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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8 소 대신 할머니가 끌던 손끌쟁기 (5)

소 대신 할머니가 끌던 손끌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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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할머니가 끌던 손끌쟁기



오래 전 강원도 삼척의 어느 산골에서 나는 참으로 눈물겨운 풍경을 만난 적이 있다. 한쪽 팔이 없는 할머니가 소 대신 앞에서 쟁기를 끌고 뒤에서 할아버지가 보습을 밀며 감자밭 밭갈이를 하는 풍경이다. 학교에 다녀온 손주 녀석은 할머니 앞을 송아지처럼 앞장서 가는 어느 봄날의 가슴 아픈 풍경. 그러나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표정은 전혀 어둡지가 않았다. 땅이 있고, 집이 있고, 이렇게 농사짓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무릇 한해 농사의 시작은 묵은 땅을 갈아엎는 쟁기질로 시작되는 법이다. 경운기와 트랙터가 없던 시절만 해도 볕 좋은 봄날 농촌 들녘에 나서면 이랴이랴(이러이러, 앞으로 갈 때), 워워(가던 소를 멈출 때), 어뎌어뎌(엉뚱한 곳으로 갈 때), 낭창낭창한 농부들의 소 모는 소리가 햇살처럼 가득했다. 쟁기질 없이 어찌 싱싱하고 보슬보슬한 흙의 속살을 볼 것이며, 된장국처럼 구수한 흙냄새를 맡을 것인가. 따지고보면 찰지고 튼실한 땅도 다 바지런한 쟁기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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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팔이 없는 할머니가 앞에서 끌고, 할아버지가 뒤에서 보습을 밀며 감자밭 손끌쟁기질을 하고 있는 어느 봄날의 풍경.

농경사회였던 옛날에는 쟁기야말로 농기구 가운데 가장 긴요한 연장이었다. 아무렴 밭을 갈아야 씨를 뿌리고, 씨를 뿌려야 나락걷이를 할 수 있었음에랴. 때문에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는 쟁기를 아직도 ‘옌장’(연장)이란 말로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쟁기는 호리쟁기와 겨리쟁기로 나뉘며, 호리는 소 한 마리가, 겨리(돌이 많은 거친 밭을 갈 때 쓰였다)는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를 일컫는다. 과거에는 겨리도 흔하게 보는 쟁기였지만, 논밭이 좋아진 지금은 대부분 호리를 쓰고 있다.

쟁기와 같은 쓰임으로 극젱이(손끌쟁기)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쟁기보다 땅을 얕게 갈아야 할 때, 즉 채마밭이나 감자밭, 콩밭 등의 흙이랑을 북돋워줄 때 쓰였다. 이 때 소의 힘을 빌어도 되지만, 밭작물이 밟힐 것이 걱정돼 사람이 앞에서 끌 때가 많았다. 그러나 가난이 원수라서, 정말로 소가 없어서 사람이 소를 대신해 밭을 가는 경우도 있었으니, 가난한 사람의 쟁기, 극젱이가 바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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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가 끌던 이 쟁기질도 트랙터와 경운기에 밀려 그 소용을 다하고 있다.

쟁기는 선사시대 때부터 사용한 가장 오래된 농기구 가운데 하나로, 수천 년에 이르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그것이 경운기와 트랙터에 밀려 소용을 잃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십여 년에 불과하다. 사실 쟁기는 우리에게 있어 단순히 밭가는 농기구만은 아니었다. 옛말에 남자는 쟁기질을 잘해야 장가간다고 했으니, 쟁기는 농부들의 목숨과도 다름없었다. 시인 박운식은 <쟁기>라는 그의 시에서 “먼 곳을 보고 쟁기질을 해야지/이랑이 똑바른 거여/코앞만 보고 쟁기질하니/저렇게 꾸불꾸불하지”(<쟁기> 중에서)라며 쟁기질을 인생에 비유한 적이 있다. 무릇 인생은 쟁기질이다. 이랑이 구불구불해졌다고 쟁기를 탓해서도, 소를 탓해서도 안 된다. 구불구불 제멋대로 쟁기질한 자신을 탓할 일이다.

*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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