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그랜드캐니언, 바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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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그랜드캐니언, 바얀작



바얀작 언덕, 하늘, 그리고 구름.


고비는 그 자체로 ‘모래땅’, ‘사막’이란 뜻이다.

그러니 ‘고비사막’이란 말은 의미의 중첩일 뿐이다.

흔히 고비에서 우리가 사막이라고 부르는

모래언덕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는 황량한 벌판이거나

성긴 풀이 듬성듬성한 모래땅이다.



벌판의 오아시스에서 한 원주민이 우물물을 길어 가축에게 먹이고 있다.


고비의 모래언덕에서 가장 가까운

홍고린 엘스를 떠나 이제 나는 울란바토르를 향해 간다.

그동안 사막까지 나는 3일간 달려왔고,

3일간 달려갈 것이다.

또다시 계속되는 모래땅, 허허벌판, 황무지,

도대체, 으악, 어디까지

벌판을 달려야 하는 걸까.



오아시스의 우물과 구유통. 오토바이를 탄 사내.


홍고린 엘스에서 2시간을 달려

오아시스를 만났다.

사하라의 오아시스처럼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벌판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고작해야 그곳에는 샘이 솟는 우물이 한 채

있을 뿐이었고,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을 가축에게 먹이기 위해

긴 구유통을 놓았을 뿐이다.


벌판의 오아시스에서 만난 아이들.


이 곳의 오아시스 우물은 사방

수십 리에 걸쳐 사는 원주민과 가축들의 생명수이다.

한 양치기가 우물물을 길어 구유에 붓자

주변에 있던 수많은 염소떼와 양떼가 몰려와

목을 축인다.

누군가는 오아시스의 샘물이 무슨 대단한 구경이냐 하겠지만,

인근의 원주민과 아이들의 상당수는

매일같이 이 우물 주변에 나와

지나가는 여행자를 상대로 장사를 한다.



몽골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리는 바얀작 풍경.


그들이 파는 것은 돌멩이이거나 돌조각상들이다.

여행자의 눈길을 끌기에는 어딘가 좀 부족한 듯한 돌조각들.

아이들은 불쌍한 표정으로 오아시스에 내린

여행자를 바라본다.

대부분은 이 아이들의 동정심 유발이 물건보다 낫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여행자들은

이 아이들에게 돈을 주거나 먹을 것을 나눠주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도 아이들에게 아껴먹던 비상식량을

다 털어주고 말았다.



바얀작의 붉은 계곡(위)과 계곡 너머로 펼쳐진 초원과 지평선(아래). 


오아시스를 떠나 다시 1시간을 달리자

흙빛이 붉은빛깔을 띠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웅장하고 드넓은 계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가 바로 몽골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바얀작(Bayanzag)이다.

협곡의 빛깔이며, 분위기가 흡사 그랜드캐니언을 닮긴 닮았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몽골의 독특한 풍경이고,

몽골의 계곡 풍경일 뿐이다.



바얀작 꼭대기에 들어선 '어버'가 깃발을 날리고 있다.


바얀작 계곡의 꼭대기 쯤엔

어김없이 신성한 ‘어버’가 흰 깃발을 펄럭이며

계곡을 굽어본다.

황토빛 황무지와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이

바얀작 계곡 너머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바얀작 계곡을 벗어난 차는

저녁이 다돼 바얀작 마을에 도착했다.

여행자를 위한 게르 몇 채가 모여 있는

모래벌판의 게르촌.



바얀작 마을의 아침. 한 아이가 초원의 화장실을 다녀오고 있다.


게르에서 자고, 게르에서 일어나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울 정도가 되었다.

저녁이 되면서

눈부신 황혼이 지평선에 걸쳐 있다.

초원의 황혼은 유난히 붉고 노랗다.

마치 그것은 초원에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워보인다.



바얀작에서의 실루엣 찍기와 지평선에서의 점프사진.


일행 중 누군가는 일몰을 배경으로

실루엣 사진도 찍고,

누군가는 물고기처럼 뛰어올랐으며,

누군가는 명상에 잠겼다.

누군가는 하늘에 꽃처럼 피어난 초저녁별을 구경하였고,

누군가는 염소처럼 초원을 돌아다녔다.

낙타 울음 소리가 길게길게 들려오는 초원의 밤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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