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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7 간지 작렬 꽃미냥, 달타냥 41

간지 작렬 꽃미냥, 달타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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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최고의 꽃미냥, 달타냥



우리 동네 최고의 꽃미냥, 파란대문집 노랑이 녀석이
대문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내다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누구시더라, 하는 표정으로.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파란대문 앞에서 나는 발을 떼지 못한다.
한참이나 나는 녀석을 쳐다보았고,
녀석 또한 오래오래 나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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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최고의 꽃미냥, 파란대문집 달타냥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녀석을 만난 건 꽤 오래 전이다.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여러 번 녀석과 마주친 적이 있다.
하지만 늘 새침한데다 주로 ‘월야의 고양이 산책’ 중에 만난 터라
제대로 앞에서 대면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얼마 전 우리집에 오는 길고양이 ‘바람이’가 세레나데를 부르곤 했다는 고양이가 바로 이 녀석이다.
그런데 오늘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이 녀석이 수컷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녀석은 꼬리 아래 ‘땅콩’을 달고 있었다.
혹시 바람이가 커밍아웃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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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눈인사를 나눈 달타냥이 한발한발 대문을 걸어나와 내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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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본 것은 영역싸움이었으리라.
이곳의 노랑이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분명하지만,
거의 온종일 마당과 길에서 생활하는 길고양이나 다름없다.
다만 녀석의 영역은 바로 이 파란대문집인 것이다.
그리고 그 파란대문집은 바람이의 영역에 속해 있다.
오래 전부터 나는 파란대문집 노랑이에 대한 궁금증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이 집냥이인지 길고양이인지도 궁금했고,
이름이 뭔지,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궁금했으며,
집주인인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강아지처럼 만날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용기를 내서 파란대문집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때마침 노랑이 녀석도 길가에 나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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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대문집 달타냥의 간지나는 자태. 이런 시골에 이런 미묘가 있었다니!

“쟤 이름이 뭐예요?”
“콩이유, 콩”
“예? 콩이라구요?”
“콩도 몰러유, 콩”
아무래도 이상해서 콩포기 아래 앉은 고양이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아니, 저 고양이 말이에요...”
“고양이가 이름이 어딨어유!”
할머니에게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일 뿐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건가요?”
“쥐 잡을라구 키우구 있쥬 뭐...”
“할머니를 잘 따르던데...”
“어릴 때부텀 키웠으니까유...”
“너무 이쁘네요, 할머니”
“고양이가 다 그렇쥬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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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콩포기 아래 앉아 있는 달타냥.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낸 것은 이 녀석이 이름도 없는 무명씨 고양이라는 것과
쥐를 잡기 위해 키우고 있다는 거였다.
이 녀석 생긴 건 꼭 손에 물 한 방울 안묻힐 것처럼 꽃미냥에다 간지나게 생겨가지고
나름 사는 건 꽤 험하게 살고 있다.
사실 아내와 나는 이 녀석을 그동안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러왔다.
처음에는 바랜 듯한 매력적인 노랑무늬에 가슴과 다리가 하얀색이어서 그냥 ‘흰냥이’라고 했다가
생긴 게 너무 예뻐서 ‘꽃미냥’이라고도 했다가
파란대문집에 산다고 ‘파랑이’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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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을 만난 건 꽤 오래 전이지만, 드디어 오늘에서야 녀석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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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즘에 우리가 이 녀석에게 붙인 이름은 ‘달타냥’이다.
달밤에 고양이 산책을 하던 중에 만난 이 녀석은
만날 때마다 담장 위에 올라가 있다가 우리를 보는 순간 담을 타넘어갔기 때문이다.
밤에 담을 넘는 이라는 뜻에서 ‘달타냥’이다.
뭐 <삼총사>의 달타냥 이미지를 떠올린 분들에겐 죄송할 따름이다.
어쨌든 할머니가 녀석을 ‘무명씨 고양이’로 확인해 주었으니
앞으로는 이 녀석을 내 맘대로 ‘달타냥’이라 부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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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타냥은 바랜 듯한 연한 살구색 털이 매력적이다. 녀석은 내 앞에서 한참을 머물다 집앞 고구마밭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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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타냥을 제대로 대면한 첫날
녀석은 한참만에 대문을 걸어나와 내 앞에 섰다.
먹을 걸 풍족하게 주면 쥐를 잡지 않을 것이니,
녀석은 늘 배가 고플 게 당연지사일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 녀석은 나의 ‘사료신공’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한 움큼도 안되는 사료를 얻어먹더니 금세 나에게 아는체를 한다.
냥냥거리며 내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기까지 한다.
이튿날 또다시 파란대문집을 찾아갔더니 이 녀석 이제 나를 알아보고
기다렸다는듯 대문 밖으로 달려나온다.
그렇게 나는 ‘달타냥’과 친구가 되었다.
과연 달타냥도 그렇게 여기는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지만...

* 고양이의 사생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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