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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9 독 안에 든 고양이 17

독 안에 든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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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안에 든 고양이

 

 

“독 안에 든 쥐”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갈 수 없는 처지를 일컫는 속담이다.

그런데 독 안에 든 고양이가 있다.

어느 날 나는 돌담집 장독대 앞에서 ‘독 안에 든 고양이’를 목격했다.

 

 

 

항아리 속에 누런 털 달린 것이 살짝 올라온 모양을 보고

나는 장독대 가까이 다가갔다.

그 누런 털은 한참이나 항아리 속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저 녀석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그 의문은 잠시 후 너무 쉽게 풀렸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항아리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녀석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꼬미였다.

꼬미는 항아리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혀를 길게 말아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항아리 속에 고인 물을 마시고 있었던 거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항아리 속의 물이 녹자

녀석은 그 속으로 들어가 물을 마시고 있었던 거다.

말하자면 항아리 속의 물을 마시려고 녀석은 스스로 ‘독 안에 든 고양이’ 꼴이 된 셈이었다.

 

 

지난 3년 반 동안 길고양이를 만나오면서

이런 희한한 풍경은 또 처음이었다.

항아리를 비워둔 돌담집 주인 입장에서는 이것이 탐탁치 않은 모습이겠지만,

나에겐 더없이 눈이 즐거운 구경이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바깥 동정을 살피던 녀석은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다시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물을 마셨다.

 

 

그 모습을 좀더 가까이에서 구경하고자 내가 장독대로 올라서자

녀석은 다시 고개를 삐죽 항아리 밖으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이내 앞발을 항아리 테두리에 디디고 단번에 장독대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것으로 그 상황은 끝이 났지만,

녀석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거리낌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잠시 후 한 바퀴 사료배달을 마치고 돌아와 장독대를 둘러보는데,

이번에는 재미 녀석이 항아리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녀석은 항아리 테두리 위에 곡예하듯 네 발을 붙이고

입맛을 다셨다.

이 항아리가 녀석들의 식수 항아리였던 셈이다.

 

 

독 안에 든 쥐는 본 적이 없으나,

독 안에 든 고양이를 보건대 그건 전혀 ‘쥐’의 난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얘들아, 거기 자꾸 들락거리다가 장독대 주인에게 걸리면

경을 칠지 모르니 이제 그만 사용을 중지하는 게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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