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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2 갸륵한 골목 28

갸륵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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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륵한 골목




고양이가 앉아 있던 그 골목은 갸륵했다.
여름이었고, 참을 수 없는 뙤약볕이 세상의 모든 길과 지붕을 달구었다.
이따금 쏟아지던 빗줄기는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었지만,
그럴 때마다 고양이는 빗속에 갇혔다.
다행히 고양이에게는 골목이 있었다.
양철지붕과 벽돌담장 사이로 난 조붓한 뒤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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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목은 하루종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갑자기 빗발치는 소나기를 막아주었다.
그 골목은 이제 동네 고양이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간이 휴게소’가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사람들이 그곳을 별로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고양이는 고양이다운 행동이 보장되었다.
고양이가 고양이답지 못한 것은 고양이로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 골목은 고양이에게 고양이다움을 보장하는 해방구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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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그곳에서 먹고 자고
눕고 뻗고 울고 웃고 사랑했다.
오랜 동안 헤어졌던 어미와 딸 고양이는 그곳에서 해후했다.
지난 봄 둥지를 잃고 떠돌던 고양이는 이곳에서 새끼를 낳았다.
골목은 대체로 무난했고, 대체로 무해했다.
담장을 넘어가면 논배미가 펼쳐졌고,
큰길을 건너면 개울이 흘렀다.
집주인은 무관심했으므로 마음에 들었고,
야트막한 돌담이 녀석들의 사생활을 보호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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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서너 마리의 고양이가 앉아 있는 그 골목은
고양이가 있어 더욱 보기에 좋았다.
그것은 가끔 사랑스럽고 눈물겨운 생태계였다.
인간이 사는 마을과 도시마다 고양이가 있고,
그 골목마다 고양이가 있다고 해서
그 도시와 마을의 미관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도리어 고양이는 죽은 듯 삭막하고 인정머리 없는 도시와 마을에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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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고양이를 때려잡자는 구호 속에서도
고양이는 꿋꿋하게 살아남았고,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는 가혹한 세태 속에서도
고양이는 끝까지 우아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 골목의 주인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에는 마치 이 땅과 저 강이 자기 것인양 파헤치고 훼손하는 부류도 있다.
그것을 망가뜨리고 양심의 가책도 없는 부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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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그런 부류라면
당신만큼은 고양이에게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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