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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8 전원고양이의 꽃같은 시절 27

전원고양이의 꽃같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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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지금 뭐하세요?”

 

“할머니 뭐하세요?”

전원주택 테라스에서 봄볕에 몸을 덥히던 고양이들이

일제히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호미를 들고 테라스 앞 화단의 흙을 보슬보슬 돋우었다.

화단에는 벌써 앵초가 손톱만큼 올라오고 있었다.

 

 예쁘게 핀 앵초꽃 너머로 보이는 고양이.

 

혹시라도 고양이들이 화단에 올라온 앵초를 짓밟아 놓을까봐 할머니는 노심초사이다.

고양이들은 아예 궁금함을 못참고 테라스에서 내려와

할머니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아이고, 저 놈들 봐! 뭐 하나 구경하는 것좀 봐!”

할머니가 화단을 돌아 집안으로 들어가자 고양이들도 덩달아 테라스로 돌아갔다.

이건 지난 4월 초 어느 봄날 전원주택에서 만났던 풍경이다.

 

 "할머니 지금 뭐하세요?" 호미질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고양이들.

 

그리고 그로부터 보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할머니가 호미질을 하던 화단에는 분홍빛이 감도는 연보라 앵초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다행히 고양이들은 앵초 싹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끼는 화초라는 것을 녀석들도 아는지

희한하게 녀석들은 마당 구석구석의 화단에서 자라는 화초만큼은

용케 알고 건드리지 않았다.

 

 전원주택 마당에는 여기저기 화초가 올라오고, 고양이들은 그 속에서 꽃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4월로 접어들면서 전원주택 마당가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났다.

벚꽃은 여러 그루가 한꺼번에 폭죽을 터뜨리듯 피어서 전원주택을 에워쌌다.

어느 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어제 좀 오지 그랬어요. 어제 정말 기가 막혔어요. 금순이가 저 다롱이 새끼들 죄 데리고 저기 옆에 벚나무 있잖아요. 그리로 올라가는데, 거의 꼭대기까지 막 올라가서 놀더라고요. 거기 새가 있었는지 그렇게들 올라가서 여섯 마린가가 노는데, 히야 저걸 사진으로 찍어야 되는데, 내가 그랬다니까. 속으로 내가 하이고 이 선생이 와야 하는데... 그러면서.”

으윽, 어제 좀 올걸 그랬다고 나는 그때 후회를 했더랬다.

 

 어느덧 훌쩍 커버린 소냥시대 아이들.

 

마당 앞에는 목련도 한창이다.

지난 주 절정을 넘겨서 이번 주에는 뚝뚝 그 커다란 꽃잎을 떨구고 있다.

생의 첫 봄을 맞은 소냥시대 녀석들(사실 다섯 마리 가운데 한 마리 빼고 나머지는 다 수컷이다. 그래도 한번 소냥시대는 영원한 소냥시대다.)은

요즘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를 맞아 종종 탈선을 서슴치 않는다.

노랑이 한 녀석은 어느 날 마당을 나가서 어딘가를 몇 시간째 떠돌다 들어왔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부풀어서 수컷 녀석들은 암컷 주위를 기웃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겨우내 따뜻한 자리를 찾던 녀석들이 이제는 햇볕을 가리는 곳을 찾는다.

 

하긴 봄바람은 불지

산에서는 생강나무꽃이며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지

목련 꽃잎은 떨어지지

새들은 삐비 찌찌 울어대지

등산 가는 사람들은 호호 하하 산으로 올라가지.

마음이 싱숭생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삼색 팬더 고양이. 녀석도 최근 몸을 푼 것 같은데, 집 바깥에 새끼를 낳은 듯하다.

 

반면 두 마리의 새끼를 낳은 다롱이에게 쫓겨난 중고양이 고등어 세 마리는 아예 멀리 이곳을 떠난 듯하고,

쫓겨난 성묘 고등어 한 마리는 거의 매일같이 집 주변에서 아앙아앙 울고 있다.

임신을 해서 배가 불룩해진 고래와 산둥이 또한

집 인근을 배회하며 울고 다닌다.

‘다롱이의 난’으로 이제 전원주택은 묘구수가 십여 마리로 오히려 줄었다.

새끼 두 마리를 포함해도 열두 마리쯤 된다.

 

 소냥시대 탈선의 현장. 어디를 몰래 떠돌다 오는 것인지.

 

요즘에는 내가 풍족하게 사료를 배달하고 있는데도 다롱이 녀석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랑곳없이 봄이 완연한 전원주택 마당은 벚꽃과 목련으로 삼삼해서

팬더 삼색이와 금순이, 소냥시대 아이들은

그림같은 전원주택 봄 속을 사뿐사뿐 거닐고 있다.

그야말로 전원고양이의 꽃같은 시절이다.

 

 전원주택에서 쫓겨난 성묘 고등어 한 마리가 바깥 밭 언저리에서 아앙아앙 울고 있다.

 

* 최근 봄바람이 불면서 우리 동네에 등산객이 꽤 많이 찾아온다. 그런데 몇몇 등산객의 몰상식한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할머니에 따르면 등산객이 마당에 있던 더덕까지 캐갔다는 것이다. “봄이 되니까 여기 등산객이 많이 올라가잖아요. 하두 사람들이 쳐다보고 그러니까 내가 고양이 밥그릇도 이쪽으로 옮겼어요. 등산객들이 자꾸 놀래키구 그래서... 지나가면서 고양이 키운다고 뭐라 그러는 사람도 많아요. 또 어떤 사람은 허락도 없이 마당에 막 들어와서는 내가 나오니까 고양이 구경한다고 그러드라구. 한번은 등산 갔다 내려오는 사람이 여기 담을 넘어와서는 마당에 있는 더덕까지 캐 갔어요.” 사실 우리 동네는 평소에도 등산객들이 꽤 많이 드나드는 편이다. 작년에도 텃밭의 고추를 따 가는 사람, 몰래 상추를 뜯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동네에서 말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등산객은 터널 입구 비탈에 키워온 호박을 따가다 호박주인 할머니가 소리소리 지르니까 그 자리에 호박을 놓고 도망을 가는 일도 있었다. 오죽하면 군에서 농작물을 따 가지 말라는 현수막까지 붙여놓았을까.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왜 남의 텃밭의 것들을 따가느냐고 하면 오히려 “시골 인심이 왜 이렇게 사나운지 모르겠다.”고 화를 낸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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