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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의 빛나는 사원들: 티베트 정신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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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의 빛나는 사원들 : 티베트 정신의 성지




티베트에 간 이상 사원을 둘러보지 않고는 티베트를 느낄 수가 없다. 티베트에서 사원은 종교이기 이전에 모든 티베트인의 생활의 일부분이며, 정신의 구심점 노릇을 한다. 중국의 탄압과 지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티베트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은 바로 그들의 종교와 사원에 깃들어 있다.


1. 티베트의 심장-조캉사원



조캉사원 대법당의 황금지붕.


흔히 ‘티베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조캉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자 최고의 성지로 티베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워 불상(석가모니)을 모신 곳이다. 조캉이란 이름도 ‘조워를 모신 라캉’이란 뜻에서 비롯되었다. 조캉은 당나라 문성공주와 인연이 깊은 절이다. 본래 조캉은 7세기 640여 년쯤 당시 토번 왕국의 송첸 감포 왕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당시 토번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당나라와 네팔에서 각각 공주를 왕비로 바칠 정도였다. 이 때 문성공주(당나라 현종의 딸)가 티베트로 가지고 온 불상이 바로 석가모니 불상이었다. 이 불상은 처음에 라모체 사원에 모셨으나, 송첸 감포 왕이 죽은 뒤 불상의 보호를 위해 조캉으로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릉빈가. 힌두교에서는 '가루다'로 불리는 이것은 얼굴은 사람이고, 다리와 꼬리는 새로 표현된다.


과거 ‘양의 거주지’란 뜻을 지니고 있던 라싸가 ‘신의 거주지’란 뜻을 지니게 된 것도 문성공주 시절 조캉의 건립과 무관하지 않다. 티베트에서 불교가 국교로 자리잡고 수많은 사원이 건설된 것이 바로 그 시절이다. 그러나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문화혁명 기간(1966~1976년 6259개의 티베트 사원 중 몇 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원이 파괴되었으며, 수십만 명의 승려가 강제로 환속당했다)을 거치면서 조캉은 한때 폐허(중국은 티베트의 심장인 조캉을 한때 돼지우리로 사용하게 했다)가 되다시피했다. 이 때 포탈라궁과 노블링카궁은 물론이고, 간덴사원과 라모체 사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라싸 인근 사원도 파괴되었다. 조캉사원은 1980년 이후에야 조금씩 재건돼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하는 순례자들.


조캉사원은 늘 이른 아침부터 붐빈다. 포탈라궁이 주로 외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면 순전히 이 곳은 티베트 각지에서 온 경건한 순례자들로 붐빈다. 순례자들은 코라(마니차를 들고 시계 방향으로 사원을 한 바퀴 도는 의식)를 돌거나 조캉의 문앞에서 염려스러울 정도로 심한 오체투지를 한다. 이들의 오체투지는 거의 필사적이다. 필사적으로 붓다에게 마음을 바친다. 열린 문틈으로는 끊임없이 버터기름 냄새와 신성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흔히 포탈라와 조캉을 다 둘러본 여행자들은 포탈라의 입장료는 아까워하지만, 조캉의 입장료는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티베트의 진면목을 조캉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캉사원 바코르 광장의 사람들과 뒤로 보이는 저녁의 조캉사원.


조캉에 들어가면 우선 내부 광장을 지나 대법당을 만나게 된다. 1층 대법당은 조워 석가모니를 모신 조캉의 핵심인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미륵불(Jampa), 왼쪽에 구루 링포체(Guru Rinpoche, 8세기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인도 현자, 제2의 부처로 여김)를 모시고 있다. 또한 이들 불상을 모신 1층 대법당을 중심으로 모두 18개의 크고 작은 법당들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2층을 거쳐 3층으로 올라가면, 조캉사원의 화려한 황금지붕탑을 만나게 된다. 또한 이 곳은 사원의 옥상 전망대 노릇을 하고 있어 조캉사원 앞 바코르(조캉사원의 순례길, 코라와 같은 의미)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정문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의 모습도 위에서 곧바로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멀리 포탈라궁은 물론 사방으로 펼쳐진 라싸 시내의 풍경까지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2. 세라사원-티베트 최대 불교대학



세라사원 법당 풍경.


