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가 꿈꾸는 식사?

|

길고양이가 꿈꾸는 식사?



인상파 화가인 프랑스의 마네가 그린 <풀밭 위의 식사>란 그림이 있다.
풀밭 위에 나체의 여인 2명과 정장의 신사 2명이 식사를 끝내고 앉아 있는 이 그림을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피크닉 가서 사랑하는 사람과 야외의 풀밭에 둘러앉아 먹는 평화로운 식사.
(그림처럼 ‘나체’가 되면 풍기문란죄가 되겠지만....)

길고양이도 이런 평화로운 식사를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길고양이에게 이런 ‘평화로운 식사’의 꿈을 제공하지 못한다.
쫓기고, 눈치보고, 경계하고, 도망치고....
어쩌면 길고양이에게 평화로운 식사는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장난 좀 치지 마쇼... 이건 내가 꿈꾸는 식사가 아니란 말이오.

그 불가능한 꿈을 가능한 현실로 만들어보기 위해
오늘 나는 길고양이 ‘바람이’에게 장난을 좀 쳤다.
평소에 먹이그릇을 놓아주던 장소를
마당 한가운데 풀밭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 평소에 놓아주던 곳이 아닌 마당 한가운데 먹이그릇을 갖다놓자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먹이그릇을 마당 한가운데 갖다놓자, 눈을 감고 어떻게 할까 고민에 빠진 바람이.

“아 진짜, 먹을 걸 갖고 장난을 치냐...”
딱 그런 표정이었다.
먹이그릇을 옮겨놓은 것에는 또다른 의도도 있었다.
평소에 경계심이 지나치게 많아서 언제나 테라스 밑 아니면 위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지라
녀석에게 마당도 안전한 장소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디어 결단을 내린 바람이. 조심스럽게 마당을 가로질러 먹이그릇을 향해 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모든 의도가 의도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바람이 녀석은 한동안 어떻게 할까 고민스러운 얼굴로 테라스 아래 쭈그려앉아 있더니
이내 체념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다.
녀석은 사방이 탁 트인 마당 한가운데가 매우 위험한 장소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눈을 감고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던 바람이는
한참 후에야 결단을 내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이, 진짜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일단 배부터 채우고 보자고...
해서 바람이는 테라스 밑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 마당에 발을 내딛었다.
물론 멀찍이서 지켜보는 내 눈치를 살살 보면서...
녀석은 한발한발 마당 한가운데 놓인 먹이그릇을 향해 다가갔다.
무슨 사냥하는 것도 아닌데, 녀석의 걸음은
매우 신중했고, 매우 조심스러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막상 먹이를 앞에 두자 녀석은 게걸스럽게 앉은자리에서 그것을 다 해치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드디어 먹이그릇에 당도한 녀석,
“괜히 쫄았네~” 하는 표정으로 흘끔 나를 한번 돌아보고는
평소처럼 걸신들린듯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라도 무언가가 녀석의 평화로운 식사를 방해할까봐
공중에다 <고양이, 풀밭 위의 식사중>이란 손팻말이라도 걸어두고 싶었다.
잠깐씩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는 것 빼고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녀석의 식사 풍경이었다.
나의 장난기에 놀아난 감도 없지 않지만,
보아라, 이 얼마나 보기 좋은 풍경이냐!

사용자 삽입 이미지
풀밭 위의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테라스를 향해 걸어가는 바람이.

오늘의 식사에 대해 바람이의 짤막한 인터뷰를 들어보았다.

나: 풀밭 위의 식사, 괜찮지 않았나?

바람이: 그건 니 생각이고...색다른 경험이긴 했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이랄까. 다시는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게 길고양이가 꿈꾸는 식사라고? 천만의 야옹이다. 내가 꿈꾸는 건 이를테면 이런 거다. 여자 친묘랑 아침에 사료 뷔페 가서 저녁에 나오는 거.

사용자 삽입 이미지

* http://gurum.tistory.com/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상세보기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펴냄
길고양이와 함께한 1년 반의 기록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2007년 12월 초 집 앞에서 만난 다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와의 만남 이후 저자 이용한은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이...
Trackback 0 And Comment 25
  1. 이전 댓글 더보기
  2. 귀여워~ 2009.09.04 12:31 address edit & del reply

    여자 친묘라니, 멘트도 센스가 넘치시는데요? ^^
    바람이 너무 귀여워요.
    -
    저도 길냥이 출신 고양이 한 마리와, 입양해 온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는 입장에서 관찰해 보면
    냥 아가들이 원체 경계심이 많은데다가, 특히 길냥이(출신)가 경계심이 대단하지요.
    이제 길냥 출신 아가는 2년 넘게 저랑 동고동락한 사이라 절 완전히 신뢰하지만
    친해지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다구요 -0-;
    처음에 데려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아깽이 녀석이
    침대맡에다가만 그릇을 놓아도 절대 안 먹고
    "그래 그래 알았어~ 맘이 불편하다 이거지?"하고 침대 안쪽으로 슥슥 밀어 넣으면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와서 먹고...
    ^^ 바람이 보니까 불현듯 그때 생각이 나는 거 있죠.

