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대째 전통옹기 가업 이어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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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째 전통옹기 가업 이어오는 미력옹기


9대째 전통옹기 맥을 잇는 옹고집 옹기장 이학수 씨(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9대째 전통옹기 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 있다. 전남 보성군 미력면 도개리에 있는 미력 옹기가 바로 그곳이다. 9대째 맥을 잇는 옹고집 옹기장 이학수 씨(53,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는 선친인 이옥동 씨의 뒤를 이어 300년이 넘는 가업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오고 있다. 한때 이 씨는 선친의 권유로 서울로 유학을 떠났지만, 타고난 피는 어쩔 수가 없었는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결국에는 이렇게 아버지의 뒤를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옹기장 이학수 씨가 만든 옹기 밥그릇. 천연 잿물 유약을 사용해 그 무늬가 자연스럽고 은은하다. 이 밥그릇은 이학수 씨에게 직접 선물로 받아 벌써 8년째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옹기사랑은 유약에서부터 남다른 면이 있다. 미력옹기에서는 납성분이 들어 있는 “광명단 유약” 대신 뒷산에서 채취한 약토와 부엽토, 나무와 잎을 태운 잿물을 사용한다. 이렇게 해야 옹기가 제대로 들숨 날숨을 쉰다는 것이다. 또 하나, 기계화되어가는 현대의 옹기 공정을 거부하고 오로지 손과 발로 옹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9대째 변함없이 옛날 방식인 쳇바퀴타래기법(흙덩이를 판자처럼 길게 늘어뜨려 그릇의 틀을 만드는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옹기 밥그릇에 '미력' 낙인이 찍혀 있다.

마지막으로 미력옹기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뺄불통 가마를 사용하고 있다. 이 가마는 경사 25~30도의 나지막한 언덕 구릉 위로 길게(23미터 정도) 치켜 쌓아 불길이 자연스럽게 퍼지도록 만들어졌는데, 처음 며칠 동안은 섭씨 40~50도의 “피움불”로 시작해 점점 온도(백도 정도)를 높여 “돋굼불”로, 다시 900도 정도의 “베낌불”에서 120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는 “큰불”을 때 준다. 이렇게 가마 속에서 옹기가 발갛게 달구어지고, 3일 정도 열기를 식힌 뒤 가마를 털고 끄집어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정성에도 가마에 넣은 옹기 가운데 절반 가량은 버릴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갈라지고 터진 옹기가 생기는 것이다.


미력옹기의 뺄불통 전통가마. 아직도 이곳에서는 유서깊은 전통가마를 고수해오고 있다.
 

옹기 만들기의 시작은 흙을 가져다 불순물을 골라내는 수비질로부터 출발한다. 수비질 다음에는 흙을 가져다 물반죽을 하고, 발로 밟고 떡메로 쳐서 찰지게 다진다. 이렇게 흙반죽을 만들어 물레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들겨 둥글납작하게 바닥을 만든다. 이어 굽깎기(나무칼)로 필요 없는 부분을 도려내고, 타림(흙가래를 둥글게 쌓아올리는 작업)을 올린 뒤, 도개(옹기 속을 두드리는, 떡살처럼 생긴 도구)를 안에 대고, 부채(표면을 두들겨 다지는 도구)로 바깥을 두들겨 수레질(옹기의 두께를 고르게 하고 모양을 내는 일)을 한다. 수레질이 끝나면 옹기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근개질(근개는 안개와 겉개로 나뉜다)에 들어간다.


바닥만들기(위) 부채(두들김 도구)로 수레질을 하는 모습(아래).

이렇게 옹기모양이 완성되면, 물가죽(물에 젖은 쇠가죽)으로 도드라지게 주둥이를 만든다. 이것을 ‘전 잡는다’고 한다. 전잡기에 이어 손잡이를 만들어 붙이면 일단 만드는 과정은 모두 끝이 난다. 다음 과정은 잿물 치는 과정인데, 어느 정도 옹기가 굳으면 잿물탕에 옹기를 살짝 담가 손으로 돌려가며 잿물을 친다. 그 다음에는 10일 이상 건조시켜 가마에 재운 뒤, 불때기에 들어간다. 사실상 절반은 정성이고, 절반은 시간이며, 결과는 운명인 작업이 바로 옹기라 할 수 있다.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근개질(위). 물가죽으로 도드라지게 주둥이를 만드는 '전잡기' 과정(아래).

옛날식대로 잿물을 바른 옹기는 안팎으로 뚫린 미세한 구멍을 통해 들숨날숨을 쉬어 음식의 조화로운 숙성을 돕는다. 또한 습기와 열 등을 조절하여 음식물을 오랜 동안 숙성시키고, 저장하는 노릇을 한다. 하지만 시중에 나도는 광명단 유약을 바른 옹기는 이런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며, 오히려 해를 입힌다. 광명단 유약은 옹기의 표면을 반들거리게 하는 납 성분의 유약으로, 일제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옹기로 간을 담으면 된장이고 고추장이고 부패하고 맛도 변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그건 옹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시중에 광명단 옹기가 나도는 것은 잿물 유약을 쓰는 것에 비해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왕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그들은 만드는 것도 기계로 찍어내고, 굽는 것도 가스가마나 기름가마를 사용해 9시간만에 구워내는 것이 보통이다.


잿물을 친 옹기는 응달에서 열흘쯤 건조시켜 가마로 옮겨진다.

그러나 가스가마에서 구워낸 옹기는 강도에서도 전통 옹기와 차이를 보인다. 가스가마는 보통 900도 정도로 굽기 때문에 1200도 이상으로 굽는 전통 옹기에 견주어 강도가 훨씬 떨어진다. 설령 광명단 유약을 쓰지 않았더라도 가스가마로 구운 옹기는 물이 스며들거나 음식물이 부패하기 쉽다. 제대로 구운 옹기는 두드리면 종소리가 나고, 쌀이나 다른 장류를 몇 년씩 담아놔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좋은 흙을 가져다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잿물 유약을 입혀 장작불로 가마를 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력옹기 뺄불통에서 나온 갖가지 항아리와 그릇들.

우리 옛말에 “사기는 사곱, 옹기는 오곱이 남는다”는 말이 있다. 사기 그릇은 이문이 네 배요, 옹기는 다섯 배라는 소리다. 하지만 이 말은 집집마다 장독대에 그득그득 항아리가 들어차 있을 때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그릇이 옹기를 대신하고, 아파트가 생겨나 장독대를 둘 필요가 없게 되면서 옹기는 차츰차츰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찰진 흙과 천연 잿물과 전통가마가 만들어낸 은은한 옹기 무늬.

과거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흙 좋기로 소문난 동네 치고 옹기굴 몇 개씩 없는 동네가 없었으나, 지금은 그 많던 옹기굴도 만나기 어려울뿐더러, 가스불에 광명단을 사용한 옹기가 버젓이 전통 옹기인양 행세하고 있다. 사실상 이제는 옛날 재래식 가마에 나무를 때서 옹기를 구워내는 전통 옹기굴은 몇 군데 남지 않았다. 그래서 무형문화재의 맥을 잇는 미력옹기의 존재가 커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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