라싸 북단에 위치한 세라사원은 티베트 최대의 불교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5개의 교육기관에 7000여 명의 승려가 거주했던 거대한 사원은 현재 3개 대학에 300여 명 정도의 승려만이 남았는데, 중국의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승려들의 숙소가 거의 파괴된 데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의 다람살라로 망명할 당시 상당수의 승려가 함께 길을 따라나섰기 때문이다. 세라사원은 1419년 쫑카파(1357~1419, 티베트불교의 중심세력인 겔룩파의 창시자) 제자인 사캬 예쉬가 세운 사원이다.


세라사원의 좁다란 골목(위)과 법당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아래).


사원 안에는 대법당(촉첸)을 비롯해 세라 메, 세라 응악파, 세라 제 대학과 13개의 캉첸(승려 숙소)이 들어서 있다. 시계방향으로 사원을 돌다 보면 세 번째로 만나는 대학이 세라 제인데, 이 곳은 티베트에서 가장 유명한 교리문답 토론장이기도 하다. ‘최라’(Chora)로 불리는 교리문답(또는 선문답) 토론은 보통 오후 3시 30분부터 약 1시간 정도(일요일은 열리지 않는다) 열리며, 세라 제 앞마당 정원이 토론장 노릇을 한다. 승려들의 교리문답은 보통 1:1로 한 승려가 경전과 깨우침에 대한 질문을 하면 곧바로 상대 승려가 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때로 논쟁이 과격해서 이들이 토론하는 모양은 꼭 윽박지르고, 삿대질하고, 싸우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세라사원 코라 순례길에서 바라본 바위에 그린 불상 그림들.


이 때 승려들이 하는 특이한 행동이 하나 있다. 한손을 밑에 받치고 다른 한손을 높이 들어 힘껏 내리치는 손뼉치기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윗손이 천상을 상징하고, 아랫손이 지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진리와 교리의 충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재미있는 행동으로 인해 세라의 교리문답 시간은 오늘날 외국인에게 상당히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 되었을 정도다. 이런 특이한 토론방식은 티베트 불교 특유의 학습방법으로, 항상 상대방보다 더 우월한 교리와 철학을 지니기 위한 수행방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토론에서는 지적 순발력과 함께 상대방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통찰논리도 필요했지만, 우습게도 상대방을 압도하는 목소리가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었다.


3. 드레풍사원-티베트 최대 사원



드레풍 사원의 한 비구니 스님이 물통을 지고 법당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세라사원이 라싸 시내에서 가까운 외곽에 자리한 반면, 드레풍사원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터를 잡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드레풍사원은 1만여 명의 승려를 거느린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 중 한 곳이었다. 지금도 사원의 규모는 티베트에서 최고를 자랑하지만, 거주하는 승려의 수는 500여 명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드레풍사원은 1416년 쫑카파의 제자 잠양 초제(Jamyang Choje)가 설립했다고 전해온다. 포탈라궁이 완성되기 전까지 드레풍사원은 달라이 라마(2, 3, 4대)의 거처이자 실질적인 정치와 종교의 본당 노릇을 해온 중요한 곳이다.


드레풍 사원의 대법당(위)과 대법당 앞을 지나는 양떼들(아래).


사실 현재 남아 있는 드레풍 사원의 규모만 해도 사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소도시에 가깝다. 아침 일찍 사원에 들어간다 해도 저녁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구경이 끝날 정도이다. 이 곳의 길과 골목은 복잡한 미로처럼 얼켜 있어,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과거 교육기관 역할을 함께 수행했던 드레풍에는 간덴궁(달라이 라마가 거처하던 과거의 티베트 행정부)과 대법당 외에도 응악파(탄트라를 연구하는 대학), 로세링, 고망, 데양 등 4개의 승가대학이 자리해 있다. 사원 내 길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 첫 번째로 만나는 큰 건물이 간덴궁이고, 간덴궁 위쪽에 응악파 대학, 응악파 오른쪽에 대법당이 자리해 있다. 나머지 3개 대학은 대법당 아래쪽에 몰려 있다.


