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시속 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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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함께 시속 4km




파란대문을 빠져나온 달타냥이
늦은 오후의 거리를 가만가만 걷는다.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옥수수는 많이 컸나, 길가의 옥수숫대도 구경하고
고추는 다 익었네, 고추밭도 둘러보고
댑싸리에 얼굴도 묻고,
마을회관 앞에 주차된 빨간 차 그늘에 앉아 한참이나 쉬다가
느적느적 소나무 언덕길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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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꾸 우리 서방냥이 꼬드기는겨?"

낯선 사람을 피할 때는 그렇게도 빠른 녀석이
산책에 나설 때는 더디기만 하다.
밤나무에 걸린 구름은 녀석의 더딘 걸음보다 더 느리게 하늘을 건너간다.
고양이의 하얀 솜털을 닮은 뭉게구름이다.
더디게 가는 고양이가 더 느린 구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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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냥은 먹이 구해오라 그러고, 아기냥들은 냥냥 울어대고... 사는 게 뭔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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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녀석의 꽁무니를 따라 가만히 걷는다.
고양이와 함께 시속 4km.
그마저도 밤나무를 지나 묏등 앞에서는 걸음이 멈추었다.
산책하던 고양이는 아예 풀섶에 주저앉아
하얗게 핀 망초꽃을 구경한다.
망초꽃에 앉은 풀벌레를 구경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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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시원한 야생의 바람, 향긋한 풀냄새! 역시 산책은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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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조금씩 서산으로 기울어가는데,
나는 자꾸만 오줌이 마려운데,
저녁에는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도 있던데,
바쁘면 먼저 내려가라고
아랑곳없이 고양이는 언덕의 평화와 오후 다섯 시의 적막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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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초꽃도 좋고, 그냥 풀도 마냥 좋아. 천천히 그리고 가만히 이 풀밭의 질감을 느껴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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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시계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시간은 고양이에게 있는 듯했다.
오늘은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밭을 매러 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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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할 시간이 없다구요? 술 마실 시간은 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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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고양이는 내게 말하고 있었다.
“서두른다고 하루가 더 빨리 가지는 않아요.”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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