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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 외딴 섬 추천 5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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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 외딴 섬 추천 5곳



3년 10개월 동안 섬을 떠돌았다.
그렇게 만난 섬들이 모두 50여 개.
그 중 망망대해 절해고도의 외딴 섬 5곳을 소개한다.
모두 쉽게 가기 어려운 섬들이지만,
결코 가서 후회하지 않을 섬들이다.


1. 중국의 닭울음소리 들리는 우리나라 최서남단 섬, 가거도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45킬로미터. 목포에서 배를 타면 4시간이 넘게 걸리고, 그것도 이틀에 한번씩 짝수날만 가거도를 운행한다. 가거도를 소흑산도라 부른 적도 있었지만, 이는 일제가 붙인 이름으로 잘못된 명칭이다. 본래 가거도(可居島)는 섬이 아름답고 인심이 좋아서 ‘가히 머물러 살만한 섬’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가거도행 여객선은 비금과 도초, 흑산과 홍도, 하태도를 경유해 가거도항에 닿는데, 항구 들머리에서 맨 먼저 손님맞이를 하는 것이 기암절벽으로 솟은 장군봉과 망추봉, 회룡산과 녹섬(큰녹섬, 작은녹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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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서남단 섬 가거도에서도 가장 서쪽끝에 위치한 섬등반도의 황홀한 일몰.

가거도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다. 남쪽에 대리, 서쪽에 목리, 북쪽에 대풍리. 대부분의 주민은 1구인 대리에 모여 산다. 대리에는 학교와 우체국 등 관공서와 여관, 식당이 몰려 있으며, 낚시꾼이나 관광객들이 대부분 묵어가는 곳이다. 대리 동쪽 산기슭에는 멍씨할멈 당집이 있어 산신과 용신을 비롯해 지상을 떠도는 130여 위의 무주고혼을 모셔놓았다. 또한 이 마을에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된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가 여전히 불리워지고 있다. 1988년 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노래의 기능보유자는 김명후 노인이고, 김창대, 고흥석, 채호길 씨 등이 전수자로 있다.

가거도는 전체가 후박나무 섬이다. 우리나라 후박피 생산량의 70퍼센트를 가거도에서 공급할 정도이다. 해서 요즘 가거도는 후박나무 껍질을 벗기고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가거도는 다른 섬에 비해 어업이 성하지 않은 대신 후박피 생산이 거의 절대적인 돈벌이다. “앞에가 논이 있소. 뒤에가 밭이 있소. 우리가 이 바다 끝에서 우리나라 섬 지킴시롱 살고 있어도 후박피 안 하면 못 먹고 사요. 근디 중국의 닭울음 소리가 들린다꼬 하는 여기가 이제는 중국산 후박피 땜시 못살 판이요.” 대리에서 만난 박성금 할머니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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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의 최서남단 마을, 중국에서 가장 가까워 중국의 닭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마을 목리 풍경.

가거도 비경의 절정은 목리에 있는 섬등반도다. 목리는 우리나라 최서남단 섬 가거도에서도 최서남단에 위치한 마을이다. 현재 이 곳에는 열다섯 가구가 살고 있다. 사람 사는 집보다는 사람 살지 않는 빈집이 더 많고, 오래 전에 폐교된 학교가 섬등반도 들머리에 쓸쓸한 뼈대를 내보이고 있다. 섬등반도의 모양은 마치 거북이가 길게 목을 뺀 형국으로 언덕 전체가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지대다. 이 곳의 일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은 일몰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일몰이라 할만하다.

2. 배 타고 5시간, 가다가 지치는 만재도

목포에서 105킬로미터 떨어진 절해고도의 섬, 만재도(晩才島). 배를 타면 4시간 40분. 뱃시간으로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루하게 배를 타야 닿을 수 있는 섬이다. ‘만재도’는 재물을 가득 실은 섬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예부터 뭍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여 ‘먼데섬’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현재 만재도에는 4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 어부 아니면 해녀로 생업을 잇고 있다. 만재도 해녀는 20명 정도.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이 곳의 해녀들도 돌미역과 해삼, 전복, 우뭇가사리 등을 주로 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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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재도 꼭대기집의 등잔 너머로 보이는 섬 풍경.