드레풍 사원에서 탑돌이를 하고 있는 노스님.


드레풍사원에서도 오후 3시가 되면 로세링 대학 최라에서 교리문답 토론의 장이 열린다. 세라사원의 최라보다 붐비지는 않지만, 토론의 열정만은 그에 못지 않다. 물론 이 곳의 최라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하고, 촬영을 하려면 70원, 비디오 촬영은 120원을 내야 한다. 만일 몰래 찍다가 걸릴 경우 물벼락을 맞고 쫒겨난다. 무엇보다 드레풍사원은 라싸 시내의 사원들과 달리 붐비지 않는다는 것이 매력이다. 대법당 앞마당은 때때로 관광객이 아닌 염소와 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미로형 골목에서도 길 잃은 양들을 만나는 것이 대수롭지 않다.


드레풍 사원의 교리문답 토론의 장. '최라'라고 불린다.


드레풍사원의 코라는 세라사원보다 훨씬 경사가 심하고, 그만큼 조망도 훌륭한 편이다. 암벽에 조각된 불상과 탕카를 걸어놓는 벽, 외떨어진 암자들도 코라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다. 라싸 시내에서 드레풍까지는 미니버스가 운행(시내에서 택시로 20분)하고 있지만, 사원까지 버스가 올라가지 않아 걸어서 30여 분이나 올라가야 한다. 당연히 내려오는 길도 대중교통이 없어 천상 걸어서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교통의 불편함은 드레풍사원을 라싸 시내의 사원들과 다른 적막한 분위기로 만들었고, 오히려 여행자들은 이런 점을 드레풍사원의 최고 매력으로 꼽고 있다.


4. 타시룬포 사원-파괴되지 않은 황금사원



타시룬포 사원에서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합장한 소녀.


라싸에 조캉사원이 있다면, 시가체에는 타시룬포 사원이 있다. 16세기까지 시가체가 티베트의 수도였을 때, 그 중심에는 언제나 타시룬포가 있었다. 타시룬포는 겔룩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쫑카파의 제자인 제1대 달라이 라마 겐덴 드룹이 1447년에 세운 사원으로, 오늘날까지 판첸 라마 거주 사원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판첸 라마는 ‘위대한 학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달라이’는 ‘바다’라는 뜻의 몽골어이고, ‘라마’는 ‘스승’을 뜻하는 티베트어) 다음으로 영적인 권위를 지닌 종교 지도자이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찾거나 환생한 달라이 라마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도 판첸 라마의 역할이다. 반대로 판첸 라마가 입적하게 되면, 달라이 라마가 판첸 라마의 환생을 찾아 임명한다.


중국의 사원 파괴에서 살아남은 몇 개 사원 중 한 곳인 황금사원, 타시룬포.


현재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의 망명으로 판첸 라마가 실질적인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본래 티베트에서 옹립한 11대 판첸 라마(게둔 쵸키 니마 Gedhun Chokyi Nyima)는 어린 나이에 북경으로 끌려가 투옥되었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어린 정치범으로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은 이 어린 판첸 라마를 대신해 중국에 우호적인 갼차인 노르부(Gyancain Norbu)를 11대 판첸 라마로 임명해 타시룬포에 두었으나, 대다수의 티베트인들은 중국에서 임명한 판첸 라마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티베트인의 마음에는 달라이 라마만이 유일한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다.


타시룬포 사원의 황금 지붕.


