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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9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294)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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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요 며칠 달타냥이 보이지 않아 오늘은 오랜만에 녀석과 산책이나 좀 하려고 파란대문집을 찾았다. 가는 길에 봄 햇살이 좋아서 나는 혼자 콧노래도 흥얼거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목련은 그 큰 잎을 뚝뚝 떨어뜨렸고, 벚꽃나무 아래를 지날 때는 화르라니 내리는 꽃비를 맞으며 파란대문집에 이르렀다. 대문 앞에 서서 한참이나 녀석을 불러보았으나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낮부터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하여튼 이 녀석 요즘 툭하면 집을 비운다니까.

 

 "오늘 참 날씨 좋네. 멀리 산책 가기엔 그만인 날이야!"

 

공연히 나는 헛걸음한 것이 아까워 파란대문집 뒤란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고샅에 앉아 멀거니 앵두꽃을 구경했다. 비가 그친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났다. 홍매화 한 그루는 화사한 새색시처럼 꽃화장을 한 채 울타리 옆에 서 있었다. 어차피 저녁이면 우리집으로 밥을 먹으러 올 테지. 나는 타박타박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이 되었는데도 달타냥은 밥을 먹으러 오지 않았다. 사실 달타냥은 최근 들어 하루에 한두 번씩 우리집을 들러 밥을 먹고 가곤 한다. 주로 녀석은 저녁 어스름에 밭고랑을 가로질러 오래 전 바람이가 주로 다니던 꽃다지 방죽을 건너 우리집으로 오곤 했다.

 

 "내가 오랜만에 아저씨를 위해 특별 발라당 서비스를 해 드릴게..."

 

그런데 나흘 전인가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고 있을 때, 불시에 나타난 ‘게걸 조로’에게 쫓겨난 적이 있다. 조로에게 쫓겨서 녀석은 뒷산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산비탈을 미끄러져 개울로 내려갔다가 논배미를 살금살금 기어서 꽃다지 방죽에 도착했더랬다. 조로 녀석이 식사를 하다 말고 그런 달타냥과 눈이 마주쳤다. 조로 녀석은 걸신들린 듯 먹느라고 달타냥을 쫓아갈 생각도 없는데, 달타냥은 지레 겁을 먹고 꽃다지 방죽을 모양 빠지게 내달리며 도망을 쳤다. 요 며칠 안보이는 게 혹시 그것 때문일까. 보기보다 소심한 성격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달타냥은 대문 앞에서는 물론 밭가에서도 전에 없이 발라당을 했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내가 저녁 배달을 해주자고 나는 저녁 어스름에 다시 길을 나섰다. 때마침 마을회관을 지나는데 회관에서 나오는 파란대문집 할머니와 마주쳤다. 나는 꾸벅 인사를 드리고 달타냥의 안부를 물었다. “집에 고양이 있나요?”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렸다. “고양이 죽었어유.”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예? 죽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고양이가... 어제 죽었어유.” 할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졌다. “아니 왜요? 나흘 전에도 제가 봤는데요?” “여기 동네 사람덜이 텃밭 파헤친다고 하도 고양이 좀 묶어놓으라길래 어제 그 놈을 줄에다 묶어 매놨는데, 밭에 갔다가 와 보니까 죽어 있드라구유.”

 

최근에 단짝이었던 깜찍이가 출산을 하러 어디론가 떠났는지, 달타냥은 혼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요즘 마을회관에 들를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할머니한테 “고양이 좀 묶어놓으라고” 여러 번 쓴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달타냥을 줄에 묶어놓은 것인데, 하필이면 그 줄이 올무처럼 잘못 묶여서 고양이가 빠져나가려고 고개를 젖힐 때마다 목이 조여 왔던 모양이다. 고양이는 갑갑하니까 점점 더 세게 발버둥을 치며 달아나려 했던 모양이다. 결국 고양이를 묶어놓았던 줄은 올무가 되어서 고양이의 목을 졸랐고, 고양이는 숨이 막혀 죽었다는 것이다. “어떡해요! 고양이 불쌍해서!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저 안에 있던 놈이 담벼락까지 기어와서 죽었드라구유.” 할머니는 한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 놈이 요새 잘 먹어서 그런지 이만한 게 얼마나 무겁던지...” 아기고양이 시절에 안아보고는 죽어서야 다시 안아보았다고 했다.

