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의 저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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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백수의 저녁달



쓸쓸한 낮이거나 캄캄한 밤일 뿐이다.
어느덧 가을도 다 가서
골목 끝에서 군고구마 굽는 냄새가 여기까지 그윽하다.
일도 돈도 애인도 없는 백수는
이른 새벽 인력시장에 나갔다가
낭패만 보고 돌아왔다.
월세 낼 돈이 없어 그는 한낮에는 집을 비우고
캄캄해져서야 저녁달을 보며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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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집주인은 반지하 셋방 앞에서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악다구니를 써가며 월세 독촉을 한다.
내일 모레가 보름이어서
밀린 월세가 벌써 다섯달째다.
저렇게 달은 차고 기우는데,
그의 달은 늘 기울기만 한다.
잘 살게 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그는 투표했고,
살 수가 없어서 끝내 촛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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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꺼지자 들것이 없어서 그는
이삿짐을 들고 반지하 셋방으로 내려왔지만,
아무래도 더 밑으로, 더 캄캄한 곳으로
내려가야 할 모양이다.
어디까지 추락해야 끝이 보일 것인지,
저렇게 달은 보름달이 되어 가는데,
그의 달은 자꾸만 기울기만 한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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