드레풍과 더불어 티베트 최대 사원 중 한 곳으로 꼽히는 타시룬포는 중국의 문화혁명 기간에 벌어진 대대적인 티베트 사원 파괴에서 살아남은 몇 개의 사원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라싸의 드레풍을 최대 사원으로 꼽았으나, 사원 파괴를 겪으면서 온전하게 남은 건물로는 이제 타시룬포가 실질적인 티베트의 최대 사원이나 다름없다. 전성기에는 타시룬포에 무려 4700여 명의 승려들이 기거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약 800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고 있다. 타시룬포에는 제1대 달라이 라마의 유해와 역대 판첸 라마의 영탑을 모시고 있으며, 탄트라(인도에서 전해오는 경전)를 가르치는 응악파를 비롯해 불교철학을 가르치는 승가대학이 따로 들어서 있다.


타시룬포 대법당 뒤편에 자리한 40미터 높이의 탕카벽.


타시룬포는 멀리서 보아도 금빛으로 반짝이는 사원의 황금지붕이 유난히 눈에 띈다. 입구에서부터 왼쪽으로 올라가면 마니차와 쵸르텐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잠캉 첸모(세계에서 가장 큰 26m짜리 금동미륵불을 모신 법당)와 구동(판첸 라마의 궁전)을 지나 타시룬포에서 가장 큰 켈상라캉(대법당)이 이어진다. 두 곳의 승가대학은 켈상라캉에서 정문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날 수 있으며, 대법당 위쪽 산자락에서는 40m 높이의 탕카벽을 볼 수 있다. 타시룬포의 중심인 켈상은 사원의 가장 오래된 초기 건물로써 안에는 판첸 라마가 사용하던 옥좌가 있고, 미륵불을 본존불로 모셔놓았으며, 역대 판첸 라마를 그린 탕카도 천장에 걸어놓았다. 대부분의 중요한 법회나 행사는 바로 이 곳에서 열린다. 사원을 한 바퀴 도는 코라는 약 3km 거리로, 한 시간 이상 걸리지만, 사원과 시가체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므로 놓치면 안될 곳이다.


5. 간체 쿰붐-티베트 최고의 불탑



티베트 최고의 불탑으로 손꼽히는 간체 쿰붐.


간체의 팔코르 사원은 여행자들이 경탄해마지않는 티베트 최고의 불탑(스투파), 간체 쿰붐(Gyantse Kumbum)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십만탑’이란 뜻을 지닌 간체 쿰붐은 8층(기단 포함해 9층)에 그 높이가 35미터에 이르며, 층층이 이뤄진 법당이 무려 108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108개는 상징적인 숫자일 뿐, 실제로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거대한 만달라를 상징하는 쿰붐의 모양은 주요 법당이 자리한 5층까지는 8각형을 이루고, 위층은 원형으로 이뤄져 맨 꼭대기에는 거대한 황금첨탑을 얹어놓았다. 또한 쿰붐의 6층에는 간체와 중생을 굽어살피려는 듯 ‘보호의 눈’으로 불리는 부처의 눈을 사방에 그려 놓았다. 1427년 건축된 이 불탑은 네팔 양식에 따라 지은 것인데, 일반인에게는 6층까지 약 30여 개의 법당만 개방하고 있다.


간체 쿰붐이 있는 팔코르 최데 사원 전경과 간체 풍경(위). 코라 순례길에서 바라본 간체 쿰붐(아래).


팔코르 사원은 9세기 팔코르첸의 집권 시기에 처음 지어졌지만, 15세기 들어 다양한 종파의 사원이 팔코르에 들어서면서 상당한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중국 점령 이후 남아 있는 사원 건물은 현재 두 곳(샤카파 사원과 샬루파 사원)에 불과하다. 매표소를 지나면 오른편에 대법당이 있고, 왼쪽에 거대한 간체 쿰붐이 자리해 있다. 간체 쿰붐을 돌아 대법당 뒤쪽으로 올라가면 샬루파 사원이 자리해 있는데, 지금은 건물의 뼈대만 남아 내부는 텅 비어 있다. 하지만 이 사원의 지붕에 올라가면 팔코르 사원과 간체 종, 간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최고의 전망대 노릇을 한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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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의 은밀함과 순수함에 빠지다! 바람과 구름의 자취를 따라가는 길 위의 시인 이용한의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 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 10여 년 전부터 출근하지 않는 인생을 선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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