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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30 당신이 꿈꾸는 궁극의 접대냥 46

당신이 꿈꾸는 궁극의 접대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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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꿈꾸는 궁극의 접대냥

 

봉달이를 처음 만난 건 지난 11월 말이었다.
녀석은 개울가에 버려진 음식쓰레기를 뒤지는 중이었고,
쉰밥이며 총각무, 썩은 호박 등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뒤늦게 녀석은 다리 위에서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흘끔
위를 올려다보았다.
전혀 놀라는 기색도 없이 녀석은 한참이나 나와 눈빛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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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을에 나타나면 어디서든 달려오는 봉달이. 개울 건너에 있다가도 징검다리를 건너 눈밭을 가로질러 녀석은 신나게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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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내게는 비상용으로 싣고 다니는 사료가 남아 있었고,
그것을 바닥에 부어주자 녀석은 거의 걸신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을까.
며칠 후 개울가에서 녀석을 다시 만났을 때,
녀석은 곧바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저기요, 잠깐만요...우리 얘기 좀 해요...!”
그건 마치 ‘도를 아십니까’ 고양이와도 같았다.
사람이라면 뿌리쳤겠지만, 고양이의 호객행위는 별로 나쁠 게 없어서
흔쾌히 나는 길거리 한가운데서 녀석과 대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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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꿈꾸는 궁극의 접대냥, 궁극의 무릎냥이라 할만한 봉달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안긴다.

그런데 이 녀석 얘기 좀 하자더니 다짜고짜 내 무릎 위로 올라오는 거였다.
“아니 그냥 얘기만 하면 안될까?”
아랑곳없이 녀석은 무릎 위로 올라와 내 손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봉달이와의 부적절한 관계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알고보니 이 녀석 타고난 '작업냥'이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처음 보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놀다가란다.
심지어 택배 아저씨 배달가는데도 ‘배달은 무슨, 좀 놀다 가지’ 하고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기 일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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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지날 때면 이 녀석 가랑이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하며 성가시게 한다. 가끔은 신발에 주저앉아 못가게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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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고양이 집사들이 꿈꾸는 바로 그 접대냥(사람만 보면 착착 안기고 살갑게 구는 고양이)인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만난 접대냥 중에서는 단연 최고,
궁극의 접대냥이라 불러도 좋았다.
한번도 고양이를 안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녀석을 적극 추천한다.
만나는 즉시 당신 품에 안길 것이다.
내가 이 얘기를 했더니 아내가 ‘그런 고양이가 어딨어’ 그러는 거였다.
해서 나는 어느 날 아내를 봉달이에게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봉달이는 아내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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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저 좀 봐주세요! 으냐앙, 저 좀 봐 달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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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나와 봉달이가 개울가에서 놀고 있는데,
할머니 한분이 다리를 건너 경로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봉달이 녀석, 곧바로 다리 위로 뛰어올라가더니
“할머니 어디 가세요?” 그러는 거다.
할머니에게 나는 "혹시 이 고양이 주인이세요?" 하고 물었다.
"아니, 그냥 들고양이여, 들고양이!" 그런다.
녀석은 나에게도 그랬듯 할머니 가랑이 사이를 요리조리 파고들며 아는 척을 했다.
할머니가 먼산을 보자 거기 말고 자기를 봐달라며 앙냥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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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 좀 보게... 뭔 고양이가 저런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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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또다른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그러자 이 녀석 또 다리 위에서 발라당과 뒤집기를 하며
‘예쁜 척’을 한다.
“이래도 안 볼 거야?” 하면서.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고양이를 가리키며 박장대소를 한다.
“이 녀석 들고양이라면서요?”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다른 소리를 했다.
“아니여, 마당에서 키우는 고양이여.”
어느 말이 맞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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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얘기만 하지 말고 저를 보라니깐요... 이래도 안볼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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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나는 이 녀석의 정체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몇몇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녀석은 마당고양이 출신이 분명하긴 했다.
그러나 지금은 녀석을 거의 돌보지 않아서 들고양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랬다.
처음에 사람 손에 길러지긴 했으나,
이제는 스스로 먹이활동과 잠자리를 해결해야 하는 길고양이나 마찬가지 신세가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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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먹고 살기 힘들다...뭔 접대가 이리 많은지... 날씨는 또 왜 이케 춥지? 으덜덜...!"

그런데 이름이 왜 봉달이냐고?
이 녀석 내가 동네에 나타나기만 하면 50미터가 넘는 논배미를 헤매다가도
순식간에 달려와 내 앞을 가로막곤 하는 것이었다.
고양이 단거리 경주라도 있으면 출전시켜도 좋을 그런 고양이다.
웬지 녀석의 첫인상도 봉달이 이봉주를 닮았다.
그래서 봉달이다.
게다가 녀석은 희봉이(전에 살던 동네의 연기파 고양이)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연기력’도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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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말 봉달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녀석은 개울가 쓰레기더미에서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개울가에서 내가 저 냇물을 건너뛰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녀석은 어떻게 알고 그렇게 행동하곤 했다.
심지어 녀석은 나를 위해 여러 번 개울을 점프하기도 했다.
이른바 ‘고양이 공중부양’, 이건 나중에 따로 소개할 날이 있을 것이다.
고양이가 시킨다고 시키는대로 할 리가 만무하지만,
이 녀석은 곧잘 그렇게 하곤 했다.
요즘 들어 내가 부쩍 봉달이 얘기를 자주 하자 아내는
“축사냥이들도 한방에 훅 가는 거 아냐?” 하면서 한바탕 웃는다.
어쨌든 이 녀석을 만난 뒤로 웃는 날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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