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 함께한 1년 반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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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와 함께 한 1년 반의 시간들



길고양이는 도심 생태계의 일원으로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한다. 2년 전 겨울, 거리에 버려진 소파에 다섯 마리 아기 고양이와 그 새끼들을 품에 안고 달빛 속에 처연하게 앉아 있던 어미 고양이의 모습을 본 뒤로 나는 녀석들에게 인간이 ‘고양이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양이가 사람을 보고 도망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다. 사람이 무섭고 위협적이며, ‘천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본이나 스페인, 그리스, 라오스, 태국 등과 같이 고양이의 천국에서는 고양이가 사람을 봐도 좀처럼 도망을 치지 않는다. 이 또한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거기서는 사람이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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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서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를 구경하던 희봉이의 눈빛, 잊을 수 없는.

고양이도 인간과 똑같이 지구의 생명체로 태어나 같은 지층연대를 살아가고 있다. 고양이는 외계의 생명도 마녀의 동물도 아닌 존재로 그저 우리 곁에 살아갈 뿐이다. 잘못이 있다면 하필 전세계에서 고양이가 가장 천대받는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태어났다는 것. 한국이란 곳에서 길고양이는 늘 두려움과 불안, 배고픔으로 떨고 있다. 사실 길고양이의 세계를 알기 전까지 나는 고양이가 두려움에 떨고 있든 말든 그냥 무관심했었다. 녀석들을 적으로 여기지도, 친구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녀석들이 한국이란 곳에서 더구나 도심이란 공간에서 얼마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며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 길고양이 친구가 된다는 것

한국에서 길고양이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험난한 과정을 요구한다. 워낙에 이 땅의 길고양이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어서 녀석들은 사람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내가 지난 해 여름 라오스를 여행할 때는 처음 보는 길고양이들을 어디서나 만져보고 안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결코 라오스가 아니다. 맨 먼저 나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으로 녀석들에게 접근했다. 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것을 문제 삼는 유일무이한 나라가 한국이므로 이건 매우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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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어쩐지 슬퍼 보이던 추냥이의 눈.

처음 만났던 랑이네 식구들은 지속적으로 한달 정도 먹이를 주었더니 그제서야 마음을 열고 내게로 다가왔다. 얌이와 멍이는 경계심이 심해서 내가 1미터 앞까지 접근하는데 두어 달이나 걸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냥이네 여섯 식구는 그냥이를 제외하곤 5개월 넘게 먹이를 주었는데도 1미터 이내의 접근을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반면 노랑새댁네 식구들은 먹이를 준 지 이틀 만에 마음을 열고, 내 앞에서 뒹굴고 심지어 내 무릎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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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에 서성이던 희봉이를 구경하는 아이들.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코를 대거나 볼을 부비고 인사하는 녀석들도 10여 마리가 넘었다. 희봉이와 깜냥이는 늘 집 앞을 찾아왔던 탓에 7개월 이상 꾸준하게 만났다. 그래서 희봉이와 깜냥이가 영역을 떠났을 때 마치 나는 집고양이가 집을 나간 것처럼 허전했다. 얌이와 멍이도 9개월 동안이나 지켜보았고, 그냥이네 식구들은 약 6개월, 노랑새댁네 식구들은 약 5개월 동안 먹이를 주고 보살폈다.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몇몇 아이들은 나를 ‘고양이 아저씨’라 불렀고, 몇몇 고양이를 혐오하는 이웃에게는 ‘고양이에 미친 놈’으로 찍혔다. 그렇게 1년 반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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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올라가 해바라기를 하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달려오던 멍이와 얌이.

* 신뢰받지 않고는 신뢰할만한 고양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길고양이와 친해지려면 지속적인 먹이주기와 관심이 필요하다. 일단 녀석들이 마음을 열고 경계심을 풀고 나면 상대방에게 ‘연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연대감, 그러니까 일종의 신뢰감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내가 찍은 길고양이 사진을 보고 어떻게 찍었느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 더러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들을 우연히 찍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지속적으로 한 가족이나 아기 고양이의 성장과정, 놀이, 행동, 사건을 찍으려면 연대감이 형성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길고양이의 자잘한 일상과 적나라한 모습은 연대감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신뢰받지 않고는 신뢰할만한 고양이 사진도 나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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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주택 철망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시절의 얌이.

연대감만큼이나 인내심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희봉이’가 산수유나무에 올라가 산수유꽃구경을 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나는 무려 서너 시간을 산수유나무 아래서 기다렸다. 담장에 올라 단풍 구경을 하던 멍이 사진 또한 두세 시간 이상의 기다림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노랑이네 가족 1개월의 기록>이나 <아기 고양이 길거리 적응기> 등은 약 1개월 동안의 지속적인 관찰을 필요로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길고양이가 순간순간의 행복과 생존의 본능으로 하루하루 힘겨운 묘생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년 반이나 한 동네에서 길고양이의 성장과정을 꾸준히 지켜보고 기록하며 먹이를 주고 보살핀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했다. 누군가는 할 일이 없어 별짓을 다 하는군, 이라고 말할 테고, 누군가는 미친 놈, 이라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나도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는 거다. 길고양이와 함께 한 1년 반의 기록은 최근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란 제목을 달고 책으로 출간되었다. 블로그에 올린 120여 꼭지 가운데 절반 정도가 여기에 실렸고, 블로그에 올리지 않은 <길고양이 영역지도>와 가장 처음 랑이네 가족을 만나 친해지기까지의 과정이 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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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내 신발과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던 노랑이.

내가 아는 한 길고양이는 결코 위협적인 ‘떠돌이 전사’나 음습한 ‘악령의 동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쌍하고 천대받고 멸시당하지만,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길거리 이웃이었다. 지속적으로 손을 내민다면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심장이 뜨겁고 늘 정에 굶주린 약자일 따름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고양이가 태어나거나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냉대와 학대를 받고자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http://gurum.tistory.com/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상세보기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펴냄
길고양이와 함께한 1년 반의 기록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2007년 12월 초 집 앞에서 만난 다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와의 만남 이후 저자 이용한은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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