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고양이 가족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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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고양이 가족의 귀환

 

 

전원주택 고양이의 일원이었던 산둥이는 지난 초봄 1인자로 군림하던 아롱이에게 쫓겨나 인근의 우사에 터를 잡고 살았다. 사실 산둥이는 전원주택 할머니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고양이였는데, 무엇보다 산둥이가 떠나자 할머니의 상실감이 컸다. 할머니는 틈만 나면 산둥이가 있는 우사를 찾아 사료를 내려놓고 오곤 했다. 그러나 우사 주인은 비어 있는 하우스일망정 고양이가 그곳에 머무는 꼴을 못보겠다는 듯 고양이가 드나드는 모든 구멍을 돌멩이와 비닐로 막아버리곤 했다. 심지어 할머니가 우사 앞에 가져다 놓은 사료그릇마저 치워버리곤 했다.

 

지난 봄 쫓겨났던 산둥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전원주택으로 되돌아왔다.

 

할머니는 속이 상해 몇 번이나 내게 하소연을 했다. 산둥이가 불쌍해서 어쩌냐고. 그 즈음일 것이다. 너무 배가 고파서 전원주택을 찾아온 산둥이가 나에게 SOS를 보내왔다. 산둥이가 불러서 찾아간 우사에는 놀랍게도 다섯 마리의 아기고양이(턱시도 1, 고등어 3, 삼색이 1)가 먹이원정을 간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둥이는 내게 새끼들의 생존을 부탁한 것일 게다. 그 뒤로 나는 2~3일에 한번씩 그곳을 찾아 사료를 내려놓고 오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사 주인은 그곳에 머무는 고양이들을 탐탁찮게 여겼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텃밭의 오이며 고추며 상추를 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 먹지마 나만 먹을 거야!"(위). "엄마 여기 넘 좋아요. 밥도 많고..."(아래).

 

그리고 장마가 닥쳤다.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태풍이 지나고 또다시 지루하게 비가 내렸다. 산둥이는 새끼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결국 산둥이는 장마가 잠시 주춤하던 날을 택해 새끼들을 이끌고 전원주택으로 귀환했다. 때마침 전원고양이의 1인자였던 아롱이도 이곳을 떠나고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새끼를 낳은 꼬맹이와 호순이의 텃세는 심했다. 그 텃세를 피한다고 산둥이네 가족이 자리를 잡은 곳이 전원주택 뒤란이었다. 그렇게 산둥이네 가족은 전원주택 뒤란에서 새로운 묘생을 시작했다. 늘 산둥이 걱정을 하던 할머니는 이제 좀 안심이 되는지 안도의 한숨까지 쉬었다.

 

셈이 난 호순이가 뒤란에 와서 산둥이네 가족의 밥을 먹고 있다. 산둥이네 새끼들에게도 으르렁거리면서...

 

그런데 산둥이가 데려온 새끼는 네 마리였다. 삼색이가 보이지 않았다. 우사 앞의 작은 배수구 구멍에서 몹시도 궁금한 눈빛으로 바깥을 내다보던 녀석. 지루한 장마에 녀석은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이다. 어쩌면 그 녀석의 희생이 산둥이의 마음을 움직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계속 있다가는 새끼들의 생존이 불확실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오직 살기 위해서 산둥이는 전원주택으로 되돌아왔다. 혼자였다면 어떡하든 살아보았겠지만, 줄줄이 달린 자식들을 생각하면 돌아가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엄마 저 고양이가 우리 밥 다 먹고 있어!" "냅둬라. 아직은 우리가 뒷방 신세니... 참아야 하느니라!"

 

돌아온 산둥이와 새끼들을 위해 할머니는 살진 멸치도 한 그릇 내오고, 따로 불러서 계란 프라이도 먹였다. 혹시 비가 들이칠까 뒤란에는 산둥이 가족을 위해 비가림용 비닐막도 따로 쳤다. 할머니가 지극하게 산둥이를 챙기자 앞마당을 차지한 꼬맹이와 호순이는 불만이 커졌다. 특히 뒤란과 집 뒤편의 덤불에서 새끼를 키우다 앞마당으로 옮겨온 호순이는 단단히 삐쳐서 대놓고 산둥이네 가족에게 텃세를 부렸다. 뒤란에 산둥이네 가족이 먹으라고 따로 사료그릇을 놓아두면 호순이는 앞마당에 있는 사료 그릇을 마다하고 굳이 뒤란에 가서 산둥이네 사료를 빼앗아 먹곤 했다. 산둥이네 새끼들이 ‘그거 우리 밥인데’ 하고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으르렁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어 이것도 먹을 건가?"(위). "근데 저 아저씨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요?"(아래).

 

아랑곳없이 산둥이는 옆에서 지켜만 보았다. 대식구를 끌고 들어와 미안한 마음도 있다는 듯 호순이가 대놓고 자기네 그릇을 넘봐도 산둥이는 그저 지켜만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대신에 산둥이는 뒤란으로 난 창문에 대고 툭하면 할머니에게 밥을 달라고 소리쳤다. “아이구 내가 이래 주방에서 뭘 하고 있으면, 그렇게 창문에 대고 순둥이가 나를 불러! 밥 달라고. 뭐가 그리 궁금한 지 새끼들도 창문으로 이래 들여다보고. 고양이들이 왜 그리 잘 삐치는지 요즘 내가 비위 맞추느라 정신이 없어. 순둥이 챙겨주면 호순이하고 꼬맹이가 삐치고, 호순이네 챙겨주면 순둥이가 삐치고. 고양이가 그렇게 질투가 많어 나 참!”

 

전원주택 뒤란에 터를 잡은 산둥이네 가족.

 

어쨌든 다행이다. 산둥이가 다시 전원주택으로 돌아와서. 할머니가 더 이상 산둥이 때문에 속상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산둥이네 새끼들이 배 불리 먹을 수 있게 되어서. 내가 공연히 우사까지 사료배달을 가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다. 전원주택 고양이의 묘구수는 그만큼 늘어나겠지만, 밥걱정은 말아라. 어떡하든 사료는 내가 구해다 줄 테니까. 그러니 너희는 이곳에서 다만 행복하면 된다.

 

이곳에서 다만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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