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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8 외딴 두메마을 초가집 한채: 양지한덤

외딴 두메마을 초가집 한채: 양지한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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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두메마을 초가집 한채: 양지한덤
 

 


중요민속자료로도 지정된 외딴 두메마을 양지한덤의 조길방 초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가지 않은 길은 늘 의문 속에 신비로 남아 있다.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와 맞닥뜨리는 일이다.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여행은 사뭇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설령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빠진다고 해도 여행은 인생처럼 치명적이지 않다. 더러 길을 잘못 들어 늦어질 수도, 돌아갈 수도, 전혀 다른 곳으로 빠질 수도 있는 게 여행이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게 여행이고, 그것 자체가 여행의 일부분이다.

 

이른 아침 이슬이 맺힌 거미줄.

 

뜻대로 되는 여행은 없다. 어차피 길이 엇갈릴 뿐이지, 운명이 엇갈리는 것은 아니므로 여행에서의 기로와 망설임을 되레 행복한 고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곳에 ‘나’는 두 번 다시 서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행은 평생처럼 순간을 사는 일이다. 짧지만 눈부신 순간을.

여행에 관한한 나는 이제껏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자 했다. 관광지보다 오지와 낙도를 떠돌았고, 명승지보다 시골길이나 산중의 외로운 풍경에 심취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했다. 10년 넘게 그렇게 떠돌았다. 남이 가지 않은 길로 다니는 것은 더 많은 물리적 시간과 정신적 소비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거기서 만난 흔치 않은 것들과 낯선 풍경을 본 것만으로 그것의 보상은 충분했다.

 

정대리 양지한덤 오르막길의 성황나무와 돌서낭당(위). 양지한덤에서 볼 수 있는 조길방 초가 전경. 해발 800미터쯤에 자리해 있다(아래).

 

당신은 여행이 호구지책이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하지만 이제껏 여행이 나를 먹여살리진 못했다. 무슨무슨 책을 내고, 짤막한 여행기사를 실어 번 돈은 고스란히 길에 뿌려졌다. 그러므로 나는 여행가일 수 없으며, 여행자일 뿐이다. 길 위에서 나는 늘 정처없었다. 우연히 들어선 길을 따라가다 낭패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무작정 들어선 길에서 뜻하지 않게 감동한 경험도 적지 않다.

 

초가집 헛간채 앞에 놓인 디딜방아는 이제 낡을대로 낡았다.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양지한덤이 그런 경우다. 대구 인근 가창댐을 따라가다 우연히 발견한 정대리 표지판을 보고 길을 접어든 것이 양지한덤까지 오르게 되었다. 정대리에서도 양지한덤까지 오르는 길은 지프차도 헐떡거리는 가파른 산길이다. 한참을 올라서면 금줄을 친 커다란 느티나무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양지한덤 서낭당이다. 성황나무가 서 있다는 것은 여기서 마을이 멀지 않다는 얘기다. 때는 가을이어서 가파른 산길에는 가랑잎이며 낙엽이 수북하다. 길가의 감나무에는 이제 막 홍시가 열어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정대리 양지한덤 조길방 초가 안채 섬돌에 놓인 흰 고무신. 

 

해발 800미터. 그야말로 양지한덤은 마을이 있을 것같지 않은 곳에 숨어 있는 마을이다. 고작해야 마을은 다섯 가구가 전부이고, 터도 그리 넓지 않은 편이지만, 마을은 더없이 평온해 보인다. 어떤 이는 양지마을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한덤마을이라고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양지한덤이라고 한다. 어떤 마을 사람에 따르면 이 곳에서는 산봉우리 사이로 해가 솟았다가 금세 쏘옥 내려가고 마는 곳이라고 해서 양지한덤이란다. 실제로 양지한덤에서는 주변의 치솟은 봉우리에 해가 가려서 볕 드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양지한덤 아래에는 해가 이마저도 들지 않아 음지한덤이라 불리는 마을도 있다. 어떤 이는 마을 뒷산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한덤’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양지한덤에서 만난 흙벽이 떨어져나간 외양간. 뚫린 흙벽 사이로 늙은 소의 실루엣이 보인다.

 

두메마을인 양지한덤에는 두메마을치고는 규모가 제법 큰 초가가 자리해 있다. 조길방 초가(중요민속자료 제200호)로 이름붙은 이 초가에는 현재 조씨의 후손인 젊은 조대희 씨가 오며가며 살고 있다. 230여 년 전 함안 조씨가 난리를 피해 이 곳으로 들어와 지은 초가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너무나 번듯하다. 집의 생김은 안채와 사랑채, 아래채, 세 채의 건물이 ㄷ자로 배치되어 있으며, 기단을 높인 안채를 중심으로 마당 좌우에 아래채와 사랑채가 마주보고 있다. 이 집은 보기 드물게 거목으로 자란 싸리나무를 잘라 집 기둥을 삼았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항간에는 싸리나무가 기둥으로 쓸 만큼 자랄 수가 없으니, 이는 그냥 전하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양지한덤 입구 오르막길에 서 있는 감나무에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안채에서 마당을 건너 아래채를 지나면 바깥에 그냥 둔 디딜방아도 볼 수 있다. 옛날부터 써오던 디딜방아이고, 아직도 멀쩡하지만 최근에 사용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초가 뒤편으로는 감나무가 주렁주렁 감을 매달고 둘러서 있다. 어떤 집에서는 요즘 보기 드문 밀타작을 하느라 좁은 마당이 밀 이삭 천지이고, 어떤 집에서는 소에게 먹일 쇠죽을 쑤느라 아궁이 연기가 뽀얗게 피어오른다.

 

요즘 정말로 보기 드물어진 우리 밀. 타작을 위해 마당에 밀이삭을 말리고 있다.

 

개 짖는 소리에 놀라 꿩은 꿩꿩거리며 날아가고, 주인을 알 수 없는 닭들은 고샅을 질러 계곡으로 총총 내려간다. 마을의 몇몇 집은 빈집으로 남아서 속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마루와 마당에 세간이 아직 널려 있어 사람 사는 집 같은 어떤 집도 막상 들여다보면 텅 비었다. 하긴 과거에는 이 마을에 10여 가구 이상이 살았다고 하니, 절반 넘게 마을을 떠난 셈이다. 요즘의 두메마을 신세가 다 이렇다.


* 글/사진: 이용한 <은밀한 여행>(랜덤하우스)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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