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자리하다 끌려갔으니 참 모도 못 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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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하다 끌려갔으니 참 모도 못 심구”
- 일제시대 보국대 끌려갔다 탈출한 김원도 노인의 영화같은 인생 이야기
 

                                                                                                  구술: 김원도 노인

                                                                                                  정리/사진: 이용한(dall-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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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더 되었다. 충북 제천시 덕산면 불구실에서 만난 김원도 노인(당시 78세)은 영판 모르는 내 손을 붙잡고 소설보다 더 기구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죽기 전에 당신이 겪은 이야기를 꼭 한번은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게 소원이라면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는, 이렇게 2년이란 세월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리고 며칠 전 원고작업을 하느라 수첩을 뒤적이다가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의 이야기를 다시 발견하고는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는 녹취록을 옮기듯 그의 이야기를 간추려 적었다. 이야기는 일제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내가 일제 때 보국대 끌려가설라무네 죽을 고비 멫번을 냉기구, 고생고생허구 참 그거는 말루 다할 수 없어. 그 때 내가 열아홉살이여. 학교 졸업하구 나서 ‘청훈생’이라는 단체에 일주일에 한번씩 끌려가서 내가 군사교육을 받구, ‘연생소’(농촌 젊은이들을 지원병으로 입대시키려고 일제가 만든 훈련소)라구 마을에서 군대 안간 사람덜을 불러다 연생훈련을 시키더라구. 그 때가 나는 열아홉살인데, 우리 동네에 환갑 지낸 사람두 거서 훈련을 받았어. 우리 동네서는 그 사람허구 내가 같이 보국대를 갔어. 참 내가 그 때 못자리하다가 끌려갔으니께루 참 모도 못 심구 간 거지.


청진으루다 보국대 끌려가서는 내가 토목공사 일을 했어. 거가 군수공장인데, 공장 둘레가 을마나 큰지 그게 30리여, 30리. 공장에 황덩어리는 태산같이 있지, 암모니아 비료같이 생긴 거하구 어마어마허더라구. 나는 거서 막사 짓는 부역을 했어. 맨날 심든 일만 허니, 거서는 병이 안생길 수가 없어. 나중에 보니까 하나 둘 쓰러지는데, 이게 옘병(염병)이여. 미수꾸 밥을 삽으로 퍼 나무 벤또에 주는데, 아무케두 이래 있다간 나두 죽겠드라구. 옆에 사람이 배 아프다구 칙간 간다 그래구 안 돌아오면 이게 죽은 거여. 참나, 사람 목심이 파리 목심이지. 하두 사람이 죽으니까 시체 저장소가 아주 따루 있었어. 막사 짓는 일을 허는 나헌테 어느 날은 거길 지키라는거여. 송판으로 이래 대충 곽(관)을 만들어 놨는데, 관이 엄청난 거여 이건. 그게 다 조선 사람 시체 담을 거지 뭐. 


아마 그 때가 해방 무렵인가벼. 어느 날은 하늘에서 웽 소리가 나구 빨래짜루같은 비행기가 막 폭격을 해대. 그래가지구는 여기저기 막 연기가 나는 거여. 그게 지끔 보니까 미국 비행기여, 미국 비행기. 공장하구 주변을 막 때리니까, 안되겠다, 도망가야 겠다, 여깄다가는 꼼짝없이 죽겠다, 그래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밖엔 안들드라구. 그래 우리 동네 노인네한테 가서, 그이가 우리 아부지 또래여, 도망가자 그랬지. 그 전부터 나는 미리 봐 논 데가 있었거등. 그래 그날 밤 몰래 노란 군대(황군) 눈을 피해 막사를 빠져나갔어. 그리구는 있는 힘을 다해 그 노인네하구 젤루다 얕은 담을 뛰어넘었는데, 아뿔싸 그 너머에 해지(함정)를 파 놨지 뭔가. 이래 파논 구대이에 그만 풀썩 떨어지고 말았네. 보니까 담 아래가 다 구대이야.

