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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 연어의 목숨을 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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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 연어의 목숨을 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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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는 물길을 따라 캄차카 인근 바다와 베링해까지 갔다가 3~4년 후 모천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는 이제 장엄하고 숭고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다.


남대천은 연어의 모천이다. 남대천은 현북면 법수치에서 시작되는 법수천과 윗면옥치에서 내려오는 면옥치천이 만나는 어성전천, 서면 갈천리에서 흘러온 후천, 남설악에서 내려온 오색천이 합쳐진 하천이다. 도처에서 흘러온 물줄기는 양양 읍내에 이르면 제법 폭넓은 강폭을 이루어 바다로 빠져든다. 가을이면 이 남대천에는 수천리 바닷길을 헤치며 필생의 여정을 거쳐 모천에 도착한 연어떼의 행렬이 이어지곤 한다. 나는 녀석들의 목숨을 건 여정을 만나기 위해 두 번이나 남대천을 찾았다. 두 번 다 11월이었고, 두 번 다 나는 연어의 숭고한 최후를 목격하였다.

연어의 회귀가 시작되면 바빠지는 건 양양 내수면연구소다. 남대천 하류에 자리한 내수면연구소는 연어연구소나 다름없는데, 연어를 잡아 채란과 수정을 하는 작업도 이 곳에서 맡아 한다. 연어의 생존율과 회귀율을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수정과 부화, 치어 방류를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자연계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모천을 찾아온 연어에게는 자신이 태어난 장소에 알을 낳고 수정시키고 숨을 거두는 일이 마지막 임무인 셈인데, 사람이 그들의 마지막 임무마저 앗아가 버리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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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 하류 연어가 올라오는 길목에서 회귀하는 연어를 그물로 포획하고 있다.


사실상 남대천은 이제 연어가 상류까지 거슬러오르기에는 너무나 힘든 하천이 되고 말았다. 곳곳에 수중보가 설치되어 있고, 댐과 발전소가 최상류에 건설되고 있으며, 하천 가까운 마을에서 흘려보내는 생활 하수의 양도 크게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하천의 수량도 줄어들었고, 무분별한 골재 채취로 강바닥의 환경 자체가 바뀌어가고 있다. 이래저래 연어가 살기에는 점점 더 열악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남대천 하류에서 포획될 운명에도 불구하고, 모천을 찾은 연어들은 온갖 위험과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눈물겨운 생존자들이다. 남대천에 도달하기까지 녀석들은 실로 목숨을 건 여정을 거듭해 왔다. 사람이 던져놓은 그물과 폭풍우와 천적의 습격까지 무사히 헤쳐나온 연어만이 모천의 품에 안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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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채란해 둔 암컷 연어 알 위에 수컷 연어의 정액을 뿌려 수정을 시키고 있다.


본래 자연계의 섭리란 가혹한 것이어서 모든 연어들에게 공평하게 번식의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100마리의 치어 가운데 겨우 한두 마리만이 살아남아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회귀율로 따지면 1.5퍼센트 정도. 해마다 남대천에서 방류하는 치어를 1천만 마리 안팎으로 볼 때, 10만여 마리만이 모천인 남대천으로 되돌아온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회귀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연어의 회귀가 절정에 달하는 11월이면 양양에서는 어김없이 연어축제를 열지만, 이는 연어를 제물로 삼은 인간의 축제일 뿐, 연어에게는 이 때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절박한 임무를 완성해야 하는 최후의 순간이다.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연어는 인간에게 사로잡혀 강제로 채란과 수정을 당하고 만다. 그것도 모르고 연어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미강으로 되돌아온다.

연어의 정확한 회귀본능에 대한 유력한 두 가지 학설은 이렇다. 연어가 태어날 때 선천적으로 자신이 태어난 하천을 감지할 수 있는 유전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과 후천적으로 모천을 찾아올 수 있는 후각이 발달하여 방류 뒤 30~50일 동안 하천에 머물면서 모천의 냄새를 익혔다가 성어가 된 뒤에도 후각으로 익힌 모천의 냄새를 기억하여 회귀한다는 설이 그것이다. 그 밖에 태양의 위치나 밝기로 방위를 인식한다는 설과 염분 농도의 차이를 인지해 찾아온다는 설, 지구의 자기장을 인식해 방위를 찾는다는 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연어가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후각과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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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빛 앵두알처럼 생긴 연어알. 연어 암컷은 산란시 약 3000여 개의 알을 낳는다.


본래 연어 암컷은 인간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모천 상류에 이르러 온몸으로 산란 구덩이를 파고 약 3000여 개의 앵두빛 알을 낳는다. 그 위에 수컷이 정액을 뿌려 수정을 시키면 암컷은 곧바로 산란처를 자갈과 모래로 덮어 은닉시킨다. 이 때부터 수컷의 임무는 산란처 주위를 돌며 다른 고기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근무를 서는 일이다. 산란기에 수컷의 주둥이가 뾰죽하게 구부러져 공격형으로 변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산란의 임무를 무사히 끝낸 암수는 3일 안에 기진맥진하여 상처투성이가 된 채 숭고하고 장엄한 최후를 맞이한다. 순전히 알을 낳고 방정하기 위해 그들은 18,000~20,000킬로미터를 헤엄쳐오는 것이다.

