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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2 길고양이 영역다툼의 현장 32

길고양이 영역다툼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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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영역다툼의 현장


 


길고양이는 일생을 길 위에서 산다.
그 길은 생존의 현장이며 치열한 삶의 각축장이다.

알려져 있듯 길고양이는 영역생활을 하는 영역동물이다.
그 영역은 유연할 수도 굳건할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시골의 고양이들은
도심의 고양이들에 비해 훨씬 넓은 영역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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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이와 순둥이가 합동작전을 펼치듯 둥지 앞 공터에서 여울이와 노랑이를 경계하며 빙글빙글 주위를 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시골 고양이가 똑같은 건 아니다.
종종 길고양이 급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나
먹이가 풍부한 공간은
도심과 다름없이 고양이 밀도가 높고
그만큼 영역의 너비도 잘게 나뉜다.
이웃마을 당돌이가 터를 잡은 영역도 그런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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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이가 자신의 둥지 앞에 나타난 여울이와 노을이를 경계하기 위해 납작 엎드려 공격자세를 취하고 있다(위). 당돌이네 둥지의 먹이를 노리는 노을이와 멀찍이서 지켜보는 여울이. 그리고 집 안쪽 화단에 앉아 있는 왕초고양이 흰노랑이(잘 보면 보입니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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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곳은 당돌이와 순둥이, 여울이, 새로 이사 온 노랑이, 축사냥이의 아빠이기도 한 흰노랑이 왕초고양이,
이렇게 네 개의 영역이 접경을 이루고 있어
첨예한 대립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인근에는 봉달이와 덩달이의 영역까지
그야말로 이곳은 영토분쟁의 화약고와 같은 곳이다.
당돌이와 순둥이는 바로 이 황금영역이자 화약고의 중심에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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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를 먹고 있는 당돌이에게 접근하는 교회에서 새로 이주한 노랑이.

흰노랑이는 왕초고양이답게 축사에서부터 봉달이네 소나무 언덕까지
자유자재로 영역을 넘나드니까 딱히 분쟁의 당사자이기보다는 방관자에 가깝지만,
나머지 세 그룹은 종종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일 때도 있다.
지난겨울 순둥이가 뒷다리 오른쪽 허벅지에 털이 다 뜯겨나갈 정도의 상처를 입은 것도
바로 영역다툼의 결과로 추측된다.
여울이는 임신을 한 상태여서 영역다툼에 소극적인 편이지만,
새로 이사 온 노랑이는 마치 이곳에 새로운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듯
거칠게 당돌이와 여울이를 몰아붙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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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둥이가 먹이를 먹는 동안 새로 이사온 노랑이와 눈앞의 여울이를 상대로 경계의 자세를 취하며 왔다갔다 보초를 서는 당돌이.

벌써 여러 번 당돌이네 사료그릇에 부어놓은 사료를
마치 제것인양 먹어치웠다.
그것도 자신의 영역이 아닌 당돌이네 둥지에서 버젓이 당돌이와 순둥이를 쫓아내고 말이다.
당돌하기 짝이 없는 당돌이도 이 듣보잡 고양이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맥을 못춘다.
사실 이곳에 새로 터를 잡은 노랑이는 우리 동네 교회에서 여러 번 마주쳤던 고양이다.
언젠가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녀석은 입술에 장애가 있는 이른바 ‘언청이’ 고양이다.
당돌이와 여울이가 장애묘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먹이를 배려하는 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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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앞에서 여울이가 나를 향해 먹이구애행동인 발라당을 하자 덩달아 경계심을 풀고 누나인 여울이의 발라당을 따라 하는 당돌이(위). 그러자 그 앞에 있던 노을이도 갑자기 발라당을 시작한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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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노랑이 녀석은 여울이의 밥과 당돌이네 밥을 제 밥처럼 챙겨먹는다.
따로 녀석에게 밥상을 차려주는데도
녀석은 보란듯이 여울이와 당돌이의 밥을 차지하곤 한다.
한번은 당돌이네 둥지 앞 공터(마의 삼각지대)에서
당돌이와 순둥이, 여울이, 노랑이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며 으르렁거리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기세는 당돌이가 올렸지만
정작 먹이 앞에선 당돌이도 노랑이의 ‘하악질’에 자리를 비켜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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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이네 둥지가 있는 집안의 화단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는 이 동네 왕초고양이 흰노랑이.

사실 봄이 되면서 이 영역다툼은 더 치열해졌다.
흔히 봄이 되면 도심의 길고양이도 흔하게 영역싸움을 벌이곤 한다.
대체로 길고양이는 사계절 발정이 나고 새끼를 낳지만,
특히 봄에 새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봄철의 치열한 영역다툼도 그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그러니까 발정이 난 수컷은 다른 영역을 기웃거리게 되고,
임신한 암컷은 보다 안전한 둥지를 찾을 수밖에 없다.
영역다툼은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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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에게 마실을 간 봉달이. 함께 평화롭게 앉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고양이들이 영역에 대해 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내가 목격한 바로 봉달이는 종종 여울이와 노을이네 영역으로 마실을 가곤 한다.
이 녀석 여울이와 노을이 사이에 끼어 버젓이 어울리곤 한다.
여울이도 여러 번 봉달이네 집 근처로 마실을 가지만,
덩달이가 늘 탐탁치 않게 여긴다.
우리가 사는 이 마을과 도심에는 우리가 모르는 고양이들만의 영역지도가 있다.
그 지도의 국경선은 오래 유지될 수도, 수시로 바뀔 수도 있다.
그 영역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불사할 수도, 평화롭게 타협할 수도 있다.
그건 길고양이만의 세계이고, 길 위의 법칙이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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