그래 자꾸 기나가니까, 다행히 얕은 데가 있어. 갠신히 그리루 기나왔어. 달이 훤하니 밝아서 감자밭에 허연 꽃이 이런 우굿대같이 피었는데, 참내 거기서 그만 덜컥 경비병헌테 들켰네. 자동차 불같은 거루다 막 비추었으이 딱 걸렸지 뭐. 그 눔덜이 막 호루래기를 불구, 난리가 났지 뭐. 그래 그 영감헌테 저기 산 모래이서 보자 그러구는 각자 헤어져 그냥 막 도망을 쳤지. 불은 막 비추지, 총소리는 들리지, 어뜩하든 거서는 빠져나가야 사는 거여. 한참을 뒤두 안보구 달려서 갠신히 혼차 산모래이까지 왔는데, 영감이 안 오는 거여. 아무리 기다려두 안 오는 거여. 죽었나 이 영감이, 그러구는 잽히면 안되니까, 할수없이 내 혼차 산을 넘어갔지. 걸리면 죽지 않으며는 회령 비행기 닦는데루다 가야 하니까, 이건 사람이 젤루다 무서운 거여. 한참을 사람만 보면 내가 피해다녔어. 혹시라도 꼰질르면 끌려갈까봐.


을매나 산으루다 도망다녔는지 몰러. 그러다 산에서 웬 숯 굽는 사람을 만났어. 그 사람이 그래는데, 해방이 되었디야. 해방이 뭐유, 내가 그랬지. 난 해방이란 말조차 그 땐 몰랐어. 그래니까 그 사람이 일본눔덜 망했다구 그러드라구. 해방된 지두 모르구 산으루다 한참을 피해다닌 거지. 그 얘기를 듣구는 30리가 넘는 회룡역까지 내가 또 걸어갔어. 하이구 30리가 왜 이래 먼지. 역에 도착해보니 거기 또 노란군대가 빽빽거리구 있드라구. 이 기차는 일본눔덜 타야 하니까 우린 못 타게 하는 거여. 망한 눔덜이 먼저 타구 가겠다는 거여. 저런 망할 눔덜이 있나. 그래 생각했지. 이 기차를 타야 살겠다. 해서 산빈달(산비탈)에 올라가 기차가 오기를 기다렸지. 한참 기다리니까 철컹철컹 기차가 오드라구. 그래 뒤도 안보구 기냥 뛰어내렸지 뭐. 보국대 담벼락두 넘었는데, 그까짓 기차에 못 뛰어내릴라구.


기차 지붕에 납작 엎드려가지구 오는데, 석탄가루가 얼굴에 막 낼리구, 바람은 씽씽거리구, 그렇게 내가 흥남까지 왔어. 흥남 오니까 보국대 갔다 온 사람덜한테 주먹밥을 준다구, 그래 그걸 읃어먹구는 다시 또 기차를 타구 한참만에 서울 청량리에 떨어졌는데, 참 인연이란 게 무섭긴 무서워. 거서 참 감자밭에서 헤어진 영감을 만났네. 영감이 이래 쳐다보구 웃드라구. 어찌나 반갑던지. 그 때는 서울에서 단양을 올래면 미칠이 걸려. 기차가 있나 뭐 버스가 있나. 천상 걸어가야 하는 거여. 그래 미칠을 또 걷구 걸어서 저기 단양으루 해서 내가 새북(새벽) 닭 울 때 집에 들어왔어. 아침상 막 들어가는데, 내가 마당에 턱 들어선 거여.


이게 뭔일인가, 식구덜이 넋을 놓쿠 쳐다보는데, 그지가 따루 없지. 청진에서 여까지 참 고생고생 왔으니. 내가 평생 우리 아부지 우는 거 그 때 처음 봤어. 아부지가 나를 붙잡고 우는데, 참 서럽고 기막히듬마. 식구덜이 밥상을 앞에 놓쿠는 다 울었지 뭐. 내 얘기를 하자면 책을 멫권 써두 모질라. 어이구 참, 그르케 내가 살아왔어. 기자 양반, 이 얘기를 내가 책으루다 낼라구 공책에다 적어놨는데, 아들 놈이 가져가 책을 내겠다구 해놓쿠는 여적지 소식이 없네. 내가 이래 나이 먹어서, 내 억울한 얘길 꼭 알리구 죽고 싶은데, 방법은 없지. 그러니 기자 양반이 서울 가면 내 얘기 좀 남덜한테 들려주게. 일본눔덜이 그 때 우리헌테 어뜨케 했는지. 꼭 부탁하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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