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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07 괴롭힘 당하는 임신 고양이 35

괴롭힘 당하는 임신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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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당하는 임신 고양이


 

개울냥이네 여울이가 임신을 했다.
내 눈에는 아직 새끼고양이 같은데,
녀석도 벌써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보아온 바로는
만삭이 가까워온 임신 고양이는 길고양이 세계에서
특별대접을 받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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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여울이를 쫓아버리는 당돌이. "저리 가, 가란 말야... 여긴 내 구역이야" "저 자식이 친누나도 몰라보고... 간다 가...가면 되잖아!"

이를테면 영역이 다른 여러 고양이가 사료를 먹을 때도
임신 고양이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왕초고양이는 임신한 암컷이 만삭이 되자
자신의 둥지를 물려주기도 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생애 첫 임신을 한 여울이는 서글프고 서럽기만 하다.
주변의 어떤 고양이도 ‘임신묘’로서의 특별한 예우를 해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홀대하고 멸시하고 구박을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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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니 누나라고 임마!" "몰라, 난 그딴 거 몰라!"

그래서 요즘의 나는 만삭이 된 여울이가 가여워
녀석을 따로 챙기곤 한다.
이 녀석 배가 불러오면서 좀더 안전한 곳으로 둥지도 옮겼다.
둥지를 옮기고 나서 옛날의 개울집 급식소에도 더러 들르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요즘에는 부쩍 나에게 사료를 얻어먹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하필이면 여울이가 둥지를 옮긴 곳이
당돌이와 순둥이의 둥지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그러니까 당돌이네 사료 배달을 가면
어김없이 여울이도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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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오지도 마... 다 내꺼야" "서럽다 서러워...듣보잡 고양이한테도 쫓겨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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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울이도 당돌이와 순둥이도 지난겨울 고양이별로 떠난 까뮈네 아이들이다.
여울이가 윗배에 태어나 당돌이에겐 누나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오랜 떠돌이 생활을 하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영역을 차지한 당돌이에게는
누나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당연히 여울이를 보면 으르렁거리고 공격자세를 취하곤 한다.
여울이는 당돌이가 동생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지라
당돌이 가까이 다가가 아는 체를 해도
당돌이는 언제 봤냐는 듯 외면을 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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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왜 나를 못살게 구는 거지...(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한번은 당돌이의 영역과 여울이의 영역이 겹치는 공터에서
당돌이와 순둥이, 여울이, 그리고 교회에서 새로 영역을 옮긴 노랑이까지
네 마리의 고양이가 영역다툼을 벌이는 것도 보았다.
그때 당돌이의 위세가 어찌나 대단하던지
고 어린 것의 위협과 공격에 그만 여울이는 서럽게 도망을 치고 말았다.
이 공터야말로 치열한 영역다툼의 현장이 되는 ‘국경분쟁’의 뇌관과도 같은 곳이다.
약 한달여 전 이곳에 교회에서 온 노랑이마저 터를 잡으면서
이곳은 ‘마의 삼각지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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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이와 덩달이, 여울이의 삼자대면. 그러나 덩달이가 곧 여울이를 쫓아내버렸다. "걸음아 나 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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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공터 구석에다 나는 여울이가 먹을 사료를 부어주었는데,
여울이가 사료맛도 보기 전에
뒤늦게 이곳으로 이주한 노랑이 녀석이 으르렁거리며 다가오더니
여울이를 내쫓아버렸다.
여울이는 한두 번 항변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약 보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봉달이와 덩달이가 사는 영역으로 놀러간 여울이가
덩달이에게 쫓겨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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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만 성질 있는줄 알아...내가 임신만 안했으면...저것들을 그냥...으냐앙 캬르릉 하악..."

사실 봉달이와 여울이는 사이가 좋은 편이라
봉달이가 여울이에게 놀러가기도 하고
여울이가 봉달이에게 놀러가기도 하는데,
유독 덩달이는 여울이를 못마땅해하곤 했다.
이래저래 여울이는 이웃 고양이들에게 찬밥 신세다,
그냥도 아니고 임신한 상태인데도
주변의 고양이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엊그제도 여울이는 당돌이와 노랑이에게 쫓겨
정미소 지붕에서 홀로 분을 삭이고 있었다.
뱃속에 아기만 없다면 한바탕 싸워보고도 싶지만,
여울이의 입장에서는 그저 참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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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쩌겠어요...뱃속의 아기를 위해서 참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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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양보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여울이는 그저 공터의 ‘공동구역’에서 사료 좀 나눠먹자는 것인데,
그마저도 이웃의 고양이들이 용납을 해주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녀석이 머무는 정미소 지붕에다
따로 여울이만을 위한 밥상을 차려주었다.
고양이도 임신묘 생활이 이토록이나 힘이 든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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