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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가집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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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가집의 어제와 오늘




전남 보성군 회천면 석간마을에는 10여 년 전까지 바다가 보이는 터에 기울어 가는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지금은 푸른 천막을 씌워놓아 초가집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는데, 집주인에 따르면 몇 년 전 심한 태풍과 장마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천막을 씌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오막살이’, ‘초가삼간’이란 말처럼 초가는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집을 지을 때조차 여러 명의 목수가 달라붙는 기와집처럼 시끌벅적, 요란하지도 않았다. 재료는 그저 주변에 널린 흙과 나무와 짚이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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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군 회천면 석간마을 초가집의 10여 년 전 모습(위)과 천막을 씌워놓은 몇 년 전 모습(아래). 초가집은 이렇게 이 땅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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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에게 짚이란 생명 또는 신격에 다름아니었는데, 아이를 낳았을 때 짚으로 금줄을 내거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마지막 가는 길에 짚신을 놓았다. 심지어 새로 담은 장에도 짚을 둘렀고, 악귀와 질병, 액을 막을 때에도 어김없이 볏짚으로 만든 금줄을 둘렀다. 그만큼 짚을 신성한 것으로 여겼던 것은 아마도 그것이 쌀을 생산하고 남은 부산물이라는 점 때문일 터이다. 쌀이란 바로 우리 민족의 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초가집도 없애고”라는 새마을노래와 함께 출발한 새마을운동이 초가지붕을 함석과 슬레이트로 전면 교체하고 나서면서 초가문화는 뿌리째 뽑히기 시작했다. “초가‘지붕’을 없앤다는 것이 실제에 있어서 초가로 표상되어 온 민중생활의 모든 공간 구성과 세시풍속, 나아가서는 생활문화를 근원에서부터 ‘학살’케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사실상 민속마을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초가를 제외하면 살림집으로서의 초가는 이 땅에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네 주거문화의 바탕인 초가문화도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 옛집 기행::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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