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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9 어미고양이는 왜 죽었을까 78

어미고양이는 왜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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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고양이는 왜 죽었을까



 

지난번 블로그에 올린 <고양이독립만세?> 편은 어미고양이 까뮈가
두 마리의 아기고양이를 독립시키고 떠났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러나 그 글은 잘못된 것이었음을 밝힌다.

두 마리의 아기고양이 당돌이와 순둥이가 독립한 것은 맞지만,
어미고양이는 영역을 물려주고 떠난 게 아니었다.
어미고양이는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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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가 두 마리의 새끼에게 남기고 간 골목의 영역에서 당돌이와 순둥이는 영문도 모른채 어미를 기다리고 있다.

엊그제, 사료배달을 나갔다가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 말았다.
당돌이와 순둥이에게 사료를 나눠주고
큰길로 나와 잠시 개울을 따라 산책하는데,
개울가 쓰레기더미에서 시커먼 주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고양이였다.
주검의 형태는 참혹했다.
불로 태운 쓰레기더미에 주검의 일부는 묻혀 있었다.
주검의 상태로 보아 이곳에 버려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했다.
그곳은 자주 지나는 길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었지만,
그동안 여러 번 눈이 내리고 쌓여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크기나 무늬, 느낌으로 보아 그건 까뮈가 분명했다.
이 주변의 영역에서 까뮈처럼 생긴 고양이는 못 보았으므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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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당돌하게 행동해서 '당돌이'라 이름붙인 녀석이지만, 요즘 녀석은 사람만 보면 경계의 눈빛과 불안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지난 달 2월 중순께부터 까뮈가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미고양이가 죽은 것도 그 때쯤으로 추정된다.
도대체 어미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까뮈는 새끼를 낳고 기르던 둥지가 철거되는 바람에
엄동설한의 대부분을 떠돌이 고양이 신세로 보냈다.
그 과정에서 다섯 마리의 새끼 중 세 마리는 먼저 고양이별로 돌아갔고,
두 마리의 새끼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
어미는 그런 새끼들을 위해 지난 2월 초 골목에 새로운 영역을 차지해 거처를 마련했다.
그러고는 2월 중순, 돌연 어미고양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어미고양이가 새끼들에게 영역을 마련해주고 독립을 시킨 뒤
다른 영역으로 떠난 것으로 보았다.
뒤늦게 까뮈의 주검을 보고서야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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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둥이는 어릴 때부터 순하고 겁이 많아서 앞으로의 험난한 날들이 걱정이다.

어미고양이는 다른 영역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까뮈와 두 마리의 새끼를 지켜본 나로서는 의문이 남는다.
까뮈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다.
골목의 새로운 영역에 거처를 마련한 뒤부터
까뮈와 두 마리의 아기고양이는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유지해 왔다.
먹이는 정기적으로 내가 배달을 했으므로
어미가 굶어죽었을 리는 만무하다.
또한 가장 추웠던 혹한의 날씨를 견딘 후여서 얼어죽었을 가능성도 없다.
그렇다면 두어 가지의 가능성이 남는다.
첫째는 로드킬을 당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까뮈가 둥지를 차린 골목은 다소 좁아서 차가 다니간 해도 속도를 낼만한 공간이 못된다.
더욱이 골목으로는 많은 차량이 다니는 것도 아니다.
개울가에 버려진 것으로 보아 큰길에 나왔다가 로드킬을 당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개울가 큰길은 차가 많이 다니고 속도도 낼 수 있는 곳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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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폭설이 내렸을 때, 어미고양이 까뮈와 당돌이, 순둥이의 단란한 한때.

그리고 이건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 일부러 해코지를 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까뮈가 사라질 무렵쯤이었다.
까뮈네 식구들이 머무는 골목의 건물 아래 내가 사료를 부어주는 ‘먹이그릇’이 산산이 부서진 적이 있다.
누군가 일부러 돌로 내리쳐 깨뜨린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것이 그냥 아이들 장난 정도로만 여기고 넘어갔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먹이그릇을 깨뜨린 돌멩이 옆에는 부러진 각목도 하나 놓여 있었다.
예전에 찍어놓은 사진을 뒤져보니, 사실 그대로였다.
가뜩이나 사람을 좋아해서 발밑까지 다가와 발라당을 하던 녀석이었다.
물론 이런 정황만 가지고 까뮈가 봉변을 당했을 거라고 추측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왠지 나는 누군가 그랬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오래 전 ‘애꾸냥이’를 소개할 때 이 동네에서 누군가 고양이에게 돌을 던져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어미가 떠난 뒤부터 부쩍 경계심이 많아지고, 눈빛이 달라진 당돌이와 순둥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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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일부러 돌멩이를 내리쳐 깨뜨려버린 먹이그릇과 의문의 각목 하나(위). 개울가 쓰레기더미에 꽤 오래 전에 버려진 듯한 어미고양이의 주검. 오랜 동안 눈과 시간에 묻혀 있었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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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미가 떠났다고는 하나
먹이를 주던 나에게까지 그렇게 경계심을 드러낸다는 것은 뭔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어미가 있을 때 내 발밑까지 다가오던 녀석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멀찍이서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다.
요즘 먹이를 먹다가 작은 소리에도 녀석들은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녀석들은 독립을 한 것이 아니라 천하의 고아 고양이가 된 셈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녀석들은 어미가 돌아오기만 기다렸을 것이다.
어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어미가 곧 맛있는 먹이를 구해 올 것이라 믿으며
내내 기다렸을 것이다.
기다림에 지쳐 가끔은 큰길까지 나가 냐앙냐앙 울어도 보았을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떠난 어미를 수없이 원망도 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새끼들에게 엄마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가슴 미어지는 일인가.
당돌아, 순둥아!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는단다.
이제 너희들이 스스로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어야 하는 거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렇게만 견디면 되는 거다.
지금껏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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