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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8 눈이 즐거운 남해의 봄 3

눈이 즐거운 남해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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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해안을 따라: 바다포구해안마을의 어우러짐

가천마을 사람들이 마늘밭 지나 장대낫을 들고 바닷가로 돌미역을 따러 가고 있다.

 

봄 땅은 향기롭다. 메마른 땅거죽도 단 한번의 봄비에 맨살을 풀고, 숨구멍을 열어 젖힌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흙은 메마름과 딱딱함에서 부드러움과 보슬보슬함으로 제 몸을 바꾼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땅 속의 작은 씨앗이 헐거운 흙을 떠밀고 삐죽 고개를 내미는 소리가 들린다. 조심스럽게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이동하는 벌레들의 발자국 소리도 쿵쿵쿵쿵 들려온다. 봄이 한창인 남해 나들이는 서면 해안을 따라 구미포구에서 시작되었다. 파란 어둠 속에서 포구의 방풍림은 멋진 실루엣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모두 365그루의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오랜 동안 바닷가 마을을 수호해 왔다.


구미포구의 저녁. 방풍림의 실루엣들.

 

구미포구를 지나 목도, 마도, 죽도를 차례로 지나면 선구포구가 나온다. 선구마을 당산나무 아래에는 ‘밥무덤’이 있다. 남면 가천마을에서도 볼 수 있는 이 밥무덤은 제를 지낸 음식을 바치는 밥구덕 당산으로, 죽은 영혼과 현세의 사람들이 모두 밥 굶지 말라는 기원의 의미가 숨어 있다. 선구포구를 지나 가천마을에 이르자 비탈을 따라 층층이 들어선 다랑논이 진풍경을 연출한다. 구불구불한 다랑논 굴곡과 푸른 바다의 절묘한 어우러짐. 이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 속에서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예술품에 다름아니다. 가천마을 다랑논에는 대부분 마늘을 심어놓았는데, 중간중간 심어놓은 유채가 초록 다랑논 틈에서 노란 봄빛을 더한다.

 

다랭이마을로 알려진 가천마을의 다랑이논과 마을 풍경.

가천마을의 숫바위(위)와 유채밭의 흑염소 모녀(아래).

 

어떤 농부는 지게로 거름을 내고, 어떤 아주먼네는 때이른 김매기에 나선다. 어떤 할머니는 다랑논 두렁에 걸터앉아 봄쑥과 냉이를 캐고, 어떤 할아버지는 달구지에 쟁기를 싣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또 이맘때쯤 가천마을 바닷가에서는 미역 따기가 한창이다. 바위가 많은 마을 앞바다에는 자연산 돌미역이 널려 있는데, 썰물 때가 되면 집집마다 아낙네들이 낫으로 만든 장대를 들고 바닷가로 향한다. 가천마을에서는 거대한 암수바위도 만날 수 있으며, 봄이면 암수바위 주변을 물들인 동백꽃도 볼 수가 있다. 가천마을을 지난 해안도로는 아름다운 포구마을 홍현리와 초승달 모양의 해안선이 펼쳐진 화계리를 지나 양아리 두모마을로 이어진다.

 

포구와 물빛이 아름다운 홍현리 풍경.

 

두모마을은 외지인이 잘 모르는 다랭이마을이다. 이 곳에도 가천마을처럼 층층이 다랑논이 바다를 보며 펼쳐져 있는데, 규모는 가천마을보다 작지만, 풍경은 그에 못지 않다. 두모에서 소량을 넘어 대량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나는 바다를 뒤로하고 봄볕 속에 쟁기질을 하는 착한 농부(김일동, 70)를 만났다. 그는 소가 하는 대로 쟁기질을 했다. 소가 쉬면 농부도 쉬고, 소가 저리 가면 농부도 저리 가고. 농부는 마음이 약해 소를 때리진 못하고 이러, 이러 소리만 외쳤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그는 겨우 두어 고랑을 내고는 워워, 풀밭으로 소를 데려가 연하고 맛좋은 봄풀을 뜯겼다. 보아하니 데리고 나온 소는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다. 그래도 농부는 소를 다그치지 않는다. 그의 말인즉슨 올해 처음으로 하는 일이니, 처음부터 너무 닦달하면 끝까지 닦달하게 된다는 거였다. 소를 모는 그의 등뒤로 소량포구의 물빛이 푸르기만 하다.


