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에 가을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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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마을과 백양사에 가을이 오다

 


백양사 연못에 잠긴 쌍계루와 학바위. 이곳의 연못은 쌍계루와 학바위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도록 넉넉하게 설계되었다. 고려 말 목은 이색도 이 연못에 잠긴 쌍계루와 학바위 풍경을 보며 감탄하였다.

 

가을로 접어든 금곡마을에 들어서자 이리 휘고 저리 꺾어진 다랑논마다 누렇게 벼가 익어가고, 집을 에워싼 감나무마다 주홍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다랑논과 감나무와 초가집이 달력사진처럼 어울려 있는 곳. 완만한 산과 골짜기를 배경으로 아담하게 자리한 마을. 흔히 금곡마을은 오래 전부터 영화마을로 불려왔다. 혹시 지난 1998년에 상영했던 <내 마음의 풍금>이라는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이 영화의 주요 촬영지가 되었던 곳이 바로 금곡마을이다.

 

영화마을로 알려진 금곡마을 성황나무에서 바라본 풍경. 초가집과 집으로 가는 할머니.

 

영화에서 총각선생 ‘수하’(이병헌)를 짝사랑하는 늦깎이 초등학생 ‘홍연’(전도연)이 살던 마을이 이 곳인 것이다. 영화에서 ‘홍연’이 살던 집은 본래 슬레이트가 얹혀 있던 집이었으나, 촬영시 짚이엉을 얹어 초가 흉내를 냈다. 뿐만 아니라 옛날의 시대적 분위기를 내려고 마을의 여러 집들도 초가 지붕을 얹어 영화 세트장 노릇을 했다. 지금도 이 집들 가운데 일부는 초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금곡마을 서낭당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당산제를 지내오고 있다.

 

금곡마을은 전형적인 계단식 산촌 풍경을 간직해온 덕택에 오래 전 임권택 감독은 이 곳에서 영화 <태백산맥>을 찍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이 영화 찍고 나서 논이고, 마을이 좋다 해서 경지 정리도 이래 안하고 그냥 있어요. 여기는 논이 다 작아서 기계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마을에서 만난 이향복 씨(57)의 말이다. 이씨에 따르면 당시 <태백산맥>을 촬영할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엑스트라로 나와 피난 가는 장면을 연기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금곡마을은 1999년에 영화 <침향>을 비롯해 드라마 <왕초>를 촬영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옛날 '뽐뿌'(위)와 섬돌에 놓인 검정 고무신(아래).

 

마을이 옛 모습을 유지해 오는 만큼 인심 또한 옛날과 다름이 없는데, 농사를 지을 때도 마을에서는 아직 요즘 흔치 않은 품앗이를 해오고 있다. “모 심을 띠나 타작을 헐 띠 품앗이로 할 수밖에 없어. 낫으로 다 비야 허고, 지게로 다 져날라야 허니께. 혼차는 하고잡어도 못히여. 여기 논이 죄 이런 논잉께.” 최판수 씨네 논에서 타작을 하던 배진갑 씨(70)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있기 전만 해도 마을에는 모두 70여 채의 집이 있었다고 하는데, 빨치산이 활동하던 시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마을이 싸그리 불에 타 한 채의 집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빨치산 때문에 마을이 애매한 피해를 봐 부린 거여. 그 띠 젊은 사람덜도 입산힜나, 안힜나 히서 지서에 가서 억울하게 많이 죽어 부렀소.” 보기에는 그저 아름다운 마을이지만, 그 속내에는 <태백산맥>에나 나올 법한 슬픔이 배어 있는 것이다.

 

백암산 가는 길에 바라본 가을 하늘.

 

마을 논배미에는 고인돌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마을 동구에는 비석처럼 서 있는 선돌도 만날 수 있다. 김영환 씨(65)에 따르면, 이 동구의 서낭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이면 닭이 우는 새벽에 어김없이 당산제를 지내오고 있단다. “그날은 이런 고기도 못먹어. 그 띠는 제주를 뽑는디, 내우 간에 생기복덕이 다 맞아야 제주를 할 수 있어. 제주가 제 모실 띠는 또 이틀간 굶어야 히여. 그라고 열 나흗날에는 날새기를 히여. 옛날 부터섬 그래 해 오고 있당게.” 또한 동구에는 여러 기의 솟대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다.


붉게 물든 백양사의 애기단풍.

 

이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단풍으로 유명한  백암산과 백암산 기슭에 자리한 백양사가 자리해 있다. 특히 백양사는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절로 통한다. 흔히 봄 백양사, 가을 내장사라고 하여 단풍은 내장사를 으뜸으로 쳤지만, 실제로 푸른 비자나무숲과 그 주변으로 울긋불긋 들어선 애기단풍나무숲이 어우러진 모습은 내장사의 그것보다 더한 감흥을 안겨 준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내장산 단풍의 장쾌함보다 색이 곱고 아기자기한 백암산 단풍을 더 쳐준다. 물론 이 백암산 줄기는 내장산 줄기와 잇닿아 있어 백암산과 내장산을 합치면 이 나라 으뜸의 단풍 절경을 이루어낸다. 이 단풍 절경 속에 폭 잠긴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세워진 오래된 가람으로, 그 옛날 스님이 설법을 하매 하늘에서 흰 양이 내려와 설법을 들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암자로 오르는 산 중턱에서 바라본 백양사 풍경. 조금씩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본래는 백암산에 있다고 해서 백암사였다고 하는데, 가람 뒤편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학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가람의 양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합쳐지는 지점에는 쌍계루가 들어서 있어 두 냇물이 합쳐 연못을 이루는 풍경을 굽어보고 있다. 고려 말기 목은 이색은 이 쌍계루의 풍경을 “누각의 그림자와 물빛이 서로 비치어 참으로 좋은 경치”라고 말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쌍계루 앞의 연못에 비친 누각과 단풍에 물든 학바위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자칫 내가 지금 학바위에 올라 있는지, 연못 아래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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