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를 사랑한 서울의 카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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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를 사랑한 서울의 카페들

“사람에게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제인 구달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길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씩 호감으로 옮겨가고 있다. 5년 전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라는 책을 낼 때만 해도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사뭇 부정적이고 냉담했다. 여전히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하고 길고양이를 돌보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최근에는 길고양이 급식소를 함께 운영하는 카페도 여기저기 생겨났고, 아예 길고양이와 유기묘를 들여놓은 고양이 카페도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리스나 스페인, 터키, 모로코, 일본과 대만, 북미, 남미, 심지어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우리는 한참이나 뒤쳐져 있다.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이 유명한 발언은 우리가 지금도 새겨들어야 할 뼈아픈 충고인 것이다.

 

 

<연남살롱> 혹은 <야옹살롱>

서울 연남동 주택가에 자리한 <연남살롱>.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 카페가 아니라 살롱이다. 그 옛날 유럽에서 예술가들이 주로 작품 구상을 하거나 뒷담화를 즐기던 곳. 연남살롱은 그냥 커피 파는 카페라기보다는 누군가와 토론하고 독서하고 소통하고 교감하고 사색하는 곳이다. 커뮤니티 카페답게 연남살롱 서가에는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고, 이 미니 도서관은 손님들을 위한 무료 도서관 역할도 하고 있다. 대여료도 없고 반납기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이곳에서는 독서 나눔을 위해 책을 기증받기도 하는데, 얼마 전 나도 고양이책 한권을 기증한 적이 있다.

 

 

사실 내가 연남살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연남살롱에서 운영하는 야옹살롱 때문이다. 고양이들이 야옹살롱에 모여 지성과 교양을 나누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이곳이 동네 길고양이들의 급식소이자 쉼터 노릇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이곳을 드나드는 길고양이는 예닐곱 마리 정도. 내가 들렀을 때는 젖소냥 한 마리가 야옹살롱에 홀로 앉아 있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터줏대감처럼 자주 오는 단골이라고 했다. 녀석은 내게 한참이나 포즈를 취해 주더니, 모델 노릇하기 힘들다며 연거푸 물을 마셨다.

 

 

주인은 이곳을 찾는 고양이들이 추울까봐 의자에 바람막이 커튼을 달고 방석을 놓아 따뜻한 고양이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의자 옆에는 어김없이 사료 한 그릇과 물 한 그릇. 지나가는 고양이 아무나 와서 먹어도 좋다. 길고양이에 대한 연남살롱의 따뜻한 마음은 손님들에게도 나눔의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길고양이를 돕는 방법은 간단하다. 집에서 고양이가 먹다 남은 사료나 간식을 가져오면 주인장은 커피 한잔으로 보답한다. 길고양이도 돕고, 커피도 마시고. 살롱 안에서 파는 간식(젤리와 땅콩)을 사먹어도 수익금 전액이 길고양이 사료값에 보태진다. 이곳의 길고양이 사랑이 파문처럼 번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귓속말: 사실 공개적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이곳이 연남동 고양이들에게 널리 알려져 정기적으로 <야옹살롱>에서 ‘연남동 길고양이 집회’가 열렸으면 좋겠다.)

 

홍대 카페 <로닌>의 밤손님들

날이 저물어 홍대 카페 골목이 형형색색 불빛으로 물들 때쯤 이제 막 문을 연 카페 <로닌>에는 성급한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낮에는 움츠려 있다가 밤이 되면 나타나는 밤손님들. 밤 고양이들이다. 내가 로닌 앞을 지나고 있을 때, 두 마리의 손님이 카페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삼색이 손님은 안절부절 화단 위를 오르내렸고, 고등어 손님은 출입구 앞에 용감하게 앉아 있었다. 홍대 카페 골목 한복판에 고양이가 있을 줄이야. 나는 녀석들의 동정을 살피고자 멀찌감치 비켜나 지켜보기로 했다.

이윽고 삼색이 손님이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듯 앞발을 높이 들어 창문에 올리고 카페 안을 들여다보았다. 저러다 문도 두드리겠네. 설마했더니 이 녀석 앞발을 쿵쿵 두 번이나 노크하듯 두들겼다. 그건 누가 봐도 ‘밥 내놔라’ 하는 시위였다. 잠시 후 카페 안에서 긴 머리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는 사료 한 그릇. 그는 화단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바닥의 밥그릇에 그것을 옮겨 담았다. 사료를 내놓자마자 삼색이는 허겁지겁 밥그릇에 고개를 파묻었다. 고등어가 옆에서 입을 들이밀자 앞발로 툭툭 밀어내기도 하면서 삼색이는 한참이나 사료그릇을 독차지했다. 눈치를 보던 고등어도 더는 못 참겠다며 사료그릇에 고개를 쳐박았다. 아그작아그작 사료 씹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알고 보니 긴 머리 남자는 이곳의 사장님이었다. 그는 4년째 카페 앞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겨울이면 10~14마리, 여름이면 14마리 이상의 고양이가 이곳으로 밥을 먹으러 온단다. 방금 밥을 먹었던 녀석들이 빠지면, 다른 그룹 녀석들이, 그리고 그 녀석들이 빠지면 또 다른 녀석들이 교대로 밥을 먹고 간단다. 날이 추워 카모마일이나 한잔 하려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출입구 쪽으로 총총총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왔다. 좀 나이가 든 고등어 녀석이었다. 녀석은 문 앞에 이르러 ‘이리 오너라’ 하는 자세로 주인장을 불렀다. 긴 머리 사장님이 문을 열자 녀석은 마치 자기집이라도 되는 양 안으로 들어섰다.

