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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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고양이는 인간에게 수수께끼로 남기로 작정했다” - 오이겐 스카사 바이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라고 쓴다.
그러자 정말로 고양이가 고마워졌다.
“고양이한테 인사도 못하고...”
동네를 떠나는 차안에서 아내는 말을 흐렸다.
결국 고양이한테 인사도 못하고 나는 이사를 했다.

이사를 오기 이틀 전 나는 카메라를 집에 두고
평소보다 많은 사료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정들었던 이 동네 고양이들에게 작별인사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노랑이네 식구들도, 그냥이네 식구들도, 멍이와 얌이도, 연립댁도 만나지 못했다.
나는 평소보다 세배쯤 되는 사료를 둥지 앞에 놓아두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발길을 돌렸다.
오는 길에 외출이네 삼색이와 턱시도가 있길래
녀석들을 불러 집에 있던 고양이 소시지까지 다 나눠주었다.
마지막으로, 둥지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영역을 얻지 못해 떠돌아다니는 깜냥이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1시간 넘게 헤맨 보람도 없이 이번에도 허탕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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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봄 산수유가 필 무렵 산수유 나무에 올라가 산수유꽃을 구경하던 희봉이.

본래의 둥지를 떠난 뒤로 깜냥이는 서너 번쯤 집앞을 찾아온 적이 있다.
정말 너무 배가 고파서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녀석은 집앞을 찾아와 낮은 울음으로 나를 부르곤 했다.
녀석에게만은 꼭 작별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이사를 오기 하루 전, 늦은 오후쯤이었을 거다.
이삿짐을 싸고 있는데, 바깥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싸던 짐을 팽개치고 밖으로 나가보니,
거짓말처럼 차밑에 깜냥이가 앉아 있었다.
혹시 녀석이 작별인사라도 하러 온 건가!
그럴 리 없을 테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사를 간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녀석에게 나는 사료에다 고양이캔까지 따주면서
한참이나 녀석이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녀석 참 많이도 컸다.
처음 만났을 때 조막만한 새끼였는데...
녀석을 만난 지도 벌써 1년 3개월이란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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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오기 하루 전날, 집앞을 찾아온 깜냥이. 녀석을 만난 지도 1년 3개월이 넘었다.

아직도 나는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달빛이 파랗게 골목을 비추던 밤이었다.
버려진 은갈색 소파에 한 마리의 어미 고양이가 다섯 마리의 아기 고양이와 함께 앉아 있었다.
하필이면 내가 사는 집 앞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달빛 속에서 파란 눈을 꿈벅이며 어미 품을 파고들던 다섯 마리의 아기 고양이!
오들오들 떨면서 “제발 우리를 헤치지 말아요!”라고 말하던 그 눈빛!
그것이 낯선 사람을 만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영하의 날씨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부주의로 여섯 마리의 고양이는 따뜻한 소파에서 도망을 치고 말았다.
다만 나는 녀석들이 귀여워 한 발짝 다가선 것뿐이지만,
고양이는 그 한 발짝만으로 어떤 위협과 두려움을 느꼈던 게 분명했다.
여섯 마리 고양이와 나의 대면은 그렇게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말하자면 채 1분도 안되는 시간!
나와 길고양이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달빛과 소파와 여섯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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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고양이 시절의 깜냥이. 나는 영역을 옮기기 전까지 녀석의 성장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날 이후 내 머릿속에는 자주 소파도 아닌 곳에 여섯 마리의 고양이가 오종종 앉아 있곤 했다.
녀석들을 다시 만난 것은 보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약속이 생겨 집을 나서는데,
집앞 컨테이너 공터에 어미 고양이와 다섯 마리 아기 고양이가 햇빛 속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삼색 어미 고양이의 모습은 보름 전에 만난 그 고양이가 틀림없었다.
나는 녀석들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컨테이너로 접근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녀석들은 나를 보자마자 컨테이너 밑으로 줄행랑을 쳤다.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고양이에게 너무 서둘러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건 대체로 마지막까지 유효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녀석들을 위해 고양이가 먹을만한 먹이를 내놓기 시작했다.
국물을 우려낸 멸치와 먹다 남은 탕수육과 살점이 남아 있는 생선 같은 것들...
이 때쯤 아기 고양이가 안쓰러워보였는지 세탁소에서도 사료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녀석들은 먹을 것을 내놓는 내가 낯설지 않은지 처음으로 접근을 허락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나와 녀석들의 모습을 처음 담은 것도 이날 부터였다.
녀석들을 만난 지 달포가 지나서야 녀석들은 내게 촬영을 허용한 것이다.
그렇게 만난 고양이가 바로 희봉이와 깜냥이, 추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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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과 소파와 6마리의 고양이. 1년 3개월 전 아내가 폰카로 찍었던 그 때의 사진. 밤이라서 희미하게 윤곽만 나와 있지만, 우리는 이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심심풀이삼아 녀석들을 찍어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녀석들은 너무도 용감하게 카메라 앞으로 다가왔고,
카메라 따위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대담한 행동을 했다.
나는 한발 더 녀석들에게 다가갔고,
녀석들 또한 한발 더 나에게 다가왔다.
특히 붙임성이 좋았던 희봉이는 내 발밑까지 다가와 몸을 부비거나
더러 렌즈가 더럽다며 혀로 렌즈를 닦아주기도 했다.
거의 6개월이 넘게 나는 희봉이와 깜냥이 남매의 성장과정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희봉이는 쥐 한 마리를 집앞에 놓아두고 사라졌다.
또 얼마 뒤 깜냥이조차 둥지를 떠나고 말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도 같았다.
이후 연립댁 멍이와 얌이를 만났고, 그냥이네 식구들과 노랑이네 식구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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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고양이 시절의 희봉이와 어미냥이었던 랑이. 희봉이는 영역을 떠났고, 랑이는 로드킬을 당했다.

