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의 눈물겨운 모성애
“이옹! 이옹!”
피씨방 골목길 주택가 담장 너머로
어미냥을 부르는 아기냥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기자
누군가 버린 스티로폼 박스 뒤에서
아기냥 한 마리가 애타게 울고 있다.
닷새쯤 전에도 만난 적 있는 주황색 고양이다.
틀림없이 그 녀석이다.
그때도 녀석은 애타게 어미냥을 부르며
‘이옹’거리고 있었다.
그날은 잠시 뒤 어미가 나타나 아기냥을 데리고
담장 뒤의 화단 수풀로 사라졌다.
살금살금 어미냥의 뒤를 밟아 따라가보니
화단에 버려진 의자와 통나무를 뒤덮은 수풀 속에서
모두 다섯 마리의 아기냥이 둥지에서 나와
어미를 향해 냥냥거리고 있었다.
한 마리는 삼색냥이었고, 나머지 네 마리는 모두 주황색 아기냥이었다.
녀석들은 이제 고작해야 한달도 안되었거나
겨우 한달쯤 된 젖냥이로 보였다.
그날은 카메라가 없어서 동정만 살피다
오늘은 이렇게 녀석들을 만나러 피씨방 골목까지 원정을 왔다.
“이옹! 이옹!”
골목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폐가구 더미 속에서도
어미냥을 부르는 아기냥 소리가 요란하다.
양쪽에서 어미냥을 찾느라 난리가 났다.
“밤새 저래 울더니, 아직도 저러고 있네!”
유모차를 끌고 나온 할머니 한분이 시끄럽다는 듯 한마디 내뱉는다.
건너편 폐가구 속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도 주황색 아기냥 한 마리가 잔뜩 웅크리고 있다.
역시 닷새 전 만났던 그 녀석이 분명해 보인다.
할머니의 말대로라면 어미는 지난 밤에 먹이를 구하러 나가
오후 3시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내가 녀석을 찍기 위해 두세 컷 찰칵거리자
녀석은 수상한 낌새를 채고
곧바로 뒷골목으로 줄행랑을 놓는다.
앗, 그런데 한 마리가 폐가구 속에 더 있었는지
도망치는 녀석이 두 녀석이다.
두 녀석은 꽁지가 빠져라 달아난다.
분위기가 심상치않음을 눈치챘는지
건너편 스티로폼 뒤에서 울던 녀석도 갑자기 잠잠해졌다.
한동안 골목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10여 분의 시간이 흐르자 또다시
담장 뒤에서 ‘이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들의 둥지인 뒷골목 화단의 수풀더미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녀석들이 배가 고파 우는 것같아
나는 집으로 되돌아가 고양이캔을 가져오려고 발길을 돌렸다.
세번의 골목길을 돌아 차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원룸주택 앞에서 음식물 쓰레기통을 기웃거리는 주황색 고양이가 보였다.
아무래도 닷새 전에 보았던 다섯 마리 아기냥의 어미가 분명해 보였다.
숨죽이며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미는 음식물 분리수거통을 맴돌며 킁킁 냄새를 맡다가
결국 발길을 돌렸다.
조금 전 수거통과 40여 미터 거리가 있는
또다른 수거통을 기웃거리다 어미는 또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러더니 슈퍼 앞 골목에 이르러
작은 치킨 종이박스를 헤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어미는 박스 속에서 뼈다귀를 하나 물고 나왔다.
그러고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둥지에서 기다리는 아기냥에게로 가는 것이 분명했다.
다시 나는 녀석들의 둥지 쪽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어미도 아기냥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또다시 뒷골목 담장에서 ‘이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담장 아래로 불쑥 어미냥이 나타났다.
어미냥은 여전히 뼈다귀를 물고 있었고,
아기냥은 언제 울었느냐는 듯 어미냥 입에 물려진 뼈다귀를 핥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미냥은 그곳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듯
아기냥을 데리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은밀한 폐가구 더미였다.
어미는 그곳에 아기냥과 뼈다귀를 놓아둔 채 자리를 떴다.
아기냥은 이번에는 어미가 가든말든 신경도 쓰지 않은채
살점이 얼마 남지 않은 닭목뼈를 씹어먹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한달밖에 안된 녀석이 그 억센 뼈를 잘도 씹어먹는다.
그 시각 어미냥은 둥지에서 이옹거리는 두 마리의 아기냥을 달래고 있었다.
