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길고양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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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길고양이의 노래


“인간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일생의 3분의 1을 소비하고, 3분의 1은 어른이 되어 보내는 데 소비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비껴갈 수 없이 늙어가는 데 소비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이와 반대로 처음 성장 과정에는 일생의 10분의 1, 마지막 늙어가는 단계에서도 10분의 1밖에는 소모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생의 나머지 10분의 8을 이미 성장해서 힘이 생의 절정에 달해 있는 상태에서 보낸다.......고양이가 태어나서 12개월쯤 되면 인간의 나이로는 약 스무 살이 된다. 여기서부터 고양이가 1년씩 나이를 더 먹으면, 그것은 인간의 나이로 4년이 흘러가는 셈이다. 퍼져 있는 터무니 없는 소문에 따르면 고양이의 1년은 인간의 7년에 해당된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이것도 맞지 않는다......이제까지 알려진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고양이의 생존기간은 무려 34년이었다.” -- 데틀레프 블룸 <고양이 문화사>(들녘) 363~364p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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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존의 자리에서 이제는 뒷골목 늙은냥 신세로 전락한 왕냥이. 염분이 많은 길거리 음식물을 섭취한 탓에 얼굴과 몸이 퉁퉁 부어 있다. 종종 사람들은 이렇게 신장이 망가져 부은 고양이를 '살이 쪘다'고 오해하곤 한다.

늙은 수컷 고양이 왕냥이가 텃밭 수풀 속에서
켁켁거리며 무언가를 토하고 있다.
헤어볼(털뭉치)을 토한 것인지, 음식을 잘못 먹은 것인지
녀석은 바닥에 황갈색 토사물을 한 움큼이나 쏟아냈다.
녀석의 입가엔 누렇게 토한 자국으로 얼룩져 있고,
눈까지 벌겋게 충혈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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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냥이가 수풀 속에서 켁켁거리며 괴롭게 무언가를 토해내고 있다.

최근까지 왕냥이는 이 동네의 지존이나 다름없었고,
동네 여기저기에 가장 많은 후손을 퍼뜨리고 다녔다.
희봉이와 깜냥이, 얌이와 멍이가 바로 어미는 다르지만
같은 왕냥이의 핏줄이다.
그러나 녀석의 지존 자리는 올 여름 쯤부터 위협을 받기 시작해
결국 폭군냥 주황이에게 ‘황금의 영역’을 넘겨주었다.
폭군냥이 영역을 빼앗고 후손을 퍼뜨린 것이
요즘 한창 볼 수 있는 그냥이네 4마리 새끼와 외출이네 2마리 새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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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토하고 난 왕냥이의 입가에 누런 토사물이 잔뜩 묻어 있다.

왕냥이는 폭군냥에게 밀려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했다.
과거에는 비교적 먹이가 많은 ‘황금 영역’에서 배 곯지 않고 살았지만,
요즈음에 녀석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뒤지며 산다.
그렇다고 왕냥이의 영역을 차지한 폭군냥이 떵떵거리며 잘 사는 것도 아니다.
녀석은 오래 전부터 희봉이와 깜냥이를 비롯해 집앞에 먹이 동냥을 오던
아기냥들에게 해코지를 일삼아 폭군냥이란 이름이 붙었고,
발정소리가 너무 커서 주민들의 원성이 있었다.
나 또한 내가 돌보던 고양이들을 다 쫓아내는 녀석이 이뻐보일 리가 없었다.
나는 녀석이 집앞에 나타날 때면 매정하게 쫒아버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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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음식물 쓰레기통이 아닌, 거리에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뜯고 있는 왕냥이.

