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섬, 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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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섬



구분포 가는 길의 드넓은 폐염전은 이제 갯쑥부쟁이밭으로 변했다. 셔터 속도를 늦추고 나는 천천히 해풍에 흔들리는 갯쑥부쟁이를 찍는다. 한 폭의 그림같은 꽃밭 풍경 속에서 나는 삼각대를 세운 채 1시간 넘게 있었다. 이따금 셔터를 누르면서.

 

사옥도 선착장에서 다 저녁 막배를 타고 증도로 간다. 증도(曾島)는 예부터 드는 물이 적어서 사리섬이라 불렸으나 간척사업으로 앞사리 뒷사리를 연결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캄캄한 바다를 건너 증도 버지 포구에 내리자 하늘에는 벌써 별이 총총하다.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바다와 속을 다 드러낸 검은 갯벌이 에워싼 밤길을 찬찬히 달려 면 소재지가 있는 증동리에 짐을 푼다. 적막한 밤이다. 창문을 열면 곧바로 우전 해수욕장의 검은 바다가 몸을 푸는 곳.


 

소금 섬 소금밭에 노을이 지고 있다. 노을 물든 소금밭에 아직도 소금꾼은 집에 가지 못하고 소금을 거두고 있다. 


내가 돌아다닌 50여 개의 섬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섬. 언제부턴가 사람들에게 증도는 보물섬으로 통한다. 오래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안 해저유물 발굴이 바로 이 곳에서 벌어졌다. 당시 해저유물을 발굴했던 곳에는 지금도 기념비가 자리해 있는데, 이 곳은 도덕섬, 대섬, 부남섬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그려내는 멋진 풍경을 감상하는 전망대 노릇도 겸하고 있다.


증도에서 볼 수 있는 옛 풍장형 가묘인 초분. 이제 초분이 남아 있는 섬은 우리나라에 몇 개 되지 않는다. 이 초분도 증도에 유일하게 남은 초분이다.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가 서 있는 곳에서 가까운 검산마을은 증도에서 알아주는 해태양식마을로 통한다. 포구에는 일찌감치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김발작업(발그물)을 하고 있다. 이 김발에 씨를 붙여 바다에 넣으면 보름 후부터는 채취가 가능한 김이 된다고 한다. 이웃마을인 오산마을 사람들도 해태그물을 손보느라 여념이 없다. 사실 증도는 서해안에서 가장 알아주는 소금 섬으로도 유명하다. 포구가 있는 버지 주변은 온통 소금밭이다. 유명한 태평염전이 바로 이 곳에 자리해 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났는데도 염전에는 소금을 거두는 작업이 한창이다.


가을이 한창인 증도에 억새가 일렁인다. 초분이 있는 구분포 가는 길은 아직도 천연한 비포장길로 남아 있다.


“여기는 염전을 도급제로 허고 있소. 만 개 내면 오천 개썩 갖는 거지. 이때끔 그래왔소. 여기 염전이 수십 년 되얐소. 다른 데는 물소금 찌껍으라도(간수를 빼내지 않은 소금) 막 실어나가는디, 여기 소금은 안 그라요. 깨끗허고, 꼬실꼬실허고, 물이 질질 흘리지 않고, 쓴물이 쏙 빠지면 나가니까 여 소금을 알아주지라. 여름 소금에 비해 가을 소금은 약간 더 쓴 편이요. 날이 좋으면 시월 말까장만 내게 허고, 11월부텀은 안허요. 이것도 이제 끝물이요. 올해는 소금값이 좀 괜찮은디 그동안은 소금값이 었었어라. 내가 20년 동안 이걸 힜어도 이게 참 어렵소.” 20년 동안 태평염전에서 소금꾼으로 살아온 채판심 씨(62)의 말이다.


가을 소금을 거두는 태평염전의 소금꾼(염부)과 소금밭 풍경.


