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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7 어느 길고양이의 삼각관계 15

어느 길고양이의 삼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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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 고양이의 삼각관계



시골의 한적한 도로가에 꼬리가 짧은 ‘밥테일’(bobtail) 한 마리가 앉아서
발정난 소리로 우왜앵~거리고 있습니다.
가슴과 배는 하얀 털이 나 있고, 머리와 등쪽은 까만 털이 나 있는 흑두건 고양이.
녀석이 바라보는 곳은 도로 아래의 배수구 쪽이군요.

한참 앙칼지게 울고 있던 녀석이 슬슬 배수구 쪽으로 내려갑니다.
가만, 녀석은 터널 속의 ‘올 블랙’을 향해 그렇게 울부짖었던 모양입니다.
하수구와 개천이 연결된 터널 속에서 검은 고양이 녀석도
발정난 소리로 어딘가를 향해 이야옹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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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한적한 도로가에 발정난 울음을 울며 앉아 있는 흑두건 고양이 한 마리(위). 녀석이 걸음을 옮겨 도로 아래의 배수구 쪽으로 내려가고 있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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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녀석이 바라보는 곳은 흑두건 고양이가 아니라
터널에 뚫린 하수구 구멍 속입니다.
잠시 후 그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그 하수구 속에서 갑자기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온 것입니다.
렌즈를 통해 바라보던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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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건 고양이는 배수 터널 속의 깜장이를 향해 구애를 보내고, 깜장이는 터널 속의 작은 하수구 속을 바라보며 구애의 울음을 전하고 있다.

상황은 이랬던 겁니다.
흑두건 고양이는 깜장 고양이에게 구애를 하고 있었고,
깜장 고양이는 삼색 고양이에게 구애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세 마리의 고양이는 삼각관계에 빠져 있었던 거죠.
보아하니 흑두건과 삼색이는 암컷으로 보이고,
깜장이는 수컷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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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이가 바라보던 하수구 속에서 갑자기 삼색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깜장이가 구애를 보낸 상대가 바로 이 녀석이다.

수컷 고양이 깜장이가 복 받은 녀석이군요.
그런데 이 녀석 흑두건의 애타는 눈길과 구애를 자꾸만 피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삼색이에게는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구애행동을 하는군요.
새침떼기 삼색이는 흑두건의 눈치를 살피는지
터널의 하수구를 재빨리 빠져나가 바깥 하수구로 들어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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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의 끝에서 잠시 흑두건을 바라보는 깜장이. 그러나 곧 녀석은 삼색이의 뒤를 쫓아 터널을 벗어났다.

터널 이쪽 끝에는 흑두건이 있고,
터널 안에는 깜장이가 있고,
터널 저쪽 바깥 하수구에는 삼색이가 있는 상황이 된 거죠.
이 때 터널 속에 혼자 서 있던 깜장이가
저쪽 바깥으로 슬금슬금 걸어갑니다.
예상대로 삼색이를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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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바깥 하수구로 자리를 옮긴 삼색이. 아직은 깜장이를 받아들일 태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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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건의 얼굴에 실망과 낙담의 기색이 역력합니다.
이제 깜장이는 바깥의 하수구로 들어간 삼색이를 올려다보며
집요하게 하수구 아래서 구애의 울음을 웁니다.
그러나 삼색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깜장이는 용기를 내서 하수구로 뛰어 올라갑니다.
그러자 삼색이는 깜장이를 뿌리치고 다시 하수구 밖으로 뛰쳐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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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타는 깜장이가 하수구 속으로 뛰어올라갔으나, 삼색이는 도로 하수구 밖으로 뛰쳐내려왔다. 두 녀석의 밀고 당기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삼색이가 어지간히도 깜장이의 애를 태우는군요.
깜장이가 다시 하수구 밑으로 뛰어내리자
삼색이는 도로 풀쩍 뛰어올라 하수구 속으로 들어갑니다.
둘의 밀고 당기기가 한참이나 계속되더니
드디어 30~40분이 지나 둘이 하수구 깊숙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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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 속에서 바깥의 삼색이를 바라보고 있는 깜장이. 집요한 녀석의 구애행동에 결국 삼색이는 하수구로 뛰어올라 둘은 깊숙하고 은밀한 곳으로 들어갔다.

삼색이가 깜장이의 구애를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입니다.
하수구 깊은 곳에서 둘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간간 들려옵니다.
그 순간 도로 위에서 둘의 연애행각을 지켜본
흑두건은 풀이 죽은 자세로 도로를 건너갑니다.
실연을 당한 흑두건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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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이와 삼색이의 연애행각을 지켜보던 흑두건이 실망한 표정으로 도로를 건너간다. 녀석은 오늘 그렇게 실연을 당했다.

삼각관계의 결론이란 것이 언제나 이렇습니다.
두 고양이가 잘 되면 한 고양이는 상처받게 되어 있죠.
그래도 셋 다 불행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상처는 언젠가 아물게 되어 있죠.
그러니 너무 아파할 필요 없습니다.
흑두건에게도 곧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겠죠.

* 고양이의 사생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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