 

 "묘생이 다 그런 거겠죠? 아저씨!"

 

“할머니하고 정이 많이 들었을 텐데...” “정이 들었쥬. 3년이나 같이 살았는데유. 얼매나 아까운지 모르겠어유. 내가 딸네 집 가느라구 그때 열흘이나 집을 비우구 왔더니만, 저기 대문에서부터 쫓아와서는 앞에 막 드러눕구, 얼굴을 비비구... 그런 고양이가 어딨어유. 밭에 갈 때두 따라오구, 회관 갈 때두 따라와서 차 밑에서 기다리구...어쩌겠어유. 사람덜이 묶어놓으라는데...” “그래서 고양이는 지금 어딨어요?” “저기 밤나무 옆에 산에다 묻었어유.” 그곳은 달타냥과 내가 처음으로 산책을 가던 길목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나두 섭섭허지만, 아저씨가 더 섭섭허겠어유. 사료두 갔다 주구 했는데...”

 

 나흘 전 저녁 무렵 우리집에 와서 진달래 아래서 밥을 먹던 달타냥의 모습.

 

내 슬픔이 할머니의 슬픔만 할까. 할머니는 혼자 사는 독거노인으로서 달타냥이 곧 친구이자 아들이나 다름없었다. “할 수 없쥬 뭐. 어디서 새끼 한 마리 데려다가 정을 붙여야쥬. 그것두 있다가 없으니까 허전해유. 근데 식사는 했어유. 안 먹었으면 회관에 오늘 잔치라구 개국 끓였는데, 좀 줄까유?” 할머니는 자기네 집 고양이에게 유일하게 잘해 주고, 잘 놀아준 나에게 무언가라도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괜찮다고 하자, 할머니는 “그럼 가유!” 하면서 지팡이를 짚고 파란대문집으로 걸어갔다. 이제 기다리는 고양이도 없고, 밤에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지도 않는 그런 집으로. 혼자서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찔끔 흘러내렸다. 눈물 속에서 줄레줄레 할머니를 뒤따라가는 달타냥의 모습이 얼핏 어룽거렸다.

 

 우리집 마당에 '조로'가 나타나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치던 달타냥. 이 모습이 내가 본 달타냥의 마지막 모습이다. 예전에 바람이가 절룩거리며 걸어오던 꽃다지 방죽. 그 좋아하던 캔이라도 하나 먹여서 보낼 걸.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중얼거렸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왜 그런지 자꾸만 달타냥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며칠 전 대문 앞에서 발라당을 할때 한번 더 쓰다듬어나 줄걸. 산벚꽃 지기 전에 함께 산책이나 더 다녀올걸. 요즘 매일같이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간다고, 굶지 않으니 됐다고, 나는 녀석에게 예전보다 살갑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목에 맨 줄이 숨을 조여올 때 녀석은 얼마나 원망했을까. 할머니를, 또 나를, 그리고 또 대문 앞을 지나다닌 무수한 인간들을. 그렇게 달타냥은 이 세상을 원망하며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파란대문집 할머니의 뒷모습. 할머니를 호위하며 뒤따라 걷던 달타냥은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내에게 소식을 전해야 할것만 같아서 나는 진정을 하고 전화를 걸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가 파란대문집을 지날 때마다 달타냥은 냐앙냐앙 하면서 아내를 불러세우던 녀석이었다. 파란대문집을 지날 때면 꼭 한번은 달타냥을 쓰다듬고 가는 아내였다. 소식을 듣자마자 아내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그렇게 우리는 5분 넘게 아무 말도 없이 전화기만 서로 붙들고 있었다. 아내를 마중하러 역으로 나가보니 아내의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전철에서 1시간 내내 울기만 했다고. 그러면서 아내는 나를 끌어안고 또 한참을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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