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새끼 핥아줄 수도 없는 어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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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핥아줄 수도 없는 어미고양이




이웃마을 축사에 사는 축사고양이는 10마리나 되는 대가족이다.

이제 한달 남짓한 새끼가 6마리.
5개월령이 지난 듯한 중고양이 3마리.
그리고 이 모든 고양이를 낳고 보살펴온 어미고양이.
어미고양이는 고양이 중에 모성애가 가장 뛰어나다는 삼색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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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들이 먹이를 먹는 동안 자리를 피해 앉아 있는 어미고양이. 입가에서 진물같은 것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까지 멀쩡하던 어미고양이가
엊그제부터 약간 이상하다.
내가 건넨 사료를 먹을 때도 인상을 찡그리고
새끼고양이가 옆에 와도 살뜰히 핥아주지도 않는다.
멀리서 망원렌즈로 어미고양이를 들여다보니 입 주위가 심상치않다.
어디서 물을 마셨는지 입가에 물기가 잔뜩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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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랑 닮은 삼색 새끼고양이가 어미 곁으로 다가온다.

아니다, 좀더 자세히 보니
그건 아무래도 물을 마셔서 그런 것 같지가 않다.
고양이는 물을 마셔도 혀로 감아올려 마시기 때문에 입가가 흥건하게 다 젖는 일은 별로 없다.
수의사가 아니므로 속단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입가가 짓물러 진물을 흘리는 것같다.
입가에 난 상처가 감염이 돼서 그런 건지, 또다른 질병인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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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 새끼냥이가 어미에게 뽀뽀를 하려고 한다(위). 그러나 어미고양이는 고개를 돌리고 만다(아래). 입가가 짓물러 새끼고양이에게 그루밍조차 해줄 수 없는 어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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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어미고양이는 아픈 게 분명해 보인다.
아픈 어미고양이 옆으로 새끼 삼색이 한 마리가 걸어온다.
새끼는 어미의 옆으로 다가와 어미에게 뽀뽀를 하려고 한다.
어미고양이는 잠시 고개를 새끼에게 돌렸다가는 이내 멈칫하고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린다.
이번에는 새끼가 부비부비를 하더니 어미의 등에 올라탄다.
하지만 몸이 성치 않은 어미고양이는 귀찮다며 몸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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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가 아픈 것도 모르고 어미의 등에 올라타 장난을 거니 어린 삼색이(위). 결국 어미는 새끼를 밀쳐내며 일어난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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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뜰하게 그루밍을 해주던 어미고양이였다.
어미고양이가 몸을 피하며 새끼를 밀어내자
어린 삼색이는 살짝 삐져서 고개를 숙인다.
새끼고양이의 재롱이 한없이 귀여울 테지만,
어미고양이는 지금 새끼고양이를 핥아줄 수가 없다.
새끼고양이의 장난을 받아줄 상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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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가 장난을 받아주지 않자 살짝 시무룩해진 새끼고양이.

결국 새끼고양이를 피해 어미는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이것이 혹여 축사의 오염된 소지랑물을 먹어서 감염이 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다시 집으로 와 2리터 생수통에 맑은 물을 가득 담아
먹이 근처 그릇에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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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찾아가보니 어미고양이는 코에서도 무슨 진물같은 것이 흘러내려 굳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축사를 찾아 어미고양이를 살펴보니
코에서도 무슨 진물 같은 것이 흘러 응고된 채로 달라붙어 있었다.
어미는 높은 널빤지 위로 올라가 해바라기를 하며
아픈 몸을 추스르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녀석에게 맑은 물과 사료를 제공하고 당분간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 시골냥이가 사는 법::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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