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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5 평생 제주민속에 몸바친 진성기 관장 (6)

평생 제주민속에 몸바친 진성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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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제주민속에 몸바치다: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



-자네는 뭐하는 사람인가?

-저는 그저 여행다니고, 사진 찍는 한량입니다.

-여긴 처음인가?

-다섯 번째 방문입니다. 선생님은 세 번째 뵙는데, 기억 못하시죠? 저번에 여기서 <제주도 무속논고>라는 책도 사갔는데...제주도에 오면 늘 이곳으로 당신상을 보러 옵니다.

-그렇구만...자네도 이런 데 돌아다니는 걸 보니...나중에 박물관이라도 차릴 셈인가!

-저는 그냥 여행이나 다니며 살랍니다.

-그래 당신상 구경은 다 했나?

-네.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합니다...

-요 근처 윤동지 영감당에도 가 보게나...진짜 좋은 당신상이네.

-지난번 선생님이 일러주어서 다녀왔습니다...창호지로 옷을 입혀 놓아서 그냥 옷 입힌대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인사 드리고...옷을 좀 벗기겠습니다...하고 찍으면 되는데...

걸어다니는 인간 박물관,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

143위 당신상을 들여앉히다
 


제주민속박물관 진성기 관장(72)을 만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여전히 정정하시다. 박물관 바깥 무신궁에서 내가 당신상 구경을 하는데, 선생은 나를 불러 차나 한잔 하란다. 그가 손수 물을 끓여 차를 내온다. 무신궁에 모셔놓은 143위의 당신상은 모두 당신이 손수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찾아내고, 버려지다시피한 것을 거두어 여기에 앉힌 것이다. 과거 제주도에는 ‘당 오백, 절 오백’이라 할 만큼 당과 절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 그 많았던 당과 절은 상당수가 사라져 버렸다. 특히 당집은 미신이라는 이유로 조선을 거쳐 현대에까지도 많은 시달림을 받았다. 제주에서는 무당을 가리켜 ‘심방’이라 부르는데, 이들 또한 시달림을 피해갈 수 없었다. 더욱이 4.3항쟁 때 수많은 마을이 불타면서 당집도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



이 손이 바로 평생을 제주문화와 민속유물을 찾아내고 기록한 바로 그 손이다. 


사실 뭍과 뚝 떨어진 섬나라에서 무속은 그들이 믿고 의지해온 유일한 종교였다. 온갖 시달림 속에서도 제주에서 그나마 무속이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민중의 뿌리깊은 믿음 때문이다. 지금도 제주에서는 간혹 10~15일이나 걸리는 큰굿이 열리기도 하며, 해마다 칠머리당굿과 영등제도 열린다. 진성기 관장은 말한다. 제주를 알려거든 먼저 무속을 알아야 한다고. 또한 제주의 문화를 살리려면 무속의 본래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고. 그는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64년 개인 돈을 들여 사설 박물관을 열고, 그곳에 무속과 민속에 관련된 수천 점의 자료와 도구들을 들여앉혔다. 때로는 봇짐을 싸서 자리를 옮겨야 했지만, 그는 끝끝내 박물관을 지켜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을 비롯해 수십여 권의 민속관련 책과 자료집을 냈다.



제주민속박물관의 전시물.


-그래 제주도에 와서 어디 어디 가봤나?

-뭐 두루두루 돌아다녔습니다.

-나는 제주도에 오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름난 관광지만을 찾는 게 안타깝네. 그건 제주의 겉모습만 보는 것이지. 제주도의 참모습을 보려면 그 속내를 들여다봐야 하네. 섭지코지나 중문이나 이런데보다 화북동의 윤동지 영감당이나 화천사 뒤란의 당신상을 구경하는 사람이 진짜 제주도를 아는 사람이지.


나 또한 그런 생각에 동감한다. 내게는 제주도의 모든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왔지만, 사실 그것은 무신궁의 당신상이나 윤동지 영감당, 화천사의 당신상만큼 가슴에 오래 남지 않았다. 진성기 관장이 없었다면, 이 좋은 구경 어찌 할 수 있었을까.


제주문화, 제주민속 연구의 중심 진성기 관장 


사실 제주도민속이나 무속을 연구하는 사람은 진성기 관장을 거치지 않으면 연구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진성기 관장은 제주문화, 제주민속 연구의 중심이고 주춧돌이나 다름없다. 그의 고향은 한경면 고산리.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잠녀였던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제주 민속품을 모으기 시작했으며, 제주대 국문과 재학 시절에는 보다 본격적으로 제주도를 누비고 다니며 민속 조사에 심취했다. 그의 고집스런 고물상(남들은 그렇게 불렀다) 직업은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제주민속박물관 무신궁의 심방집(무당집).


1957년 역시 잠녀였던 변순아 씨와 결혼한 뒤에도 그의 떠돎과 수집과 민속조사는 계속되었고, 점점 더 심해졌다. 그렇게 그가 고생고생 채집한 제주도의 신화와 전설, 민요와 무가가만 해도 무려 1만여편. 모두 발로 뛰어 얻어낸 것들이다. 당연히 밖으로만 떠돌다 보니 집안 살림은 오롯이 아내의 몫이었다. 아내 변씨는 야속한 남편을 탓하면서도 물질과 집안일로 살림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워내는 두몫잡이 일을 다 해냈다. 사실 진성기 관장보다 고생한 것은 그의 아내였다. 지금 그의 아내는 당신보다 늙어서 이제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윤동지 영감당의 창호지로 옷을 해입힌 당신상.


-사모님 고생을 너무 많이 시키셨군요.

-아내의 고생을 알면서도, 그 때는 돌아다니고, 민속조사하고, 책 쓰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지.

-그럼 박물관은 언제부터?

-1964년 6월. 제주 전역에서 수집한 450여 점의 민속유물과 당신상을 모시고 제주민속박물관 간판을 내걸었어.


국내 사설박물관 1호, 제주민속박물관 


그가 세운 제주민속박물관은 우리나라 사설박물관 1호로도 유명하다. 올해로 44주년이 된다. 3층의 박물관 안에는 제주도의 민속, 생활문화와 관련된 유물 약 3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그는 1958년 <제주도 민요> 제1집을 시작으로 <제주도 설화집>, <제주도 무가집>, <제주도 지명의 유래집>, <제주도학>, <제주도 무가 본풀이사전> 등 지금까지 30여 권이 넘는 제주도 관련 책도 펴냈다. 이 가운데 <제주도 무가 본풀이사전>은 한국출판문화상까지 받았다.



제주도 돌문화의 상징은 돌하르방이 아니라 당신상이라야 옳다.


박물관에 수천 점의 유물이 있지만,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깥의 무신궁에 모셔진 143위의 당신상이다. 돌하르방보다 훨씬 이전부터 당신상은 이미 제주를 대표하는 석상이었다. 그럼에도 이제껏 당신상은 돌하르방보다 훨씬 못한 취급을 받아왔다. 진성기 관장은 당신상이야말로 제주민속문화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도 당신상이 돌하르방보다 훨씬 예술적이고 미학적이며 민속적으로 보인다.


-저기를 한번 보게. 당신상이 웃고 있는 거!



당신상이 웃고 있다. 그러나 가만 보면 당신상은 울고 있다.


그렇다. 당신상은 분명 웃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진성기 관장도 웃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그의 얼굴은 당신상을 닮아 있다. 제주도의 어느 곳에서나 나뒹구는 현무암 돌멩이에 그저 최소한의 선과 조각으로 만들어낸 당신상의 얼굴은 바로 흔하디 흔한 당신의 얼굴이며, 당신의 표정이 아닌가.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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