사실 만재도 선창은 몸집이 큰 여객선을 수용할 수 없어 여객선이 도착하면 선창에서 종선이 나와 손님을 실어나른다. 섬에 하나뿐인 마을에 들어서면 섬 특유의 돌담이 구불구불 산비탈을 따라 계단처럼 이어져 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김화예 할머니 댁은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집이다. 내가 찾아가자 할머니는 부엌에 웃달린 옹색한 다락방에서 내려왔다. 마루에는 발짱(김발), 딱가리(생선 말리는 채반), 바구리(해산물 바구니), 옹딩이(작은 바구니)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할머니는 조도면 옥도가 고향이란다. “여서는 땅이서 해묵고 살게 없어라. 여 시집온께 여 아들은 일궈여덟만 디두 바다에 나가 물에 폭 들어갔다 쏙 나오고 그라드라고. 넘들은 바다에 까꿀루 들어갔다 올케 나왔다 허민서 미역을 비서 해먹구 사는디, 내야 갱변을 가드라도 히엄바를 못칭께루 발등에 물만 쟁기면 죽지라.” 할머니는 손님 대접을 한다며 바구니에서 말린 ‘전대미’(전갱이)를 한 두름 꺼내 내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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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재도 마구산을 넘어가 만난 아름다운 오동여 풍경.

만재도 마을 앞은 몽돌밭이다. 파도가 쓸려갈 때마다 차르르, 차르르 몽돌 구르는 소리가 마을까지 들린다. 몽돌 해변을 끼고 왼편에는 선창이 있고, 오른편에는 반도처럼 나앉은 해벽 봉우리가 길게 펼쳐져 있다. 선창에서 왼쪽으로 돌아 큰산밑에 이르면 누군가 조각해놓은 듯한 수직으로 솟은 주상절리 해벽이 펼쳐진다. 또한 마을에서 마구산 자락을 넘어가 만나는 외마도와 내마도가 솟구친 움퉁개와 오동여 풍경도 비경이다.

3. 여자가 ‘애 배서 나온다’는 섬, 여서도

청산여수(靑山麗水). 산과 물이 푸르고 아름답다는 이 말은 청산도와 여서도에서 비롯한 말이다. 청산도가 산과 들, 바다가 온통 푸르고 아름다운 섬이라면 여서도는 물이 좋고, 바다가 투명한 섬으로 통한다. 한마디로 청산도는 산이 좋고, 여서도는 물이 좋은 곳이다. 옛날 사람들은 여서도를 일러 “여자가 애 배서 나오는 섬”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여서도가 지금처럼 매일 배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친 바다 날씨에 따라 오랜 동안 섬에서 발이 묶일 때가 많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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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외딴 섬이여서 과거에 여서도는 '여자가 애 배서 나오는 섬'이라고 했다.

또한 과거에는 제주도의 잠녀들이 여서도로 원정 물질을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 섬에 오면 잠녀들은 상당기간을 머물러야 했으니, 제주도 처녀 잠녀와 여서도 총각 어부가 눈이 맞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실제로 여서도에는 제주도에서 시집왔다는 할머니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여서도에 물질 왔다가 아예 여서도 사람으로 눌러앉은 셈이다. 이래저래 여서도는 오래 전부터 오가기가 쉽지 않은 낙도였고, 지금도 하루에 한번 배가 다니기는 하지만, 한번 가려면 3시간여의 뱃시간이 걸리는 뭍에서 꽤나 멀고, 불편한 섬에 속한다.

