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워 시골냥이 물마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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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복절도 시골냥이마시는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개울가 고양이들을 만나러 간다.
그곳에 캣맘이 돌보는 길고양이 가족이 있는데,
어느덧 나도 녀석들에게 조금씩 사료를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이곳 가족의 수장인 어미 고양이는
곧 새끼를 낳으려는 건지, 새끼를 낳은지 얼마 안되는 건지
배가 부를대로 불러서
먹고 돌아서는가 하면 다시 사료를 찾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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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봐요. 고양이 물 마시는 거 첨봐요?"

배를 채우고 나면 어미가 곧바로 자리를 뜨는 바람에
언제나 개울가 집 주변에는 3마리의 아기 고양이만 남는다.
이 녀석들 밥을 먹고 나면 무슨 통과의례처럼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식이 있다.
물 마시기다.
그런데 이 녀석들 물을 마실 때는 꼭 급식이 나오는 개울가 집이 아니라
그 뒷집인 주황대문집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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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물맛 좋다. 역시 물맛은 빗물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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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평소에는 빈집이나 다름없는데, 가끔씩 집앞의 깨밭, 콩밭 수확과 타작을 위해
집주인이 들렀다 가곤 한다.
3마리의 아기 고양이 중 노랑이와 고등어무늬 막둥이만이 언제나
이 집에서 식수를 해결한다.
녀석들은 집주인이 있나 없나를 먼저 살핀 뒤,
집이 비어 있으면 마치 제집 드나들듯 대문 아랫구멍으로 빠져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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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맛 좋은 개울가 냥이네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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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마당에는 고추밭이 있고,
그 옆에는 물조리개 하나, 주전자 하나가 놓여 있는데,
녀석들의 물그릇은 바로 물조리개와 주전자다.
거기에 고인 빗물을 마시는 거다.
며칠 녀석들을 살펴보니 각각 고등어 막둥이는 주전자를,
노랑이는 물조리개를 택해 물을 마시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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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고! 허리야, 다리야! 세상에 쉬운 게 없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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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밑으로 들어가 각자 주전자와 물조리개 앞을 떡하니 차지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정작 웃긴 건 그 다음이었다.
두 녀석이 하나씩 차지하고 물을 마시는데,
주전자 속으로 고개를 집어넣은 모습이나 물조리개 속으로 고개를 들이민 녀석이나
그 뒷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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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부족 국가에서 빗물 재활용하는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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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를 차지하고 물을 마시던 고등어 막둥이 녀석이 물 한 모금 마시고 뒤를 돌아볼 때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서 카메라까지 흔들리고 말았다.
평정심을 되찾고 녀석들을 계속 지켜보는데,
이번에는 노랑이 녀석이 물조리개에서 고개를 빼더니
메롱, 하는 자세로 혀를 낼름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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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제 슬슬, 자리를 옮겨 낮잠이나 자 볼까나!"

고등어 막둥이가 자리를 뜨고 나서도 노랑이는 아직 목이 마르다는 듯
물조리개에 고개를 집어넣고 물을 마시다가
더 이상 고개를 집어넣어도 수면에 닿지 않게 되자
마당 고추밭 너머 수돗가 물통으로 자리를 옮겨 나머지 갈증을 풀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 뚝 떼고
노랑이는 주황대문을 빠져나온다.
밥만 먹고 나면 하루의 의식처럼 녀석들은 그 웃음 나는 의식을 치러내고 있는 것이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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