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도의 마지막 해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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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도의 마지막 해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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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도의 해녀배가 해녀를 싣고 '굴개' 쪽으로 가고 있다.

지독한 안개 속을 뚫고 하태도로 간다. 목포에서 오자면 3시간 반, 남서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먼 뱃길. 하태도는 태도(苔島)의 세 섬(상태, 중태, 하태)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태도’라는 이름은 섬과 바다가 한데 어울려 푸르게 보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하태도는 웃말, 고랑, 장골, 석멀이 합쳐 한 마을을 이룬다. 주민은 모두 50여 가구 정도 살며,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하태도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해녀섬이기도 하다. 50여 가구인 섬에서 해녀는 20여 명, 해녀배도 세 척이나 된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상 하태도의 마지막 해녀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해녀를 하지 않으려 하고, 현직 해녀는 모두 고령의 할머니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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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서 물질을 하고 있는 할머니 해녀.

“나는 이제 해녀질은 못허고, 가새서 이런 미역이나 뜯지 뭐. 이자 날이 이래가꼬 미역도 막 돋은 디만 할랑할랑하고, 좀더 더와버리면 끄트머리 하얗게 되고 구녕이 뻥뻥 나분다께. 요린데는 바람이 불어가꼬, 오히려 미역이나 이런 거 양식을 못히여. 나도 한창 띠는 미역을 가닥으로 넘겨가꼬 100무들(다발)썩 했는디. 지끔은 이래 쪼끔썩 미역도 하고, 파래도 하고, 톳도 히여. 여기는 멀리 나가서 전복 잡는 해녀는 한 20명쯤 될랑가, 넘을랑가. 배가 한 열 명쯤 해녀를 싣고 나가. 그런 배가 시 대(3척)여.” 웃말 가는 길에 만난 박금순 할머니(72)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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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발을 머리에 인 해녀가 해녀배를 타기 위해 선창으로 내려서고 있다.

웃말에서 두 명의 현직 해녀도 만났다. 김단님 할머니(68)와 김도덕 할머니(74)다. 두 할머니는 인사를 하는 나를 앉히더니 빈창(전복 따는 도구)으로 전복살을 발라 내게 내밀었다. 생면부지의 사내에게 비싼 전복을 내어주다니! 내가 맛있다고 하자 또 다른 전복을 내밀었다. 염치불구하고 나는 두 개의 전복을 앉은자리에서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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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말에서 만난 물질 50년이 넘었다는 해녀 김단님, 김도덕 할머니. 굳이 사양하는데도 나에게 전복을 손수 발라 내주었다.

“나이가 많아노니 이제는 물질도 잘 못히여. 여서는 배를 타고 나가 바다를 뺑뺑 돌아대니면서 물질을 히여. 내가 열 및살 때부터 물질을 힜어. 한번 오래 있는 사람언 5분, 우리는 2분 정도 있을랑가. 이 옆의 할매도 참 오래 있어. 이래 보며는 오매 염병할 안 나오네.” 김단님 할머니의 말이다. 김도덕 할머니 역시 스무살 무렵에 물질을 시작해 50년쯤 물질을 해왔다고 한다. 둘은 집이 같은 웃말이어서 언제나 단짝처럼 물질을 다녀오는 사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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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김단님, 김도덕 할머니(위). 전복을 따는 도구인 빈창(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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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물때에 맞춰 선창으로 나섰다. 해녀를 따라 해녀배를 타기로 했다. 물때가 가까워오자 선창에는 하나 둘 해녀들이 물옷을 입고 나타났다. 선창에서 만난 김순단 할머니(74)는 오리발을 머리에 이고 나왔는데, 그 모습이 꼭 챙모자를 쓴 듯했다. 내가 웃으며 카메라를 들이대자 할머니는 자꾸 고개를 돌려댄다. 어제 저녁에 만났던 김단님 할머니와 김도덕 할머니도 선창으로 나왔다. 이미 두 척의 배는 해녀를 싣고 나갔고, 마지막 배에 나는 몸을 실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물빛은 맑은 옥빛깔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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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배에서 바라본 몽여 인근의 아침 해무.

해녀를 실은 배는 물살을 가르며 등대를 돌아 몽여와 굴개 쪽으로 향했다. 미처 만나지 못한 하태도의 비경이 가는 곳마다 펼쳐졌다. 배를 몰고 간 김석태 씨(63)는 몽여와 굴개 사이에 이르러 하나 둘 해녀를 부려놓았다. 해녀가 바다로 뛰어들 때마다 옥빛 물살이 튀어올랐다. 김석태 씨는 해녀를 부려놓고 나면 서너 시간쯤 시동을 끄고 바다에서 물질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 틈에 낚시도 하고 낮잠도 잔다. 더러 해녀의 신호에 따라 다른 장소로 해녀를 옮겨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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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배에서 바라본 굴개 풍경과 아름다운 물빛.

해녀를 부려놓고 그는 친절하게도 나를 가마우지 서식처와 하태도의 비경인 굴개와 기둥바위로 안내했다. 하태도 갯바위에는 실로 많은 가마우지가 있었다. 내가 만난 녀석들만도 수십 마리가 넘었다. 굴개와 기둥바위 풍경은 홍도의 어떤 절경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비경이었다. 무엇보다도 굴개 주변의 바다는 그야말로 옥빛이어서 파도가 갯바위에 부서질 때마다 햇빛에 옥가루가 부서지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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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도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녀섬으로 현재 약 20여 명의 해녀가 마지막 물질을 하고 있다.

하태도의 절경을 돌아보고 물질 장소로 되돌아와보니 여전히 해녀들은 자맥질을 하고 있다. 김순단 할머니는 해삼을 두어 마리 건져와 나에게 내밀었다. “이것으루 아침이나 히여”하면서. 선장님도 기다렸다는 듯 배 밑창에서 소주를 한병 꺼냈다. 바다 위에서 아침으로 해삼을 먹으며, 소주를 마신다. 그 맛이 꿀맛 같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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