랑한다. 등대 불빛은 약 35~40킬로미터까지 비춘다고 하며, 무적신호기가 달려 있어 안개 속 선박의 항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등대의 또 다른 매력은 한 장소(관백정)에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않고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등대에는 3명의 등대지기가 3교대로 근무하고 있는데, 가장 젊은 등대지기인 조상훈 씨는 과거 이 곳의 등대지기였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보기 드문 내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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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거문도의 중심 고도(위). 거문도 등대로 이어진 동백터널 등대길에서 만난 거문도의 환상적인 물빛(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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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이 있는 유림에서 약 30여 분, 동백터널을 걸어가 만난 거문도 등대는 그야말로 달력사진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곳이다. 무엇보다 거문도 등대에서는 등대 숙소에서 잠을 잘 수가 있다. 꿈에 그리던 등대에서의 하룻밤. 필경은 달빛이 너무 밝아 잠을 설치고 말 등대의 밤. 새벽 6시 반쯤 등대 옆 관백정으로 나가면 정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기가 막힌 일출이 기다리고 있다. 새벽빛에 물든 등대와 관백정은 누가 찍건 작품 사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맑은 날이면 관백정에서는 해 뜨는 쪽으로 희미하게 그림같은 백도의 풍경을 덤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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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등대로 가는 동백터널 산책로(위)와 산책로에 아무렇게 떨어진 동백꽃(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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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가는 길은 내내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아직 때가 일러 동백이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양지바른 곳마다 서둘러 터진 동백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백. 아마도 거문도처럼 많은 동백나무를 거느린 섬도 없을 것이다. 거문도는 고도와 서도와 동도, 세 개의 섬이 모두 동백밀림에 덮여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수 오동도의 동백은 여기에 비하면 차라리 초라할 정도이다. 동백이 만개할 무렵 거문도를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아마도 섬 전체가 붉은 동백꽃으로 덮여 눈이 부실 것이다. 거문도의 기후는 아열대성이어서 동백나무를 비롯한 후박나무, 박달목서, 돈나무, 까마귀쪽나무 등 난대성 수종이 식생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 거문도에는 풍란도 폭넓게 분포했지만,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현재는 일부 지역에만 자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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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소에서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관백정(위)과 과거의 등대 숙소(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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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의 세 개 섬 중에는 거문리가 있는 고도가 중심지 노릇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근대 열강들과 뒤엉킨 역사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국군 묘지다. 이 묘지는 1885년부터 1887년까지 2년 동안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점령했을 당시에 사망한 수병 9명의 무덤이다. ‘거문도 사건’으로 알려진 당시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1885년 4월 3척의 군함을 보냄으로써 시작되었고, 이후 조선 조정의 계속된 철수 요구로 1887년 철수했다. 임진왜란 때에도 고도는 왜병이 침략해 이순신 장군이 이를 무찌른 적이 있으며, 영국군이 물러간 뒤에도 일본인들이 이 곳에 진을 치고 어업활동을 벌였다. 하여 지금도 고도에는 일본식 건물이 몇 채 남아 있으며, 신사터까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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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등대에서 바라본 저물 무렵의 고기잡이 풍경(위)과 아침 나절의 바다 풍경(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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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거문도는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삼도라 불려왔으나, 거문도 사건 당시 섬 사람들의 문장에 감탄한 청나라 제독이 조정에 청하여 거문도(巨文島)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오늘날 거문도는 천상의 풍경을 숨기고 있는 백도와 더불어 한국의 마지막 비경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거문도의 매력은 아름다운 풍경에만 있지 않다. 삶의 애환이 서린 돌담과 마을신앙이 깃든 당집과 해녀와 풍어제와 뱃노래와 동백밀림과 100년이 넘은 등대와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따뜻한 기운이 있어 거문도는 더욱 매력적인 섬이다.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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