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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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

 

 

이웃마을 무심이네 가족이 오늘은 웬일로

정미소가 아니라 주황대문집 대문을 들락거리고 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주황대문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바로 무심이가 태어난 고향집이다.

 

 

 

과거 여울이는 이곳에서 무심이를 비롯해 육남매를 출산했고,

얼마 뒤 길가의 판잣집으로 이사를 했었다.

무심이는 지난 겨울에도 오빠들과 함께 주황대문집 헛간에 머물곤 했는데,

운명의 굴레는 녀석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주황대문집은 바로 문제의 쥐약사건(지난 해 가을 텃밭의 쥐약을 먹고 여울이와 세 마리의 아기고양이가 독살된 사건)이

일어난 텃밭이 바로 코앞에 있는 곳이다.

 

 

 

아무래도 무심이는 먹이원정 때마다

쥐약 아줌마가 사는 식당 앞을 지나야 하는 게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내놓는 개울집 급식소가 바로 앞집이라는 사실도

무심이가 이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당장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영역을 옮긴다는 것은

무심이로서는 모험이고 최후의 수단일지 모른다.

운명이든 저주이든 일단은 살고 봐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살자고 터를 잡은 곳이 쥐약사건이 일어난 텃밭 근처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그것을(사정을) 알 리 없는 아기고양이들은

수시로 주황대문을 들락거린다.

내가 대문 앞에 나타나자

녀석들은 대문 속에서 두 눈만 내놓은 채 내 동정을 살폈다.

“어 사료 주는 아저씨 아냐!”

맨 처음 녀석들을 만났을 때

내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도망을 가던 녀석들이

오늘은 빤히 쳐다보면서 오히려 사료를 기다렸다.

 

 

 

나는 주변을 살핀 뒤 대문 옆에 한 움큼의 사료를 내려놓았다.

한동안 녀석들은 그것을 먹기 위해 참으로 분주하게도 대문을 들락거렸다.

그냥 느긋하게 먹어도 되는 것을 녀석들은 큰길에 차가 지날 때마다,

자전거나 사람이 지날 때마다 대문 속으로 쏙 들어가 피신을 했다.

무심이가 아예 텃밭으로 나와 보초를 서는 데도

녀석들의 들락거림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대담해진 녀석들은

사료를 먹다가 무심이가 엎드려 있는 텃밭까지 다가와 나를 살폈다.

줄무늬 꼬리를 가진 하얀색 아기고양이는

무심이 옆을 지키다가 대담하게 내 앞을 지나쳐

개울집 통나무 더미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만난 지 세 번 만에 약 2미터 앞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녀석!

 

 

 

녀석에게 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여긴 위험한 곳이야!

네 할머니와 삼촌, 이모들이 여기서 쥐약을 먹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단다.

어서 다른 곳으로 떠나거라.

식당 아줌마가 보면 틀림없이 이곳에 쥐약을 놓고 말 것이니, 제발 이곳을 떠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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