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터줏대감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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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터줏대감 고양이

 

 

지난 초겨울부터 봄까지 우리집에 오는 최고의 단골 고양이는 삼색 몽당이와 턱시도 몽롱이였다. 특히 몽롱이는 밥을 먹고도 가지 않고 테라스 아래 엎드려 있거나 테라스 위까지 올라와 한참을 머물곤 했다. 녀석은 마치 여긴 이제 내 영역이야, 하고 선언한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갑자기 웬 고등어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불쑥 나타난 고등어 녀석이 딱 그랬다.

 

 

지난 늦봄부터 우리집에는 처음 보는 중고양이 고등어가 다녀가곤 했는데, 녀석은 마치 너구리처럼 산에서 내려왔다가 산으로 올라가곤 했다. 생김새는 전혀 너구리를 닮지 않았지만, 녀석을 나는 ‘너굴이’라 불렀다. 이 녀석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저 손님처럼 찾아와 몽당이와 몽롱이의 눈치를 보며 밥동냥을 하더니, 이제는 아예 밥그릇을 차지한 채 터줏대감 노릇을 한다. 그건 마치 여긴 백만년 전부터 내 땅이야, 하는 것처럼 뻔뻔하기도 했고 넉살이 과하기도 했다.

 

 

 

집 앞에서 몽롱이와 툭하면 밥그릇 싸움울 하더니 결국 너굴이가 승자가 된 모양이었다. 이 녀석 우리집을 차지하기 전까지만 해도 만날 나와 몽씨네 눈치를 살피더니, 막상 이곳을 손에 넣더니 대놓고 터줏대감 행세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나와보면 마당 한가운데 떡하니 앉아서 밥그릇이 비었다고 시위하는 것은 예사요, 밥을 먹고 테라스 아래서 낮잠을 자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테라스 위에서 내가 박스 정리를 하거나 쓰레기를 치우고 있노라면, 녀석은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테라스 위로 풀쩍 뛰어올라와 기웃기웃 쭈뼛거린다. “그건 재활용이야, 그건 아직 쓸만한 데 왜 버려?” 뒤에서 감시라도 하는 듯 녀석은 넉살 좋게 그렇게 참견까지 하고 나섰다. 요즘에는 아예 하루의 절반 가량을 우리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듯하다. 밥을 먹고 나면 파라솔 그늘에서 내내 낮잠을 잔다. 내가 그 옆으로 스윽 지나가도 귀찮게 고개를 한번 들었다가는 도로 퍼질러 잔다.

 

 

 

목이 마르면 유유히 수돗가로 가서 물을 마시고, 우리집 풍산개 두보 앞을 가볍게 지나치기도 한다. 더 황당한 것은 이 녀석이 우리집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테라스 기둥이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분명 갈색이어야 하는 테라스 기둥이 희끗희끗 속이 드러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녀석 테라스 기둥이 무슨 스크래처라도 되는 양 발톱으로 죄 긁어놓았다. 기둥마다 여기저기 스크래처 자국이다. 한두 군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방 돌아다니며 그러고 있다.

 

 

 

그래도 이 녀석 영역에 관해서는 꽤 관대한 편이다. 여러 차례 몽롱이와 밥그릇 싸움을 벌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배를 채우고 난 뒤에는 어떤 고양이의 출입도 눈감아주는 편이다. 물론 밥때가 겹쳐서 서로 밥그릇을 놓고 대치할 때면, 사정을 봐주지 않고 으르렁거리지만. 이 정도면 무난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엊그제는 이 녀석 내가 거실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현관문 앞까지 와서는 거실창 너머로 빤히 들여다보는 거였다. 아마도 녀석은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밥이 넘어 가냐? 마당의 밥통은 텅텅 비었는데, 혼자만 배부르면 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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