소량마을의 착한 농부 김일동 씨가 첫 밭갈이를 나왔다.

 

소량 대량을 지나 상주 해수욕장을 에도는 19번 국도는 그 끝자락을 미조항에 두고 있다. 미조항은 남해에서 멸치잡이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항구를 벗어난 바닷가에는 바지락 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갈이 섞인 갯벌을 갈고리로 한번 뒤집을 때마다 여남은 개의 바지락이 올라온다. 봄볕 속의 노동.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흰 등대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갈매기들. 미조에서 길은 다시 3번 해안도로로 이어지는데, 흔히 남해에서는 이 도로를 물미도로라 부른다. 물건리와 미조를 잇는 도로의 뜻과 함께 아름다운 드라이브길로 통하는 곳이다. 물건리에는 방조어부림이 있다. 방조어부림이란 태풍이나 해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불러들인다는 뜻을 지녔다. 일종의 방풍림인 셈인데, 그 길이가 무려 1.5킬로미터, 수천 그루의 나무가 해안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다.


미조항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풍경(위). 고기를 불러들이고 태풍을 막아준다는 물건리 방조어부림(아래).

 

남해의 해안도로는 물건리를 지나 창선교에 이르러 끝이 난다. 창선교 아래는 물살이 센 지족해협인데, 이 곳에는 원시적인 어업 형태인 ‘죽방렴’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죽방렴이란 말 그대로 대나무그물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쥘부채를 편 모양처럼 생겼다. 그 부채꼴 모양이 끝나는 꼭지 부분이 불통(원통형 대나무 통발)이고, 부채살을 펼친 부분이 고기를 유인하는 삼각살(참나무 말목을 연이어 세워놓았다)이다. 불통의 문짝은 썰물 때 저절로 열렸다가 밀물 때 저절로 닫힌다. 이는 썰물 때 불통 안으로 들어온 물고기가 밀물 때 저절로 갇힌다는 얘기다. 어부는 재수없이 불통에 갇힌 녀석들만 잡는다.

 

나는 고기는 두고, 드는 고기만 잡는 친환경 대그물, 죽방렴.

 

이 죽방렴으로는 주로 멸치를 잡는데,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비늘이 고스란히 붙어 있고, 맛도 더해 그물로 잡은 멸치보다 값을 훨씬 더 쳐준다. 죽방렴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친환경적인 고기잡이다. 드는 고기만 잡고, 나는 고기는 그대로 둔다. 밑바닥부터 싹쓸이로 건져올리는 어망과는 그 근본이 다르다. 어느덧 남해의 봄을 만끽하며 달려온 하루가 저물어 지족해협 너머로는 붉고 노란 노을이 걸쳐 있고, 죽방렴을 거느린 바다는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황금빛 물살을 가르며 작고 낡은 거룻배 한척이 느릿느릿 죽방렴으로 노를 저어 가고 있다. 

 

<여행정보>

남해에 가려면 구례와 하동을 지나 19번 국도를 따라 남해까지 가거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삼천포로 빠져나와 3번 국도를 타고 삼천포대교를 건너 창선교로 건너가도 된다.  남해 해안도로는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타고 가다 고현면 쪽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1024번 해안도로와 만날 수 있고, 삼천포대교를 타고 오면 창선도를 지나는 3번 국도를 따라 창선교를 건너면 된다. 잘곳은 다랑논마을인 가천마을과 홍현리, 죽방렴마을인 지족, 상주 해수욕장 인근에 많다. 문의: 남해군청 055-864-2131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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