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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쇠똥구리 만나러 간다: 장흥 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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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쇠똥구리마을: 추억의 쇠똥구리를 만날 수 있는 곳



운주리 뒷산 목장지대에서 만난 왕쇠똥구리. 왕쇠똥구리가 쇠똥 경단을 굴려가고 있다.

 

길은 누렇게 익은 벼들이 넘실거리는 논배미 사이를 구불구불 흘러간다. 가을 남도 들판의 운치가 가득한 장흥군 용산면 운주리. 마을 들머리에 들어서자 커다란 팽나무 몇 그루가 시원한 정자나무 노릇을 하며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운주리 당산나무이자 팽나무 휴게소. 당산나무 아래엔 널찍한 들마루가 놓여 있고, 마을 어르신들이 막바지 더위를 식히고 있다.


운주리 정자나무에서 바라본 들녘 풍경. 특이하게 이 곳에서는 붉은 쌀을 재배하고 있다. 논에 붉게 보이는 것이 붉은 쌀이다.


운주리는 뒤로는 산을, 앞으로는 들을 끼고 자리한 평탄하고 평범한 시골의 모습이다. 오지마을은 아니어도 국도변에서 제법 멀찍이 떨어진 외딴 마을이다. 병풍처럼 뒤로 펄쳐진 산자락엔 목장이 들어서 있고, 마을의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운치를 더한다. 무엇보다도 이 곳은 쇠똥구리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쇠똥구리 마을로 불린다. 과거에는 어느 마을이나 쇠똥구리가 있었지만, 요즘엔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볼 수 없는 게 쇠똥구리다.


 

운주리 마을의 정자나무 그늘.


운주리에서 최근 쇠똥구리가 발견된 것은 지난 2004년 4월. 목장 인근의 초원지대에서 50여 마리의 애기뿔쇠똥구리가 발견되면서 운주리는 쇠똥구리마을로 거듭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왕쇠똥구리도 운주리에서 새롭게 발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쇠똥구리가 집단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운주리의 환경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자연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생태체험마을인 운주리 마을 공터에는 커다란 쇠똥구리 모형을 매단 전동차도 체험객을 위해 마련해두고 있다.


마을 인근에서 쇠똥구리가 발견되면서 운주리는 최근 마을의 이장인 고환석 씨를 중심으로 생태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애기뿔쇠똥구리의 대부분은 사료를 먹이지 않은 목장 주변에서 발견됩니다. 밀기울이나 사료를 먹인 쇠똥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풀이나 약초를 먹고 자란 소의 똥을 쇠똥구리들도 더 좋아한다는 것이죠. 우리 마을에서는 쇠똥구리를 통해 현대인의 잃어버린 정서와 고향의 추억을 되찾아주고 싶습니다.” 쇠똥구리에 푹 빠진 이장님의 말씀이다. 아마도 최근 몇 십 년 동안 우리나라 전역에서 쇠똥구리가 사라진 데에는 토양오염과 함께 먹이로 삼는 소똥에도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왕쇠똥구리가 쇠똥 경단을 굴려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운주리 마을 이장과 환경모임 '야사모'의 이영동 씨.


쇠똥구리는 보통 30~40센티미터쯤 굴을 파고 들어가 쇠똥 경단을 묻고, 먹이용이나 산란용으로 쓴다. 애기뿔쇠똥구리의 경우 쇠똥 경단의 크기는 500원짜리 동전만하고, 왕쇠똥구리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커서 거의 탁구공만하다. 내가 관찰해본 결과 왕쇠똥구리가 경단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쇠똥구리는 말랑말랑한 소똥을 만나면 경단을 만들 부위를 찾아 입과 머리, 발을 이용해 동그란 모양의 경단을 만들며 파들어간다. 쇠똥구리가 경단을 떼어낸 부분은 마치 동그란 아이스크림 스푼으로 떠낸 것처럼 소똥에 매끄럽고 움푹한 구덩이가 생겨난다. 이렇게 떼어낸 경단은 뒷발로 밀어 굴리면서 옮긴다. 그러다 부드러운 흙이 보이면 녀석은 둥그렇게 땅굴을 파 내려가 경단을 묻는다.