“여서도는 마지막 남은 청정지역이에요. 요즘엔 낚시꾼들이 더러 와서 물을 흐려놓고 있지만서두....” 배에서 만난 외항선원 출신의 말이다. 그는 오랜 동안 외항선을 타고 전세계를 떠돌다 5년 전 우연히 여서도에 왔다가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물이 좋아 여서도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바닷물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과 계곡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오히려 바닷물보다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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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도는 돌담이 아름다워 최근에는 이곳을 한국의 마추픽추라고도 부른다.

2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여서도 뱃길은 짙은 해무로 인해 여서도 선착장에 다 와서야 여서도의 맑은 바닷속과 산자락을 따라 고성같은 돌담을 두른 마을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섬에 내리자마자 미로와도 같은 돌담길을 되는대로 올라간다. 여서도 돌담은 참 기막힐 정도로 구불구불하다. 여름철 태풍과 겨울철 삭풍이라는 자연의 재앙을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낙도의 환경이 만들어낸 생활의 예술이 바로 돌담인 것이다. 그러나 애당초 이 돌담은 미학적인 관점보다는 기능적인 생각에서 비롯한 지극히 반미학적 구조물이다. 오로지 바람으로부터 집과 식구, 살림을 보호하고자 한 지극히 인간적인 의지가 오늘날 여서도의 돌담을 미학적인 삶의 예술로 만들어낸 셈이다. 이토록 복잡하고, 이토록 원형이 제대로 남은 돌담은 내가 다녀본 섬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다.

4. 옛날 고랫배 넘쳐나던 등대섬, 어청도

군산항에서 2시간여 뱃길로 들어가는 어청도는 거문도와 더불어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가 있는 섬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내 관심은 마을 한 복판에 버려진 치동묘(淄東廟)에 있었다. 치동묘는 고대 중국 제나라에서 망명한 전횡(田橫) 장군을 모신 어청도의 당집이다. 이 곳의 풍어제인 치동묘제는 30여 년 전까지 계속되었지만 이제는 그 명맥이 끊겼다. 그 후 치동묘는 대문이 떨어져나가고, 사당에 모셔두었던 전횡 장군 초상화는 10여 년 전에 도난당하였으며, 사당에 그려진 벽화와 단청은 색이 바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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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등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로 손꼽히는 어청도 등대.

“옛날에는 여기 고랫배들도 많이 와 있었거든. 저 울산이구 장생포에서 온 고랫배들이 젤 먼저 고래를 잡으면 그걸 해부혀서 여기 신당에다 먼처 올려놓구 지사를 지냈어. 고래 많이 잡게 해 달라구. 옛날에는 고랫배 사람들이 다 여기 와서 그렇게 했어.” 3대째 치동묘를 보살폈던 사당지기의 딸이라는 이귀녀 씨의 증언이다. 고랫배가 넘쳐나던 어청도의 화려한 시절은 어쩌면 당제를 지내지 않게 되면서 끝난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화려한 시절이 끝났으므로 당제를 지내지 않게 된 것인지도. 어쨌든 치동묘에 이르러 나는 무너져내린 낙도의 전통과 관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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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도는 과거 고랫배들이 넘쳐나던 고래어항이었다. 

당집 안에는 과거 전횡 영정을 걸던 정면의 틀과 양측에 부장 영정을 걸던 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우측 구석에는 아가리가 넓은 항아리가 나무뚜껑에 덮여 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편틀과 목기 등의 제기가 그득했다. 그러나 내부 사면 벽에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예사가 아닌 벽화들로 가득했다. 특히 정면의 용 그림은 그 섬세한 붓선과 은근한 색채가 어울려 살아 꿈틀거리는 용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내고 있었다. 모란꽃으로 보이는 측면의 화초 벽화도 여백을 충분히 남겨 담백한 솜씨가 느껴졌다. 기둥과 보, 도리에 새겨놓은 단청과 구름문양, 연꽃, 인동초 그림도 화려하지 않지만 몽환적이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지만 멋스러운 옛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2시간 넘게 치동묘에 머물렀고, 2시간 넘게 마음이 아팠다.

