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몸이 조국이었던 춤꾼 최승희의 사랑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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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몸이 조국이었던 춤꾼 최승희의 사랑과 예술
- 김선우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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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한다는 사람치고 시인 김선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시집 3권을 비롯해 산문집과 장편동화 등 9권의 책을 낸 적 있는 김선우가 이번에는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실천문학사)를 펴냈다. 소설의 주인공은 춤꾼 최승희다. 온몸으로 춤을 살았던 최승희라는 시대의 춤꾼이 우리 시대의 젊은 예술가 김선우에 의해 되살아난 것이다. 시인 특유의 시적이고 강렬한 묘사가 돋보이는 이 소설은 실존 인물 최승희의 역사적 동선을 따라 허구의 에피소드들이 모자이크처럼 담겨 있다.

소설가 조세희 선생은 추천의 글에서 말한다. “사람은 죽기까지 누구나 한 번은 절규한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어느 역사에든 빛나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에는 절규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무용가 최승희를 다룬 이 장편소설은 무엇보다 인간적인 실존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타자화된 삶을 강요받아야 했던 불우한 삶들을 전경화하면서 여느 예술가 성장소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나비를 품은 고치와도 같은 이 소설을 통해 등을 뚫고 날개가 돋는 황홀을 경험하였다고 한다면 어떨까.”

온몸으로 춤을 살고자 했던 여자, 춤추는 그 몸이 조국이었던 자유로운 영혼의 천상 무희였던 그녀가 마음껏 날아오르기에는 시대가 너무 불우했다. 해서 험난한 근현대사를 가로질러 세계로 발돋움하는 그녀를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인물의 단선적 묘사와 서술을 버리고 과감하고도 입체적인 시점과 구성을 이용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작품으로 일궈냈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이미지는 “검정”과 “빨강”이라는 색채이다. “검정”이 죽음, 식민치하라는 시대적 어둠을 상징한다면 “빨강”은 생(生 )이며 빛으로 대변되는 자유의지라 할 수 있다.

작가의 탁월한 산문성이야 익히 알려져 있지만, 시인이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가 시와 소설의 간극을 뛰어넘는 데는 시나리오 집필 경험이 한몫했다. 동화 <바리데기>를 본 한 영화사의 대표가 무희 최승희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 집필을 작가에게 의뢰했고,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고 작가는 말했다. 등장인물들의 입체적이면서 개성 있는 캐릭터는 거기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춤이다>에서 그려지는 최승희는 춤꾼으로서의 최승희다. 소설에서는 춤과 관련되지 않는 최승희 삶의 전후는 모두 배제되었다.

해방 이후, 북조선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는 최승희의 모습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후 끊임없이 시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3인칭 작가 시점으로 그려지는 “여자” 최승희는 여린 듯 강인하며, 춤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에서건 단호해질 수 있고 얼마든지 정치적일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에 최승희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는 기타로와 남편이자 매니저인 안, 정신적 조력자인 중국 경극 제일의 여역(女役)배우 매란방, 그리고 최승희의 선생, 이시이와 일본의 무용연구소 동료들의 눈에 비친 최승희는 이기적일 만큼 자신만 아는 지독한 에고이스트로 그려진다. 춤추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를 때로는 연민하고 때로는 질투하며 때로는 숭배하는 그들의 주관적인 시선을 통해 작가는 춤꾼 최승희의 모습을 객관화시키고 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주변 인물은 “민”이라는 젊은 청년을 매개로 하여 이어질 듯, 말듯 끝까지 긴장감을 주는 조선의 예기 “예월”이다. 요즘 식으로 보면 스타와 팬의 관계라 할 수 있을까. 식민지 조선의 여자로 일본 남자와 결혼하여 만주와 조선, 일본을 오가면서 춤추는 최승희를 동경하여 먼발치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응원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최승희 춤의 한 모티브를 제공해주기도 하는 예월이라는 여성은 이 작품 속에서 작가가 빚어낸 가장 빛나는 소품이나 다름없다.

“춤추는 이 몸이 제 조국이에요.”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권력은 아무것도 구할 수 없어. …… 나는 내가 구할 거야.”
- 본문 중에서

그의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등단작인 <대관령 옛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조선 최초의 코스모폴리탄 댄서이자 월드스타였던 최승희, “21세기의 감각으로 20세기를 살았던” 불우한 예술가, 그녀는 시대를 앞서는 뜨거움으로 “너무 일찍” 빙점에 도달해버린 혁명가였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폭압적 시대상황 속에서 자신의 언어인 춤의 자유를 위해 오직 춤으로써 항거했던 여자, 자신의 몸과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춤 이외에는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았던 지독한 에고이스트, 그녀의 노마드적 감수성이 갈구했던 것은 그저 “자유인 춤, 자유인 예술, 자유인 영혼”으로서의 인간을 위한, 예술에 의한, 삶의 조건을 향한 지극한 열망이었다.

*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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