“얘는 문만 열리면 여기 들어와 쉬었다 가요. 얼마 전에 누구랑 싸웠는지 귀 밑이 다쳐서 요즘 치료를 해주고 있는 중이에요.” 사장님은 기다렸다는 듯 녀석을 앉히고 소독약을 가져와 슥슥 발라주었다. 녀석 또한 자신을 치료해 주는 걸 알고 있는지 소독약을 바르는 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녀석이 마초예요. 일곱 살. 4년 전 나와 첫 인연을 맺은 고양이에요. 손님 중엔 순전히 이 녀석을 보러 오는 팬도 있어요.” 치료를 마친 마초는 사장님 무릎에 올라가 잠시 눈을 붙였다.

 

 

여름이면 카페 테라스 문을 열어놓기 때문에 손님이 없을 때는 고양이들이 테라스 의자를 하나씩 차지할 때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이 골목에는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분들이 많아요. 물론 쥐약 놓고 학대하는 사람도 있죠. 가장 큰 문제는 로드킬이에요. 여기서 해마다 몇 마리의 고양이가 죽어나가요. 안타깝죠.” 사장님 무릎 위에서 한참을 엎드려 있던 마초는 사료를 몇 입 먹는 시늉을 하더니 문을 열어달라고 냥냥거렸다. 문이 열리자 녀석은 발걸음도 가볍게 휘황한 불빛 속으로 사라졌다.

 

길고양이 카페 <나는 고양이>

2012년 8월 어느 날. 길고양이 카페 <나는 고양이> 앞에 누군가 내장 같은 것을 버리고 갔다. 카페를 운영하는 엄숙용 씨는 무심코 그것을 집어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그것은 누군가 고의로 잘라낸 태반과 아기고양이 사체였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하루 전날 카페 앞 길고양이용 사료 그릇에 누군가 배설물을 투척하고 급기야 밥그릇, 물그릇을 없애버리더니 이런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불안에 떨던 엄씨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관할 경찰서 게시판에도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경찰은 이 사건의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수사는 오리무중이다.

 

손님이 없으면 고양이도 심란해져서 <나는 고양이>의 두 마리 노랑이는 하염없이 출입문 쪽을 바라보곤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길고양이에 대해 유난히 적대적이고 폭력적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고양이 학대사건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예다. 고층에서 고양이를 집어던지고, 고양이를 매달아 불태우고, 살아 있는 고양이의 몸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는가 하면 길고양이 밥을 주던 캣맘을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봐도 길고양이 수난이 우리나라처럼 심한 나라가 없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길고양이 보호를 부르짖는 애묘인의 목소리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봉천동에 위치한 <나는 고양이>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고양이 카페와는 사뭇 다른 길고양이․유기묘 카페다. 여기엔 비싼 품종묘도 없고, 고급스러운 실내 디자인과 안락한 시설도 없다. 이곳에는 유기묘 세 마리, 길고양이 여덟 마리, 모두 열한 마리의 고양이가 있을 뿐이다. 현재 이곳에 있는 고양이들은 누군가에게 버려진 고양이거나 여러 번 파양된 고양이, 길에서 다쳐 구조해온 사연 많은 고양이들이다. 배보다 사랑이 고프고 정에 굶주린 아이들이다.

 

 

정에 굶주린 아이들답게 녀석들은 손님이 많을 때는 신이 나서 장난을 치고 활발하게 노는 모습으로 손님 접대를 한다. 그러나 손님이 없을 때면 녀석들의 표정도 시무룩해진다. 하필이면 내가 찾아간 날 손님이 없어서 그랬는지, 노랑이 두 마리가 카운터 앞에 앉아 하염없이 손님이 들어오는 출입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건 말이 필요 없는 기다림의 자세였다. 차갑고 힘들게 살았던 녀석들일수록 사람의 품이 얼마나 따뜻한지,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안다. 기왕에 고양이 카페를 찾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나는 고양이>에 들러보길 바란다. 당신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린 고양이들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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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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