5. 신비로 뒤덮인 안개섬, 외연도

여객선은 호도와 녹도를 차례로 거쳐 1시간 50분만에 안개 자욱한 외연도에 도착한다. 오후 5시가 다 됐음에도 선창과 섬마을은 안개에 휩싸여 사위가 온통 희부연하다. 외연도. 사실 외연도라는 섬 이름도 안개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대천을 중심으로 보자면 외연도는 가장 바깥에 자리한 섬이고, 언제나 연기가 낀 듯 안개가 자욱하여 ‘바깥에 있는 안개 자욱한 섬’이란 뜻의 외연이란 이름이 붙었다. 대천 가는 뱃길에 만날 수 있는 녹도나 호도와 섬 크기는 비슷하지만, 사람들은 외연도가 훨씬 많아서 130여 가구 정도가 이 곳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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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짙은 안개와 신비로 뒤덮인 섬, 외연도.

섬마을이야 한바퀴 둘러보는데 10여 분이면 끝날 정도로 그리 크지 않지만, 학교 뒷동산을 넘어가면 ‘작은 명금’, ‘큰 명금’이 있고,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멋진 무인도를 배경으로 펼쳐진 일몰 명소인 ‘누적금’이 나온다. 명금이란 이름은 고대 중국 제나라에서 온 전횡(田橫) 장군이 이 곳에서 싸우다 명을 다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누적금은 전횡 장군이 이 곳 바위에 낫가리를 쌓아 노적처럼 보이게 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두 곳 다 작은 몽돌밭을 끼고 있다. 또 학교 가는 길에서 왼편으로 길을 잡아 올라가면 외연도의 자랑인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36호)이 펼쳐진다. 해질 무렵도 아닌데, 오래된 숲은 저녁처럼 캄캄하다. 나무마다 휘휘 틀어올린 가지와 나뭇잎 사이로 드러난 하늘에서는 간간 신령한 기운의 빛줄기가 새어든다. 당산숲이기도 한 이 곳의 숲(약 3천 평)에는 동백나무를 비롯해 후박나무와 팽나무, 식나무, 돈나무, 붉가시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상록활엽수가 자라고 있다. 특히 ‘사랑나무’로 불리는 두 그루의 동백나무도 숲에서 만날 수 있다.

외연도에는 모두 16명의 해녀가 있다. 특이한 것은 이중의 대부분은 원정 해녀라는 점이다. 7명을 빼면 모두 제주에서 원정온 해녀다. 원주민 해녀 7명도 과거 제주에서 원정 와서 정착한 해녀가 대부분이다. 이들 해녀들은 요즘 한창 해삼과 전복을 따러 나간다. “지금은 해삼도 들어갈 철이라 많이 안나요. 전복도 별로 없고. 우리는 다 제주에서 와 물질을 해요.” 올해 처음 제주에서 원정 물질을 왔다는 해녀 부성여 씨의 말이다. 해녀들이 물질해 온 것들은 어촌계와 해녀 개인이 6:4 비율로 이문을 나눈다. 이들이 물질을 하는 장소는 본섬 주변에 있는 횡견도(빗견이, 빗갱이), 오도(먹금, 과거 오동나무가 많아서 붙인 이름), 황도(느레), 대청(멍물), 소청(청섬), 중청 등의 무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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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연도 선착장에서 만난 갈매기.

선창을 떠난 해녀배는 횡견도부터 소청까지 차례차례 해녀들을 부려놓는다. 이 곳 멍물과 청섬 주변의 바위는 가마우지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내가 해녀배를 타고 나가 가마우지떼가 머무는 바위 옆을 지나는데도 녀석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실 외연도에만 머물면 섬 주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가 없다. 외연도 주변의 무인도는 어떤 다도해 풍경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다. 혹자는 우리 땅이 좁아서 볼거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과연 우리 땅 구석구석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나보고나 하는 소리일까.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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