운주리 마을 앞 개울에서 흔히 만나는 가재(위). 운주리에서 쇠똥구리와 함께 만날 수 있는 장수풍뎅이(아래).


쇠똥구리에게는 소똥 경단이 먹이도 되고, 알을 낳는 둥지도 된다. 사실 운주리 인근 목장 근처의 땅은 대부분 사질토 흙이 아니어서 쇠똥구리가 서식하기에는 매우 척박한 조건이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최대한 부드러운 땅을 찾아 굴을 파고 경단을 묻고, 산란을 하고 지금까지 운주리 인근을 서식처로 삼고 있다. 쇠똥구리는 소똥구리, 말똥구리, 쇠똥벌레라고도 하며, 몸 빛깔이 검고, 길이는 약 2센티미터 남짓 정도, 머리에는 넓적한 머리방패를 달고 있다.


운주리에서 해창 저수지 가는 길에 바라본 가을 들녘.


딱지에 뒤덮인 날개가 있어 쇠똥구리는 날 수도 있으며, 여름에 활동이 활발하며 겨울에는 잠을 잔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60여 종이 넘는 쇠똥구리가 있었다고도 하는데, 최근에는 토양오염(농약과 비료의 과다 사용, 지나친 배합사료 사용과 항생제 사용, 개발로 인한 서식처 파괴 등) 등으로 18~19종만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운주리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인 왕쇠똥구리도 개체수가 얼마 되지 않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운명에 처해 있다.

 

운주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해창저수지는 최근 가시연이 대량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국내 최대 가시연 군락지로 인정받았다.


쇠똥구리는 잘 알려진 자연의 청소부이다. 쇠똥구리는 소똥을 분해하고 땅속에 저장함으로써 미생물의 번식을 돕고 땅을 기름지게 한다. 운주리 이장인 고환석 씨는 이러한 환경정화 곤충으로서의 쇠똥구리를 널리 알리고,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운주리를 생태체험마을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는 쇠똥구리 전시실을 마련해놓고 있으며, 다양한 농촌체험과 더불어 개울에서 가재잡기, 야생화 및 생약초 관찰, 야생화 화분 만들기 등의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마을회관 주변은 온통 꽃밭이어서 계절별로 다양한 야생화를 만날 수가 있다.

 

해창 저수지에서 만난 가시연꽃.


사실 운주리 일대는 전체가 생태체험 코스나 다름없다. 개울에는 다슬기와 가재를 만날 수 있고, 마을 뒷산인 부용산(약다산)에서는 온갖 자생 약초를 만날 수 있으며, 부용산 계곡에서는 끈끈이주걱이 서식하는 습지대도 만날 수 있다. 운주리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안양면 해창 저수지(약 3만여 평)는 최근 엄청난 가시연 군락이 발견되어 국내 최대 가시연 군락지로 인정받았다. 또한 운주리 주변에는 장수풍뎅이마을과 해당화마을, 돌꽃마을과 개매기 체험마을도 자리해 있어 다양한 시골 체험을 할 수가 있다. 얼마 전에 상영한 영화 <천년학> 세트장도 장흥에서 만날 수 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 현재 왕쇠똥구리는 개체수가 얼마 되지 않아 운주리에서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운명에 처해 있다. 이에 장흥 지역의 환경모임 ‘야사모’와 운주리 이장의 의견은 그냥 방치하는 것보다는 운주리를 ‘애기뿔쇠똥구리와 왕쇠똥구리 서식지’로 알려 운주리 목장지대 인근을 ‘보호구역’으로 지정받는 것만이 지금의 ‘쇠똥구리’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어떤 환경단체에서도, 어떤 기관과 곤충 전문가도 발 벗고 나서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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