그런데 최근 녀석의 몸도 부쩍 노환에 시달리는 게 역력해보인다.
뒷다리 한쪽은 절고,
두 눈에는 눈꼽이 지저분하게 끼어 있다.
안됐다는 생각에 최근에는 녀석이 그냥이네 새끼들의 밥을 훔쳐먹어도 그냥 모른 채 한다.
지난 여름까지 왕냥이와 폭군냥의 세력권 바깥에서
노구를 이끌고 살았던, 내가 ‘여행하는 고양이’라 불렀던
주황색 늙은 암컷은 언제부턴가 눈에도 띄지 않는다.
아마도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인다.
고양이는 그렇게 이 세상에 왔다 간다.
왔다 가는 줄도 모르게 그렇게 왔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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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봉이와 깜냥이를 둥지에서 쫒아내고, 왕냥이의 영역까지 차지해버린 폭군냥 주황이도 요즘 노환에 시달리고 있다. 양쪽 눈에 눈꼽이 잔뜩 끼어 있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길어야 3년 안팎이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평균 수명이니까 7~8년쯤 살았다는 길고양이도 있을 수는 있다.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집냥이의 경우 수명이 15년을 넘는 고양이도 있다고 하니
집냥이와 길고양이의 수명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 차이는 길고양이의 불안한 묘생에서 비롯된다.
길고양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생명의 위협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먹이를 찾아다니거나 사냥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포식자나 교통사고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막중하다.
무엇보다 녀석들의 가장 커다란 위협 요소는 역시 사람이다.
사람의 포획이나 로드킬, 살처분 및 소각, 중성화수술(TNR)의 위협까지
길고양이는 늘 생명의 위협과 생존의 위험 속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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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폭군냥 주황이는 어디서 다쳤는지 한쪽 다리를 절며 다닌다. 날이 추워지자 햇볕에 잠시 몸을 데우고 있는 주황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은 고양이의 개체수 증가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과거 서울의 H아파트 길고양이 학대사건(지하실에 가두고 폐쇄해버린) 당시
언론에서는 아파트에 사는 길고양이의 개체수가 400여 마리라고 보도했으나,
실제로는 40여 마리에 불과했다.
제보자의 개체수 부풀리기를 고스란히 보도한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거문도 길고양이’의 개체수가 증가해 어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780여 마리의 들고양이를 살처분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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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냥이와 폭군냥의 세력권 바깥에서 살던 늙은 암컷 주황이가 담장에 앉아 잠시 따뜻한 햇살을 쬐고 있다.

여기서 굳이 개체수 시비를 따질 필요는 없지만,
자연계의 개체수라는 것이 그렇다.
인간을 제외한 자연계의 모든 동물은 스스로 개체수 조절을 한다.
먹이와 서식지가 한정돼 있으므로 그에 맞춰
적절한 밀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천적이 없는 아프리카의 고양잇과 동물 사자가
한없이 개체수가 늘어나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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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늙은 암컷 주황이는 두어 달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난 것이 분명하다.

각설하고, 어쨌든 인간은 늘 길고양이에게 생명의 위협을 주거나
실제로 생명을 앗아가지만,
길고양이는 사람의 생명에 위협을 주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고양이가 건물 안으로 들어와 배설을 한다고 고양이의 피해를 말하지만,
이는 고양이를 몰라도 한참 몰라서 하는 말이다.
고양이를 관찰해 보면 알겠지만, 녀석들은 자신의 배설물을 꼭 흙을 파고 묻는다.
이건 본능이어서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새끼 고양이조차 예외가 없다.
개처럼 아무데나 배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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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 세상에 왔다 간다. 조금 빨리 가거나 늦게 갈 뿐이다.

심지어 고양이는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을 때조차
자신이 찾던 화장실을 찾아 일을 본다고 한다.
고양이는 스스로 죽음을 예감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가령 죽음에 직면한 고양이는 점프도 하지 않고, 먹이도 먹지 않고, 몸을 숨긴 채
죽을 때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집냥이의 경우도 종종 죽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마지막엔 결국 이 세상을 떠난다.
조금 빨리 가거나 늦게 갈 뿐이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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