먹이를 먹는 한 마리, 둥지에 있는 두 마리.
다섯 마리였던 아기냥은 닷새 만에 세 마리만 남은 듯했다.
이 세 마리가 또 며칠 후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미냥은 나머지 두 마리의 먹이는 구하지 못했다.
어미는 잠시 아기냥을 달래고 다시금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집으로 가서 고양이캔을 가지고 오는 동안에도
어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아기냥 몰래 카메라를 몇 컷 더 찍고 있을 때,
다시 뒷골목에 어미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어미는 새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방금 사냥을 한 것인지, 죽어 있는 새를 구해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미는 그것을 폐가구 더미 뒤에 내려놓고
나머지 두 마리의 아기냥을 불러왔다.
어미는 폐가구 은신처에 몸을 피해 새털을 뜯고 있는지,
바깥으로 이따금 새털이 날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나저나 어미냥은 무얼 먹기라도 하고 저렇게 새끼들을 챙기는 것인지.
보아하니 어미냥 또한 기껏해야 1년도 되지 않은 고양이로 보이는데,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그저 새끼가 새끼를 낳아 키우는 것으로만 보이는데,
어린 어미의 모성애는 저토록 눈물겨웠다.
눈물겨워서 그것은 아름답게 슬펐다.
집에서 가져온 고양이캔 하나를 폐가구 밑으로 밀어넣어주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무것도.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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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냥 2008.10.21 18:04
요새 길고양이들 먹을게 너무 없어요. 쓰레기도 플라스틱상자안에 넣고..
그나마 주택가는 좀 나은가요 저희는 아파트라,,너무불쌍해요
그레서 겨울같이 먹을얻기힘든땨 참치캔이나 생선조그만거 사람눈에 안띄는 잔디나 나무뒤에 놓아주면
담날애 깨끈히 먹더라고요 근데 한번 주기시작하면 지나갈떄 마다 밥달라고 야옹야옹 ㅠㅠ -
으흑 ㅠㅠ 2008.10.23 23:59
흑흑 ㅠㅠ 우리 가게에서 밥주고잇는 고양이 두마리가 잇었는데요
지난 8월에 두마리다 다섯마리씩 새끼를 낳앗어요
그중 몇명은 입양보내구 몇명은 옆가게 아주머니가 버려버리고 한마리만 남아잇구요.
그런데 지금 그 두마리 고양이 모두 임신해서 또 애기를 낳았는데요
두고양이중 한마리는 다른곳에서 새끼를 낳은걸로 추정되구,
다른고양이는 그저께 가게에서 새끼를 낳앗어요
첫째는 그만 낳는도중에 목이걸려서 죽고말았고
다행히 나머지 고양이는 병원에 데리고가서(어미고양이가 집고양이보다 더 순해요) 절개해서 빼서 살렸는데
문제는 어미고양이가 새끼고양이들을 옮기는과정에 한마리가 쥐구멍에 빠졋어요ㅠㅠ
애기들이 어미 뱃속에 오래잇어서그런지
전에 낳은애기들보다 훨씬크고 목소리도 크더라구요.
그 빠진고양이는 이틀동안 살겟다고 냥냥거리고 나올랴고 바둥거려서
저희 엄마가 벽을 다 망치로 깨고 나무를 잘라서 구멍을 파도 구멍이 너무 좁고 너무 깊어서 어떻게 할수가 없네요 ㅠㅠ
지금은 이도저도 못하고있습니다 ㅠ
너무 불쌍해요 이거 보니까 또 생각나서 슬퍼져요 ㅠㅠㅠㅠㅠ -
솔직히 사람들 2008.10.24 22:42
너무합니다. 감성적이여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이성적이죠. 길켓 불임수술도 구청에서 하는 곳도 있으니 계체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은데 말이죠. 간간히 사진속 냥이처럼 새끼를 낳는 길켓도 있어야죠. 사람들이 저녁먹고 남겨서 버리는 음식물만 밖에 내놔도 고양이가 잘 먹습니다. 저도 사무실에서 저녁먹거나 음식 시켜먹거나 빵먹다가 남으면 사무실앞에 놔두면 몰래와서 먹고 갑니다. 동네 쓰레기 봉투는 건들지도 않죠. 고양이는 특성상 아이들도 피해서 생활을 하고 낮시간은 이동이 거의 없는 편이니 쓰레기 봉투 찢는다고 나무랄게 아니라 간간히 밥도 주면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