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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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거 아냐~"

 

길고양이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그들의 사회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때때로 생각보다 단순하다.
이 세상의 모든 고양이에게는 영역이 있고,
그 영역을 기반으로 고양이 사회의 질서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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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요즘은 왜 이케 뜸해요. 자주 좀 오세요."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고양이의 영역은 유연한 편이다.
이를테면 순둥이와 당돌이가 사는 영역은
동네 왕초고양이부터 성깔 있는 승냥이, 어미고양이 여울이까지
서로가 넘나들고 교류하고 싸우는 무대가 되곤 한다.
최근 이 영역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순둥이가 본격적으로 아기고양이를 먹이원정에 앞세우면서
순둥이와 당돌이의 공동영역이었던 이곳은
순둥이와 아기고양이의 영역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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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순둥이랑 오붓하게 식사나 해 볼까나...어이차..."

“변하고 있다”는 말은 지금 그런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얘기다.
순둥이의 아기고양이는 외모는 예쁘장한 것이
성격은 꽤나 당찬 편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골목에 나타나자 순둥이와 아기고양이는
분주하게 골목을 오가며 이야옹거렸다.
언제 봤다고 아기고양이는 내 바로 앞까지 달려와 나와 눈을 맞추며
어서 먹이를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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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사진 그만 찍고 사료나 내려놓고 가세요."

과거 당돌이가 하던 행동을 녀석이 하고 있었다.
(이 녀석의 아빠는 이곳을 자주 찾는 왕초고양이 흰노랑이로 보인다)
심지어 녀석은 맛뵈기로 발라당을 두어 번 정도 하고는
곧장 내 앞으로 다가와 냐앙~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건 마치 자 발라당도 했으니, 됐지? 어서 내놔, 하는 것과 같았다.
그 때였다.
여울이네 영역 쪽에 있던 당돌이가 담을 타 넘어 이쪽으로 왔다.
당돌이가 골목으로 풀쩍 내려뛰자
부리나케 달려나간 쪽은 아기고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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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 저리 가, 여긴 우리 집이라구..."

그런데 이 녀석 당돌이 앞으로 바짝 다가서 하악을 날리는 게 아닌가.
등짝의 털까지 바짝 세우고
마치 오래 전 당돌이가 봉달이에게 했던 맹랑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때 당돌이의 표정은 참으로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는 거 아냐~!"
나라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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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엉, 정말로 가네..."

내가 먹이를 내려놓은 뒤에도
녀석은 당돌이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채 또 한번 하악거렸다.
불쌍한 당돌이 녀석!
누나인 여울이네 영역에 가서도 조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동생의 아가에게마저 홀대를 받는 거였다.
그저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마음의 상처를 입어서인지
당돌이 녀석은 공터에서 정미소 지붕으로 뛰어올라가
한참이나 선 채로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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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거 아냐~! 귀여우니까 내가 참는다..."

그래도 어미 까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순둥이의 든든한 보디가드 노릇을 해온 건 당돌이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외톨냥이가 된 것인지.
사료나 먹고 힘내라고
나는 당돌이에게 따로 밥상을 차려주고 왔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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