구덩이에 묻힌 연어알은 약 두달 뒤 부화하며, 깨어난 새끼연어는 한달 이상 강에서 지내다가 흐르는 물결을 따라 바다로 내려간다. 남대천을 떠난 연어가 주로 서식하는 곳은 캄차카 반도와 북미 대륙 사이의 북태평양 베링해 지역이다. 이 녀석들이 다시 모천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3~4년의 시간이 필요하며, 50센티미터 이상 몸집을 불려야 한다. 다 큰 녀석이 헤엄치는 속도는 평균 시속 45킬로미터 정도. 4단 기어를 놓은 자동차 속도로 녀석들은 베링해에서 남대천까지 휴게소 한번 안 들리고 고행의 여정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능이든 운명이든, 숭고하고 장엄한 여정임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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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 하천변 철망에 연어를 말리고 있다.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연어로는 첨연어(Chum salmon, 그냥 연어라고 불린다)가 대부분이고, 드물게 송어(Cherry salmon)와 곱사연어도 섞여 있다. 사실 인공수정을 통한 치어 방류는 미국이나 캐나다, 일본과 러시아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해오고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연어의 채포와 인공수정 과정은 솔직히 말해 끔찍하기 짝이 없다. 먼저 남대천 하류에 이중 그물로 포획망을 설치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포획한다. 이렇게 그물에 갇힌 연어는 채포장으로 몰아 암수를 구별하고 막대기로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킨 뒤, 크레인을 통해 인공수정실로 옮겨진다. 보통 암수 구분은 가슴과 배의 감촉으로 알 수 있는데, 배가 부드럽고 가슴 지느러미 윗부분이 부풀어오른 것이 암놈이다. 또한 암컷은 주둥이가 밋밋한데 비해, 수컷은 갈고리처럼 구부러져 있다. 암컷은 30분 이내에 채란용 칼로 단번에 절개하여 직사광선을 피해 채란한다. 이렇게 얻어낸 연어알은 수컷의 배를 눌러 정액을 알 위로 짜내 수정시킨다.

수정된 연어알은 부화기로 옮겨져 50일 뒤면 부화하고, 실내 양어지에서 한달 정도 자란 다음 야외 양어장으로 옮겨진다. 이 녀석들은 2월 말~3월 중순이 되면 하천에 방류하는데, 치어들은 약 한달 정도 하류에 머물다 바다로 나아간다. 누가 가르친 적도 없는데, 녀석들은 어미 연어가 그랬듯 베링해까지 헤엄쳐 갔다가 남대천으로 되돌아오는 일을 숙명처럼 치러낸다. 사실 내가 처음 연어를 만나러 이 곳에 온 것은 8년 전이다. 책상에 앉아 연어에 대한 시를 쓰다가 본 적도 없는 것을 끄적거리고 있는 내가 한심해 곧장 7번 국도를 거슬러 남대천으로 향했던 것이다. 가방에는 옷가지도 없이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쓴 <미국의 송어낚시>가 달랑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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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모천인 남대천의 겨울 풍경.


이 포스트모던한 소설이 국내에 처음 출판될 때 꽤 많은 서점들이 이 책을 낚시 코너에 꽂아버렸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브라우티건이 정말로 원하던 가장 포스트모던한 판매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브라우티건은 말한다. “지난 17년 동안 많은 강들이 흘렀고, 수만 마리의 송어들이 지나갔다”고. 이 문장을 읽고 난 뒤부터 내 머릿속에선 수만 마리의 연어떼가 들끓었다. 하지만 나는 남대천에 이르러 30년 넘게 흘러간 강물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남대천 하류에서 법수천 상류까지 몇 번을 오르내렸고, 겨우 강바닥에 드러누운 연어의 주검같은 시 한편을 건졌다.


                             누구나 때로는 원치 않았던 삶을 거슬러 오른다

                             원치 않았던 눈물과 풍랑과 길떠남과

                             거듭 미안했어요, 라는 후회

                             이제 나는 그것을 납득하고자 고개를 끄덕인다

                             본래 풍경과 세월은 한 몸이며, 추억과 근심도 한 뿌리다

                             떠남과 돌아옴의 윤회 속을 떠도는 일도

                             필경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몸바꿈에 다름아닐 터

                             오늘 밤 나를 따라온 미련들은

                             안개 속에 내내 휘청거리다 이제서야 잠이 든다

                             모천의 강바닥에 지친 지느러미를 내리고,

                             문득 나도 전생처럼 푸른 잠결 속을 가만 뒤척여본다.


                              -- 이용한, <연어, 7번 국도> 중에서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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