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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신성한 하늘호수, 티베트 남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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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신성한 하늘호수, 티베트 남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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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례자가 마니차를 돌리며 남쵸 호수 코라를 돌고 있다.


중국의 칭하이와 라싸를 잇는 칭장공로는 중국이 티베트를 지배하기 위해 최초로 건설한 포장도로이다. 도로의 고도는 해발  5000m를 넘나들고, 겨울이면 눈으로 뒤덮여 종종 도로의 기능을 상실하지만, 중국은 이 길을 통해 지금껏 군인들과 이주민을 실어왔고, 티베트의 자원과  물자를 실어갔다. 이제 이 임무는 새로 개통한 칭장철로가 고스란히 물려받게 될 전망이다. 남쵸로 가는 동안 나는 내내 중국을 비난하고 독설을 퍼부었는데, 공교롭게 내가 탄 차의 운전기사는 한족이었다. 내 뒷담화에 골치가 아팠는지, 담슝마을에 도착한 운전기사는 라겐라 언덕으로 가는 다릿목에 갑자기 차를 세웠다. 알고 보니 그는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다며, 식은 땀까지 흘렸다. 그의 증세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어서 어지럼증에 이따금 구역질까지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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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라겐라 언덕에서 만난 유목민의 아이들.

고산증이었다. 결국 참을 수 없는 운전수는 문을 열고 나가 약국을 찾아나섰다. 잠시 후 그는 가루약과 호랑이 기름을 사갖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가루약을 입안에 털어넣고, 일행 중 한 명에게 민간치료를 부탁했다. 고산증을 극복하는 그의 민간요법은 이런 것이다. 우선 목 뒤에서 어깨와 등으로 내려가는 부위를 동전으로 피멍이 맺힐 때까지 긁어내린 뒤, 그 위에 호랑이 기름을 바르는 것이다. 일행은 남쵸에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가 제시한 민간요법을 해야만 했다. 민간치료가 끝나자 운전수는 거짓말처럼 나아졌다면서 다시 시동을 걸었다. 담슝마을에서 남쵸까지는 약 4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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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신성한 하늘호수, 남쵸.


해발 4718m에 자리한 남쵸는 티베트에서 가장 높고, 넓은 호수일 뿐만 아니라 가장 신성한 호수로 알려져 있다. 사실 티베트에는 남쵸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한 호수가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티베트인들의 관념 속에서 남쵸는 티베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로 인식되고 있다. 담슝에서 남쵸로 넘어가자면 해발 5190m의 라겐라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데, 고산에 적응되지 않은 채로 넘을 경우 십중팔구는 고산증에 걸리게 된다. 때문에 라싸에 왔던 관광객들이 남쵸에 오를 때에는 최소한 닷새 정도는 라싸에 머물며 적응기간을 거친 뒤, 남쵸를 오르는 게 좋다. 물론 그런 적응기간을 거쳤더라도 고산증이 오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지금 힘겹게 라겐라 언덕을 올라가는 운전수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는 줄곧 중띠엔에서부터 동행하며 라싸에서도 며칠 머물렀으나, 이렇게 고산증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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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쵸 호수는 해발 4718미터에 자리해 있으며, 호수의 수면이 하늘과 맞닿아 있어 하늘호수라 불린다.


운전수의 증세가 호전된 것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는 겨우겨우 비탈진 길을 올라 라겐라 고갯마루에 차를 세웠다. 라겐라 고개는 멀리 남쵸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고원의 평야와 산자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으로, 남쵸로 넘어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가는 곳이다. 남쵸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인지 라겐라에서는 언제나 칼바람이 분다. 초여름인데도 하늘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주변의 산자락은 하나같이 밋밋하고,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다. 아예 이 곳은 나무가 살 수 없는 생육환경이다. 때문에 산자락이며 고원의 들판은 온통 잔디를 깔아놓은 듯 푸른 초원이고, 높은 산봉우리에는 잔설이 희끗희끗 덮여 있다. 물론 해발 5100m가 넘는 인근의 산봉우리는 대부분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멀리 만년설이 보이고, 희미하게 호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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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겐라 언덕에서 바라본 남쵸 호수.


이렇게 높은 남쵸와 라겐라 주변에는 꽤 많은 유목민들이 흩어져 산다. 이들은 주로 야크와 염소떼를 데리고 초원을 떠돌아다니는데, 남쵸 주변의 풍부하고 드넓은 풀밭이 이들에겐 삶의 터전이다. 산 아래 담슝마을에서는 흙으로 지은 집이 대부분이지만, 이 곳은 유목민의 거처답게 야크 가죽으로 만든 천막집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다. 이들은 혹독한 겨울이 오면 가축을 데리고 짐을 꾸려 좀더 낮은 지대로 내려간다. 따라서 유목민에게는 정착민의 흙집이 사실상 필요가 없다. 그러나 티베트에서도 유목민은 조금씩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중국에서 정책적으로 ‘유목민의 정착민화’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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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겐라에서 남쵸 호수로 가는 하늘길.


라겐라 고개에는 동냥을 나온 유목민의 아들 딸들도 10여 명을 훌쩍 넘는다. 이 아이들은 양떼를 몰지도, 땔감용 야크 똥을 찾아헤매지도 않는다. 대신에 어린 양을 가슴에 안고 라겐라 고갯마루에 올라 구걸을 한다. 그런데 이 녀석들의 구걸이 제법 당당하고 집요하다.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이 곳에 내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녀석들은 관광객들에게 모델을 자처하고, 그 대가로 손을 내민다. 사진 한 장에 1위안. 하지만 나는 사진에 찍힌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대신에 비상식량으로 싣고 온 과자와 초콜릿을 나눠주었는데, 주고 보니 20위안 어치가 넘었다. 계속해서 손을 내미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미어졌다. 무엇이 녀석들을 이 고갯마루로 내몰았는지, 이렇게도 티베트 유목민의 현실이 궁핍한 것인지. 어쨌든 이 아이들이 구걸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온전한 유목민의 아들 딸로 살아가기를 나는 진정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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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쵸 호수에서 바라본 남쵸 마을과 눈 시린 하늘 풍경.