태평염전은 앞사리 뒷사리를 메운 버지 방조제 안쪽에서부터 서쪽의 우전 해수욕장 인근까지, 남쪽으로 등선마을에서 북쪽으로는 곡도마을까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아침과 저녁 무렵이 되면 드넓게 펼쳐진 염전에는 소금을 거두는 소금꾼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더러 폐염전이 보이긴 해도 증도의 염전은 대부분 알짜배기 소금을 내는 옹골찬 소금밭이다.


소금창고에 금방 실어온 소금이 잔뜩 쌓여 있다(위). 소금밭 결정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소금 결정체(아래).


이웃 섬인 임자도나 사옥도, 병풍도 등에도 크고 작은 염전이 흩어져 있으며, 좀더 떨어진 비금도에는 국내 최대의 소금밭이 펼쳐져 있어 증도와 인근의 섬들은 대부분 소금섬인 셈이다. 사실 내가 증도를 찾은 것은 과거 증도라는 섬이 민속학자들 사이에서 초분 섬으로 불리웠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면사무소에 들러 증도에 아직 초분이 있느냐고 묻자 다들 웬 초분이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내가 구분포마을에 이르러 한 농부에게 초분에 대해 묻자, 그는 산 중턱을 가리켰다.


증도 태평염전의 소금창고(위)와 염전을 걸어 항구로 가고 있는 사람(아래).


“쩌기 초분이 있는갑디여. 한 20년은 되얐을 것인디. 근디, 초분은 와 찾아쌌소.” 그가 가리킨 산자락을 한참 올라가자 뙈기밭 한 구석에 자리한 초분이 보였다. 여느 섬에서 만난 초분보다 훨씬 작아보이는 초분이었다. 혹자는 초분이 무엇이길래 그것을 찾아 부러 섬을 찾았느냐고 핀잔할 수도 있겠지만, 초분은 전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풍장형 가매장 풍속이고, 그것도 서남해 섬에서만 대를 이어오던 장례문화요, 뭍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섬문화라 할 수 있다.


저녁 햇살을 마주한 채 아직도 갯벌에서는 조개잡이가 끝나지 않았다.


초분이 있는 구분포는 돈대봉 아래 있는 듯 없는 듯 자리해 있다. 산 너머 염산과 더불어 증도의 가장 외딴 마을에 속한다. 염산과 구분포를 잇는 돈대봉 산길은 승용차로는 쉽게 넘을 수 없는 비포장길인데, 늦가을이면 억새꽃이 흐드러져 운치를 더한다. 구분포에서 광암으로 넘어가는 산길에서는 사옥도 쪽으로 펼쳐진 증도의 드넓은 갯벌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에움진 산길을 넘어가면 이제 아프리카의 사바나를 연상시키는 염생식물 군락지가 펼쳐진다.


황혼 무렵 석양이 비치는 갯벌의 물골(위)과 태평염전 쪽에서 바라본 염생식물 군락지(아래).


사실 과거에는 이 곳이 모두 염전이었으나 지금은 폐염전으로 남은 드넓은 개활지가 온통 붉은 칠면초 무리와 갯쑥부쟁이 꽃밭으로 변하고 말았다. 해풍이 불어올 때마다 꽃밭에는 바람결을 따라 꽃물결이 일고, 이 모습을 멀리서 보노라면 마치 꽃사태가 난 듯 황홀하다. 누가 일부러 가꾸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꽃밭을 일구어 놓았다. 여러 섬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드넓은 갯가 꽃밭은 처음이다.


섬마을에서 만난 한뎃부엌.


나는 아예 갈 생각도 잊고 몇 시간째 갯쑥부쟁이밭을 돌아다녔다. 뒤늦게 차를 몰아 버지 포구에 이르자 어느덧 막배가 도착해 있다. 배를 타고 나와 사옥도에 이르러 저녁 노을은 온통 붉게 물들었는데, 바닷가 염전에는 아직도 일을 끝내지 않은 소금꾼이 황혼 속에서 때늦은 소금 채취작업을 하고 있다. 해가 다 져서 캄캄해질 때까지 소금꾼은 홀로 소금을 거두며 그렇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 글/사진(Canon EOS-5, 필름/벨비아 50): 이용한

조용하고 한적한, 아무도 없는 가을의 우전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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