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속으로 들어간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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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속으로 들어간 산수유

남쪽에서 꽃소식이 올라온지 한참만에
우리 동네 야산에도 산수유가 피었다.
가지마다 다솜다솜 꽃술이 부푼 산수유 그늘 아래 서면
이대로 오래오래 꽃잠이라도 자고 싶은 생각 절로 난다.

하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고,
새벽에는 꽃핀 산수유 가지에도 무서리가 내려서
아침 해가 뜰 무렵에야 녹아서 이슬이 된다.

이른 아침 산수유밭에는 늘어진 산수유 가지마다
산수유꽃이 가득하고,
산수유꽃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이슬방울이 눈부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슬방울 속에도 한가득 산수유가 피었다.
꽃핀 나무 한 그루가 물방울 속에 통째로 들어가 있는가 하면,
탐스러운 꽃 한 송이가 버젓이 들어가 있다.

물방울 속의 산수유는 때때로 이지러지고 뭉개졌지만,
도리어 그래서 더욱 그윽하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물방울에서도 산수유 꽃냄새가 나는 듯하다.

물방울 속의 산수유 한 그루.
물방울 속의 산수유 꽃 한 송이.
물방울 속의 구름 낀 하늘.
물방울 속의 새순 돋는 봄나무들.

물방울은 물방울 맘대로
물방울 바깥에 핀 산수유를 반영한다.
물방울은 지맘대로 산수유를 들어앉히고
산수유 너머의 구름 낀 하늘과 아직은 스산한 봄나무들까지 거두었다.

산수유 나무를 둘러싼 봄나무 가지에도
꽃 피지 못한 이슬방울로 가득하다.
그것은 그냥 꽃 피우지 못한 나무와
심드렁한 풍경을 담백하게 담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의 놀이터와 아파트 담장에도
누군가 서둘러 봄볕 속에 내놓은 화초 잎에도
투명한 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것은 저마다 한 가지 풍경을 담고 있는 물방울 거울이고,
풍경 속의 풍경이며, 떨어지면 그만인
단 한번뿐인 순간의 미학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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