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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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남자들, 쓸쓸하다>(푸른숲)



“한때 권력자로 길러졌고 권력자로 행세했던 남자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거대 자본주의의 피어린 경쟁에 내몰리고 페미니즘의 폭발적 확장과 신문명의 서슬 푸른 변화에 기가 죽은 한 남자가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당신의 침대에 누워 있다. 그는 지나간 가부장적 권위주의 시대에 ‘권력자의 전설’을 갖고 있었으나, 이제 그 모든 화려했던 전설은 추억 속의 빛바랜 흑백사진에 불과해졌다. 권력은 대부분 해체되었고, 그는 쓸쓸하게 인간의 거울 앞으로 돌아와 누웠다. 그는 속이 텅 빈 공룡같은 존재이다. 다시 아침이 오면 그는 불안하게 신틀메를 고쳐신고 ‘밥벌이’를 위해 세상 속으로 나갈 것이다. 그의 권력은 해체됐으나 그의 의무와 책임은 오히려 무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중략) 어떤 이는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또 어떤 이는 그를 이 시대의 남편이라 부른다.”

 

‘프롤로그’를 통해 박범신은 불쌍하기 짝이 없는 신세로 추락한 남자들, 아버지들에 대해 남자답게 변론하고 있다. 권력자인 남자야말로 권력의 희생자라고. 그의 말대로 남자들은 쓸쓸하다. 그런데 내가 볼 때 그건 남자라서 쓸쓸한 것이 아니다. 남자는 그 자체로 쓸쓸한 것이지, 상대적으로 쓸쓸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말하듯 남자들이 여자 때문에 쓸쓸해졌고, 옛날에 비해 쓸쓸해졌고, 사회적으로 쓸쓸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에 앞서 남자란 본래 쓸쓸한 존재라는 것이다. 본래 인간이 쓸쓸한 것처럼.

남자는 여자의 반대 개념도, 여자가 남자의 적군도 아니다. 책은 내내 불쌍한 남자들을 변호하고 있다. 여자 입장에서는 남자들만 그런가 뭐, 하고 콧방귀를 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자들이, 이것만은 이해해 줘야 하지 않을까. 남자도 쓸쓸하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다. 때문에 작가도 “전투복을 벗고 누운 모든 남자는 쓸쓸하다”고 말했으리라(전투복을 입고 엉거주춤 서 있어도 쓸쓸하던데! 꼭 전투복을 벗어야 쓸쓸해지는 건가). 어쨌든 이 책은 남자와 아버지, 남편의 실존적 위치에 대한 남자로서의 안쓰러움과 탄식, 푸념을 전하고 있다. 여자 입장에서는 맘에 안들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그래서 더욱 남자가 아닌 여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설령 ‘여자들이 훨씬 더 쓸쓸하다’는 결론이 나올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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