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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1 센티멘털 가을 고양이 33

센티멘털 가을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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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털 가을 고양이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을 보면
기어이 천고묘비의 계절, 가을이 오고 만 게다.
새털처럼, 추억처럼, 고양이처럼 하늘에는 구름이 떠간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벼 익는 소리, 봉숭아 씨 터지는 소리.
귓가에는 온갖 가을 소리로 쟁쟁하다.

고양이에게도 봄은 로맨틱하고 가을은 센티멘털한 것인가.
요즘 부쩍 우리집을 찾는 길고양이 바람이의 기분이 왠지 센티해 보인다.
저도 수컷이라고 가을을 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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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살찐다는 천고묘비의 계절, 가을, 이런 날은 여자친묘랑 고궁이라도 거닐면서 버터오징어라도 씹어야 하는 건데...

가을 찬바람이 수염을 스치고 갑니다.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누군가에겐 휴식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겐 위로가 필요한 때입니다.
날씨도 맑고, 하늘도 푸른데,
어쩐지 내 마음은 싱숭생숭합니다.
그동안의 신산고초와 우여곡절이 저 구름처럼 흘러갑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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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대문집 흰냥이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눈군!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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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내 영역인 이곳에 수염 나고 머리도 긴 지저분한 사람이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날마다 마당에다 사료 한 그릇을 내어놓는 거예요.
뭐 어차피 여긴 내 영역이니까.
감사히 먹어주었지요.
처음엔 한두번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아직까지는 매일 사료 한그릇 내놓기가 계속되고 있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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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생무상, 세월은 흘러가고, 주름살은 늘어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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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저는 그 사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먹이를 내놓는다고 다 친구가 될순 없죠.
그건 값싼 동정심일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하얀집’이라고 부르는 그 집엔 고양이도 두 마리나 있습니다.
녀석들은 내가 테라스에 올라오는 걸 무척 못마땅해하는 눈치예요.
거기가 자기네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 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창가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는 녀석들에게
하악거리며 펄쩍 뛰어올라 위협을 가했죠.
녀석들,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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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또 하루가 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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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수염 난 아저씨가 밖으로 나오더니 나를 쫓아내는 거예요.
이유를 알 수 없었죠.
억울했습니다.
그동안 먹을 것도 주고, 나한테 친한 척 할땐 언제고
내가 집냥이 좀 위협했기로서니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겁니까.
그래도 혹시 그것 때문에 사료를 내놓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돼서 나는 오랜만에 산에 올라가 박새를 잡아왔습니다.
박새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한참이나 수풀 속에 숨었다 겨우 박새 한 마리를 잡아다가
그 하얀집 테라스 출입문 앞에 갖다 놓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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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사료가 아니라 위로라고,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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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체면에 뇌물까지 갖다 바쳐야 하다니,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거기서 먹을 게 나오니까
꾹 눌러 참는 거죠 뭐.
그래도 뇌물이 통했는지, 사료는 꼬박꼬박 나오더라구요.
그러고보면 참 인간은 뇌물에 약한 동물인 게 틀림없어요.
어쨌든 뇌물까지 주었으니 내가 테라스에 올라온다고 또 쫓아내지는 않겠지요?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아무래도 볕 좋은 테라스를 찾게 되는군요.
이제 곧 뒷산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겠지요?
그리고 다시 낙엽이 지고 혹독한 겨울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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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새털구름은 흐르고, 잠자리는 날고, 날은 어두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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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부니까 옆구리가 시리고,
갑자기 쓸쓸해지는군요.
이런 날에는 여자친묘랑 고궁이라도 거닐면서 버터오징어라도 씹어야 하는데...
콩밭 너머 파란대문집 흰냥이에게 수작이라도 걸어볼까요.
그렇잖아도 엊그제 밤에 파란대문집 담장에 올라 흰냥이에게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는데,
하필이면 이 하얀집 수염 아저씨가 플래시를 들고 나타나 방해를 하더군요.
뭐 딴에는 월야산책을 다녀온대나 어쨌대나.
하여간 요즘 부쩍 이 아저씨 맘에 안들어요.
사료의 양도 조금 줄어든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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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나 불러볼까. "바아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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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냥이들도 새침한 것 같고...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가을볕에 졸음은 쏟아지고...
잠자리는 날고...
새털구름은 흐르고...
파란대문집 흰냥이 얼굴은 아른거리고...
얼굴 주름은 늘어가고...
묘생무상, 일묘도원이라 했나요.
묘생묘사는 새옹지묘니 암중묘색하여 환골탈묘해야 하는 걸까요?
"바아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이렇게 오늘도 또 하루가 갑니다.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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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고양이 때문에 지어낸 이야기&#39; 등의 주제 아래 고양이와의 애증어린 생활을 유쾌한 어조로 묘사하여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감을 나누고 있다. ☞ 이 책은 2002년에 나온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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