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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6 정영 <암스테르Dam>

정영 <암스테르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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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Dam

                                                                                              정영


지구의 모든 땅들이, 아직, 물 위에 떠 있다. 밤새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한장의 사진도 찍지 못했다. 거리마다 해시시 연기가 안개처럼 퍼져 허리를 감아올릴 때, 뜻과 다른 걸음으로 물 위를 걷는 내 육체에게 깊게 키스했다. 골목에서 청소부들이 깨진 병을 인구밀도만큼 쓸어담을 때, 흔들리는 영혼들과 만났다. 우리는 물 위의 거리, 홍등가에서 긴 사슬의 족쇄를 차고 빙빙 돈다. 골목 끝에서 붉은 불빛의 여자가 푸른 해시시 연기와 몸을 섞는다. 싸구려 호텔과 정적 사이에 숨어 있던 날카로운 비명이 물 위에 비친다. 물은 고인 것처럼 보였으나, 바다는 지구의 한쪽에서 한쪽으로 흐르고 있으므로, 지구는 자전과 공전에 목숨 걸고 있으므로, 그토록 거대한 진리는 우리를 목숨 걸게 했다. 술집마다 청춘처럼 피어오른 나뭇잎들이 제 몸을 태웠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허기를 인정했다. 삶을 지탱하는 내부의 진리. 해시시 연기처럼, 마른 나뭇잎에 매달려 온 몸을 흔들며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 한 세기의 영혼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지구가 돌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수천년 전에 몸을 태웠을 것이다. 뼛속에 맺히다가 원을 그리는 해시시 연기가 내 입가에서 말한다. 너는 오래전에 암스테르담에 중독되었다. 물 위의 생. 벗어날 수 없는 진리의 끝.

-- 시집 <평일의 고해>(창비, 20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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