  3. 장수제 2009.09.04 12:35 address edit & del reply

    항상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

    바람이 녀석, 밥 한끼먹으려고 고생 많이 했네요.

    근데 길고냥에게 경계심을 없에주는 건,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안좋을수도 있다고 봅니다. 댁의 마당만을 편한 곳으로 인식하면야 문제 없겠지만, 자칫 전반적인 경계심이 흐트러지면 오히려 치명적일 수 있을 듯.

  4. 두비두밥 2009.09.04 13:35 address edit & del reply

    바람이 날이 갈수록 잘생겨지네요. 내 스타일이야~
    얼른 여자친묘 데리고 인사왔으면 좋겠어요.

  5. 살쾡이 2009.09.04 13:56 address edit & del reply

    후아.. 무슨 길냥이가 짬타이거 수준으로 살이 쪘군요. 사료만으로 저렇게 되긴 힘든데..

  6. 월영인 2009.09.04 15:06 address edit & del reply

    저 냉정하고 차가운녀석... 쉽지않아...

  7. 그냥저냥 2009.09.04 15:32 address edit & del reply

    아파트 화단에 참치캔을 부어줬더니 큰 덩어리 하나 물고서는 으슥한 곳에 가서 먹더라구요..-_-
    길냥이들의 경계심이란...

  8. 천랑 2009.09.04 16:08 address edit & del reply

    바람이 젤리 너무 귀엽네요~먹이그릇을 향해 조심스럽게 내딛는 모습이, 마치 즐거운동물의세계에서 보던 야생맹수의 근엄한 걸음같아요 ㅋㅋ

  9. 멍멍냥 2009.09.04 16:38 address edit & del reply

    바람이가 점점 고와지고 있네요. ㅎㅎ

  10. Favicon of https://9bong.tistory.com BlogIcon d토삼b 2009.09.04 17:2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사진상에 보여지는 환경은 글케 나빠 보이지는 않네요....야옹이 귀여워요..d토삼b

  11. BlogIcon 나비 2009.09.04 18:24 address edit & del reply

    꾸준히 사료 급식을 받아서인지 바람이가 많이 후덕 하네요~^^
    모든 길냥이들이 저 몸매를 가졌으면 하고 바래 봅니다...

  12. 미리내 2009.09.04 21:08 address edit & del reply

    야생화 곁에서 큰 고민에 빠진 바람이의 표정 너무 이뻐요~``

  13. dhrl 2009.09.05 00:16 address edit & del reply

    오렌지 캣!
    부숭부숭한 너구리 꼬리
    참말로 귀엽

  14. 유스티나 2009.09.05 00:51 address edit & del reply

    바람이 너무 귀여워요~~~ 햇빛 비치는 풀밭위에 있으니 미모가 더 빛나네요^^

  15.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9.05 09:22 address edit & del reply

    맨 위에 사진을 보니까 전에 고양이가 했던 행동들이 생각나는군요
    말랑한 발바닥에 물이라도 묻으면 털어내던 행동요..ㅎ
    어찌나 깔끔을 떠는지 한발 내딛고 발 털고.. 물이 싫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바람이에게도 여자 친묘가 생겼음 좋겠어요
    그러면 구름님 사료값 출혈이 심하겠다 ㅎ

  16. 2009.09.05 13:53 address edit & del reply

    바람이 너무 이쁘게 생겼어요..ㅎㅎ
    보고 또 보고~
    이제나 저제나 바람이 소식이 넘 기다려집니다~

  17. 네임 2009.09.09 17:29 address edit & del reply

    ㅎㅎ 길냥이들에게 한끼의 소중한 식사를 주셨네요 넘 귀여워여

  18. 루루 2009.09.10 12:29 address edit & del reply

    아파트 근처에 길고양이가 있어, 좀 얼쩡거리던 곳(아파트 화단 구석) 에 먹이(건조사료 물에 불린것)를 놓아 두었어요, 근데 오늘 아침 보니 날파리만 웰웽~ 먹이를 계속 주고 싶어도 어딨는지도 모르겠고, 쥐나 벌레도 걱정되고,, 쉬운 일이 아니네요 ㅠㅠ

  19. 별아 2009.09.12 10:02 address edit & del reply

    배불리 먹고 돌아서는 뒷 모습이 늠름하군요. 저 발바닥도... 우웅 한번 안아봤으면...
    (바람이의 말);; 쥔장님 앞으론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마쇼!! 소풍외식이라고 미리 말씀해주시던가!!

  20. spica 2009.09.27 22:15 address edit & del reply

    책 재밌게 보았습니다. 이사가셨다고 해서 서운했는데 이사 간 곳에 새로는 길냥이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줄 처음 알았네요. 저도 예전에 신림동에서 자취하하던 시절에 동네 깜냥이에게 규칙적으로 먹이를 제공했었는데... 그 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넘이 영역을 뺏기는 바람에 인사도 못하고 이사를 하게되었는데 이사하는 날 집 뒤에 야산 중턱에 까만 고양이와 다른 두어마리 고양이가 지나가는게 보이더라구요. 자취하는 집 앞에 와서 야옹거리던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거 같네요.

  21. 냥이팬 2009.09.28 11:19 address edit & del reply

    숲속에서 만나면 호랑이인줄로 착각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