<길고양이 보고서>를 연재하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희봉이와 깜냥이의 어미이자 나중에 또 노랑둥이 새끼를 낳았던 랑이는
어느 날 아침 로드킬을 당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희봉이가 떠난 뒤, 집앞을 찾아오기 시작했던 꼭잡이도
어느 날 아침 로드킬을 당해 참혹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번 겨울 노랑이네 새끼 중 한 마리도 싸늘한 주검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 내가 먹이를 주고 사진도 찍고, 가끔 시간을 보냈던 녀석들이었다.
마음 아픈 사건만 있었던 건 아니다.
발을 다친 절름발이 고양이는 어느 수의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조되어 입양되었다.
내가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이지 않는 구원의 손길도 늘어났다.
그동안 네티즌이 보내온 고양이 사료만도 20여 포대 이상,
고양이캔 10여 박스 정도.
이중 사료 10포대 정도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세탁소와 고양이 하우스에 전달하였고,
7포대 정도의 사료와 5박스 정도의 고양이캔은 길고양이 급식으로 사용되었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서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다.
욕설은 기본이고 변태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한국에서 길고양이 먹이를 주려면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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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오기 이틀 전에 만났던 외출이네 턱시도 녀석.

그래도 세상은 그렇게 야박한 것만은 아니어서
요즘에도 고양이 사료와 캔을 보내주겠다는 분들이 여러 명 대기중이다.
그러나 이사를 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사료가 있어 애써 나는 도움의 손길을 외면해 왔다.
아직은 이사한 곳에서 새로운 길고양이 친구를 사귀지도 못했다.
이사한 곳은 시골이고, 이곳은 도심보다 길고양이 밀도가 훨씬 낮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길고양이 보고서>도 훨씬 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년 3개월 <길고양이 보고서>를 통해 약 120여 꼭지의 기사를 블로그에 올렸다.
그동안 <길고양이 보고서>를 다녀간 사람만도 약 230만 명.
그러는 동안 배가 부를 정도로 욕도 먹었고, 과분할 정도의 사랑도 받았다.
익명의 칼자루가 휘두른 댓글 테러가 가한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한번은 모 방송국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길고양이와 나의 출연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블로그나 책과 달리 방송이 가져다주는 피해는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고양이를 잡아죽이려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어떤 빌미를 제공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신에 나는 한 출판사의 제의로 <길고양이 보고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시차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길고양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놓을 수는 없다.
일본이나 스페인, 그리스나 라오스처럼 고양이와 사람이 행복하게 어울리는 세상은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소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같은 기다림의 자세’로 그 불가능한 세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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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은 멍이의 마지막 모습.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라고 나는 한번 더 쓴다.
그것은 작별인사도 못한 고양이들에게 전하는 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나를 고양이의 나라로 인도했던 은갈색 소파와 달빛과 여섯 마리의 고양이와 바람의 야옹에게도
이 구름의 전언을 보낸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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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펴냄
길고양이와 함께한 1년 반의 기록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2007년 12월 초 집 앞에서 만난 다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와의 만남 이후 저자 이용한은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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