라겐라 고갯마루를 넘어선 길은 남쵸 호수를 앞에 두고 아득하게 뻗어 있다. 야크떼와 염소떼는 느릿느릿 초원을 이동하며 풀을 뜯고, 어떤 유목민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차를 마신다. 이들에게 차는 물과 공기처럼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들은 하루 굶을 수는 있어도, 차를 하루 안 마시고는 못산다. 유목민의 터전을 가로지르던 길이 드디어 남쵸 호수를 저만치 두고 에움진다.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하늘호수’라 불리는 남쵸. 호수의 빛깔도 하늘을 꼭 닮아 있다. 초원을 달려온 길은 이제 남쵸 호수가 코앞인 남쵸마을에 이르러 끝이 난다. 말로만 듣던 남쵸 호수가 장쾌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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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쵸 호숫가 초원에서 만난 유목민의 가족.


티베트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호수답게 남쵸에는 매일같이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온다. 덩달아 하늘호수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도 해마다 늘어나 이제는 제법 남쵸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남쵸는 워낙에 넓은 호수인지라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만도 20여 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럼에도 남쵸에는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코라 순례자가 적지 않고, 심지어 호수를 한 바퀴 오체투지로 도는 순례자까지 있다. 남쵸 호수 앞에 자리한 남쵸마을은 천막촌이다. 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음식을 팔고 잠자리를 내주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말이나 야크를 태워주고 돈을 받는 것도 이들의 주 수입원이다. 호수에 도착하면 남쵸마을의 마부들이 몰려들어 귀찮을 정도로 호객을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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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에게 말을 태워주는 것으로 생계를 삼는 남쵸의 마부.


그러나 남쵸마을에 도착해 나는 먼저 시장기를 달랬다. 뚝바(티베트 국수) 한 그릇에 창아모차 한 주전자. 창아모차는 야크 우유에다 발효 덩어리차를 섞은 차를 말하는데, 찻물에 야크 버터를 저어서 만드는 수유차와 맛이 비슷하다. 티베트에는 야크 버터로만 만드는 뵈차라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이차를 섞어서 마신다. 차마고도 노선을 따라오는 동안, 자주 수유차를 맛본 터라 이제는 제법 티베트 차맛에 길들여져 나는 앉은 자리에서 열 잔이 넘는 창아모차를 마시고 일어났다. 나를 태우고 온 한족 운전수는 식사도 거른 채 아까부터 차안에 드러누워 고산증을 달래고 있었다. 호랑이 기름을 바른 그의 민간요법도 고산증 앞에서는 별 효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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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에게 선글라스를 빌려쓴 남쵸의 아이.


남쵸마을의 마부들은 온갖 수단으로 여행자를 말 위에 태우는 재주가 있다. 나는 포대기를 두른 아이를 안고 호수 앞을 지나는 여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사진을 몇 컷 찍었는데, 알고 보니 일종의 연출이었다. 그는 마부의 아내였고, 내가 사진을 찍었으니 말을 타야 한다며, 남편을 불러왔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상황이었지만, 그 아름다운 동업정신에 이끌려 기꺼이 나는 10위안을 주고 말 위에 올라탔다. 말을 타고 나는 호수로 내려갔다. 호수에 도착해 신성한 물속에 손을 담그자 얼음물인양 손이 시렸다. 하긴 남쵸의 물은 인근의 만년설 봉우리가 흘려보낸 빙하수로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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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쵸 호수 코라를 돌기 위해 온 스님.


해발 4718m에 길이 70km, 폭 30km, 수심 약 35m. 이것이 눈에 보이는 남쵸의 모습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남쵸의 본질은 이 곳이 하늘과 맞닿은 ‘하늘호수’라는 것이고, 티베트인의 관념 속에 가장 신성한 호수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그토록 남쵸를 신성하게 여기고 있는지는 남쵸에 가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남쵸에 이르러 하늘을 닮은 호수와 호수를 닮은 하늘, 연이어 펼쳐진 만년설 봉우리를 보고 있노라면, 그저 숨이 턱 막힌다. 아무리 봐도 호수의 빛깔은 신비롭기만 하다. 푸른색이 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빛깔과 아름다움을 호수는 한꺼번에 품고 있다. 아름답게 빛나는 푸른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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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쵸 호숫가에서 만난 마부의 아이와 아내.


남쵸 호수에서 남쵸마을을 넘어가면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또다른 호수가 펼쳐진다. 남쵸 호수보다 훨씬 작은 호수로써 물빛은 좀더 연하고 물결도 순하다. 양쪽 호수를 경계로 높지 않은 언덕이 솟아 있는데, 이 곳에 올라서면 양쪽의 호수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하지만 남쵸에 도착한 많은 사람들은 호수에 이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서 대부분은 언덕의 멋진 풍광을 놓치고 만다. 남쵸마을 언덕에 올라 나는 30분 넘게 바위에 걸터앉아 호수만 바라보았다. 호숫가를 따라 코라를 도는 노인이 지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좀더 언덕의 평화를 누렸을 것이다. 노인은 쉼없이 오른손으로 마니차를 돌리며, 호수를 따라 걸어갔다. 호수의 푸른색과 그가 입은 붉은색 옷이 행복하게 어울리고, 그가 중얼거리는 옴마니밧메훔이 하늘의 소리처럼 그윽한 오후였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r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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